◆ “보는 재미를 넘어 경험이었다”···아이맥스 흥행 ‘최강’
2D영화가 주류를 이루던 영화 시장에서 3D의 도입은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그 중심에는 2010년 개봉해 역대 국내 개봉 영화 1위 자리를 4년간 지켜 온 ‘아바타’(누적 관객 수 1362만)가 있었다. 기술력의 진일보는 관객들에게 관람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 비주얼에 대한 전면적인 재인식의 기회를 제공했다. 한 마디로 관객들의 눈높이를 올리는 작용을 한 셈이다. 전 세계 영화 관람의 트렌드는 ‘아바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제 그 기준은 ‘인터스텔라’가 될 것 같다. 우선 연출을 맡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극심한 아날로그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디지털을 멀리하고 필름을 선호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아이맥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서 보여 준 시각의 극대화는 필름이 표현할 수 있는 화면의 색채와 심도가 결합돼 시각적 충족을 극대화시켰다. 이른바 ‘아이샤워’의 결정판이 이번 ‘인터스텔라’였다.
역대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다크 나이트’는 27분 16초, ‘트랜스포머2’ 8분 54초, ‘미션 임파서블4’ 23분인데 비해 ‘인터스텔라’는 1시간 분량의 아이맥스 촬영 분량을 사용한다. 역대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최장 아이맥스 촬영 영화다.
국내 상영 당시 아이맥스 점유율이 최대 90%까지 치솟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특히 아이맥스 상영관의 명당자리는 한때 온라인에서 웃돈을 주고 거래까지 될 정도였다. 믿고 보는 영화가 아닌 무조건 아이맥스로 봐야 하는 영화가 ‘인터스텔라’였다. 1000만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 지적 호기심의 충족, 관람 토론으로까지 이어져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인터스텔라’는 사실 과학자들조차 완벽하게 꿰뚫지 못하고 있는 상대성이론과 웜홀 이론 등 이론 물리학의 여러 가설들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영화의 스토리를 고사하고 장면과 장면의 이해 및 상황 묘사에 대한 여러 논리가 관객들의 눈과 머리를 어지럽힌 복잡다단한 영화였다. 하지만 이 같은 포인트가 오히려 ‘인터스텔라’ 신드롬의 중심이 됐다.
놀란 감독 역시 대한민국에서의 ‘인터스텔라’ 열풍에 놀라워했다. 지난 달 열린 중국 상하이에서의 국내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관객들의 지적 호기심이 이 영화를 사랑해 준 근원이라고 생각한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일종의 에듀테인먼트 무비로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인터스텔라’는 관객 점유율을 차곡차곡 높여갔다. 이를 본 관객들은 저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영화 속 과학적 이론과 시간의 왜곡 및 흐름 현상에 대한 영화적 접근법에 나름의 풀이를 더했다. 이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공유하는 일종의 문화 코드를 만들어 낸 셈이다.
결국 이 같은 분위기는 재관람 열풍으로 이어졌다. 정보의 공유가 이뤄진 뒤 재관람으로 모자란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여기에 특수관에 대한 수용도 관객 몰이에 작용됐다. 아이맥스를 통한 흥행과 35mm필름 버전, 2D 디지털 버전, 4DX버전까지 사영 방식에 따른 관람 차이를 상세히 요약한 영화팬들의 관람기가 온라인을 뒤덮었다.
◆ 놀란이기에 봤지만 놀란이기에 보지도 않았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연출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대한 이름값이다. ‘인터스텔라’의 흥행이 놀란 감독의 이름값에서 출발했다는 지적이 가장 많다. 어떤 부분에선 공감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지만, 결코 그렇지만도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놀란 감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한 흥행 감독이다. ‘마니아’란 단어는 그만큼 호불호가 강력하다는 뜻이다. ‘인터스텔라’ 개봉 전 놀란 감독의 국내 최고 흥행작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639만)다. 전 세계 극장가를 초토화시킨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완결편으로서 국내 흥행 파괴력은 사실 그리 크지 못했다.
놀란 감독은 워낙 자기 색깔이 강한 연출자다. 데뷔작 ‘메멘토’부터 ‘인터스텔라’ 이전 최근작인 ‘인셉션’까지 그는 인간의 내면과 자기 본성 그리고 꿈이란 절대적으로 철학적인 의미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코믹스 원작인 ‘다크 나이트’ 시리즈가 걸작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국내에서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흥행을 보인 것은 앞서 설명한 어려운 내러티브 전개 방식 때문이다. ‘인셉션’의 경우 꿈속에서 또 다시 꿈속으로 그리고 또 꿈속으로 들어가는 3중 중첩 현상까지 벌어지는 난해한 코드를 전개한다. 마지막 장면의 팽이 시퀀스는 지금도 의도 부분에서 논쟁이 많은 장면이다.
‘인터스텔라’ 역시 처음부터 섣불리 1000만을 예상하기 힘들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이 거장도 점차 자신의 색깔을 자기 복제가 아닌 자기 진화로 발전시켰다. ‘놀란’이란 이름값이 어느 정도의 흥행성은 보장하지만 결정타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색깔에 동서양의 보편적인 정서인 가족애와 희생을 담았다. 전작 ‘다크 나이트’ 시리즈에서 보여 준 히어로의 희생과는 코드 자체가 다른 방식이었다.
이는 즉각적으로 동양권의 문화에서 반응이 터져 나왔다. 미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 흥행 수익의 대부분이 중국과 대한민국에서 쏟아져 나왔다. 여러차례 반복된 자기 철학의 스토리 속에서 놀란 감독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운신의 폭을 좁혀왔던 ‘마니아 감독’이란 타이틀을 스스로 벗어버린 셈이다. ‘인터스텔라’는 놀란 감독의 ‘자기 진화’가 이뤄낸 결정판인 셈이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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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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