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다닐 수도 없는데··· 돈이면 ‘OK’돈만 쫓아 이직의 세계에 빠진 직장인들주인의식은 사라지고 현실 안주에만 집중
#1. 직장인 박모씨(29,여)는 최근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제출했다. 당초 지원한 직무와 다른 곳에 배치된 데다 과도한 업무량,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적인 점을 두고 고민을 반복하다 퇴사를 결심한 것이다.
박씨에겐 이미 두 번째 직장. 주위에서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만류했지만 계속되는 야근에 주말에도 수시로 불려나와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자 마음을 굳혔다. 20대인 박씨는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번에 직장을 옮기면 벌써 세번째가 된다.
#2. 대기업에 다니는 윤모씨(36,남)는 그가 속한 팀의 ‘요주의 인물’로 꼽힌다. 성격이 특이하거나 조직생활을 못해서가 아니다. 기본적인 근퇴가 좋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는 ‘주인의식’이 없다. 그는 ‘대기업 입사’라는 인생 목표를 이룬 뒤 ‘월급날’만 기다리는 사람이 돼버렸다. 승진에 대한 욕심도 없다. 윤씨는 “지금 현실에 매우 만족한다”며 “다닐 수 있는 만큼만 다니다 나중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평생직장’이 사라졌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들은 이제 자신이 들어가게 될 첫 직장을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로라하는 기업에 다니는 이들에게도 직장은 100% 만족스러운 곳이 아니다.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타 기업에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조용히 옮길 준비를 한다.
◇“부르면 떠난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지난 3분기 평균 이직자는 59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만8977명 늘었다. 또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남녀직장인 863명을 대상으로 ‘이직 고민’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48.7%의 직장인이 “4회 이상 이직을 고민해봤다”고 답했다.
반면 ‘한 번도 이직을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직장인은 6.8%로 10명중 1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경기가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자 안정적인 직장을 찾거나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려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경총이 35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졸 신입사원 교육·훈련 기간은 평균 18.3개월이고 소요 비용은 5959만원으로 나타났다. 회사 입장에선 출혈이 클 수밖에 없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껏 키워놓고 쓸만해지니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가버린다’는 인사 담당자들의 볼멘 소리가 계속되는 이유다.
이러한 현상은 신입사원들에게 더욱 많이 나타나 기업들은 투자 대비 빠른 성과 창출이 가능한 경력직 채용을 늘리고 있어 청년 일자리 부족과 직결되고 있는 추세다.
잦은 이직이 ‘고용 악순환’을 유발하고 기업의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아예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직장인 648명을 대상으로 ‘직장인들의 직업·직장에 대한 장래계획’에 대한 설문에 따르면 66.2%가 “현재 하는 일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향후 5년 및 10년 내에 전업할 계획을 세운 이들이 각각 39.9%, 14.0%에 달하며 현재 직업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나 계획이 없는 이들도 25%에 이르렀다.
반면 현재 하는 일을 평생직업으로 생각해 경력을 관리하는 이들은 21.1%에 불과해 최근 우리사회에 직장과 직업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생겼음을 보여줬다.
1996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입사하면 퇴직 때까지 간다’는 사실이 개인과 회사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편이었지만 평생직장이 없어지며 평생 직업을 중시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직장’이라는 하드웨어가 아닌 ‘직업’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더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는 경력관리가 필수라는 것이 시대의 화두로 자리잡았다.
◇잦은 이직 ‘사회적 문제’=이처럼 이직이 잦고 고용문제가 사회 전체의 화두로 자리잡은데는 ‘파랑새 증후군’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파랑새 증후군이란 동화 ‘파랑새’의 주인공에게서 유래된 것으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이상만을 추구하는 병적인 증상을 일컫는다.
실제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60.7%가 ‘파랑새 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생활이 계속되자 일의 생산성과 효율성에 문제를 드러내고 이로 인해 회사는 투자 대비 성과를 내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등 ‘파랑새 증후군’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파랑새 증후군을 겪는 직장인들은 직장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극복하기보다 이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러한 문제는 주인의식과 결부된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직장인들은 회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다만 생계유지를 위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의식이란 회사로 따지면 대리나 과장이 사장의 행동과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주인의식은 자신이 처한 자리를 인지하고 그 자리가 갖는 권위나 권리를 올바르게 발휘하는 것이다.
근로자는 현실에 안주해 회사의 발전보다는 개인의 여가와 안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어 진정한 주인의식의 개념을 인지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인력 불균형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높은 노동강도에 비해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저임금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지만 더 좋은 조건의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옮겨가겠다는 인력들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는 문제다.
때문에 이직 방지 노력을 중소기업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방치하는 것도 국가적, 경제적 손실이라는 주장과 함께 정부의 과감한 지원 정책과 강도높은 노동시장 구조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단순한 금전적 보상으로 인력을 끌어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회사로서는 회사와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고 구직자와 조직원들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jhjh13@
뉴스웨이 이주현 기자
jhjh13@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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