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피(Chappie)란 단어는 영어로 ‘녀석’ 혹은 ‘놈’을 뜻한다. 남아공 출신의 닐 블롬캠프 감독은 데뷔작 ‘디스트릭트 9’을 통해 남아공의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점, 그리고 ‘엘리시움’으로 극심한 빈부격차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채피’란 이름을 통해서 감독은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인간의 잔혹한 본성을 꼬집으며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로봇 ‘채피’가 “난 살아있다”고 말하지만 악당 빈센트(휴 잭맨)가 “넌 기계일 뿐이야”라며 그의 몸을 무참히 난도질하는 장면은 최근 전 세계를 경악케 하는 IS의 테러를 연상시키며 치를 떨게 만들 정도다. 영화 속 ‘채피’는 인간이 잃어버린 인간성의 근원을 가리키는 대명사인 셈이다. 역설적으로 그 대상이 바로 기계가 된 것이다. 가장 비인간적인 대상이 가장 인간적으로 그렸다. 이 믿을 수 없는 가상의 세계는 불과 1년 뒤인 2016년 남아공을 배경으로 한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가 현재 진행형이란 말과도 같게 다가온다.
영화의 주제와 의미가 꽤 심오한 반면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201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창궐하던 범죄는 세계 최초로 도입된 로봇 경찰 군단 ‘스카우트’의 활약으로 일망타진 직전까지 가게 된다. ‘스카우트’를 개발한 회사는 일약 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고, ‘스카우트’ 개발자인 ‘디온’(데브 파텔)은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디온의 목표는 범죄 방지 로봇 개발이 아니다. 더욱 인간적인 인공지능의 개발이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인간처럼 느끼고 교육을 받음으로서 성장하는 지능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성공하고 사장 미셸(시고니 위버)에게 이를 테스트하자고 제안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무기 회사의 오너가 필요한 것은 ‘살상용 기계’이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인간처럼 느끼는 기계’가 아니었다.
디온은 범죄 진압 과정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폐기 직전에 놓인 ‘스카우트 22’를 몰래 반출해 자신이 개발한 인공지능을 탑재해 ‘채피’(샬토 코플리)를 만들어 냈다. 로봇이지만 인간의 아기와도 같은 채피는 갱스터 ‘닌자와 율란디 그리고 아메리카’ 일당과 함께 지내며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진화해 나간다. 하지만 이를 감지한 빈센트와 미셸은 ‘채피’의 진화를 통제하고 그의 폐기를 결정한다. 비인간적이던 닌자 일당도 점점 ‘채피’의 인간적인 모습에 동화돼가면서 채피를 위해 목숨을 건다.
스스로 진화해가는 로봇 채피와 이들 통제하려는 인간의 대결은 궁극적으로 인류의 미래에 대하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기적인 인간(하지만 어쩌면 보편적인 인간일 수도 있는) 빈센트는 채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파괴에 앞장선다. 자신이 개발한 로봇 ‘무스’를 이용해 디온과 채피 그리고 닌자 일당을 공격하는 장면은 흡사 게임을 하는 듯 잔혹하게 이를 대 없다. 최근 점차 고도의 인공지능을 탑재한 무인 무기들의 개발이 인류에게 어떤 식의 결과를 가져올지를 짐작케 하는 장면으로도 다가온다.
처음부터 고장난 몸으로 탄생한 채피의 수명은 유한했다. 스스로가 죽음의 시간에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채피는 감정의 굴곡을 보이며 인간의 비인간성을 비난한다. 자신이 배운 것과는 다른 세상의 이치에 채피는 굴복하지 않고 진짜 몸을 찾기 위해 마지막 필사의 계획을 마무리하려 든다. 그 안에서 자신의 창조자인 디온과 어떤 결합으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완벽하게 부셔버리는지는 필히 관람을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살아 숨 쉬는 ‘창조자’ 디온과 살았지만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쇳덩이’ 채피의 교감은 마지막 순간 영화 ‘채피’가 전하는 인류 최대의 인간성 고찰에 대한 심오한 순간으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닐 블롬캠프가 원하는 완벽한 영화적 장치의 정점이 바로 ‘채피’의 마지막 장면이다.
추가로 인간들에게 극심한 공격을 당한 뒤 언덕 위에서 도심을 바라보던 채피, 그리고 그의 곁으로 다가온 강아지 한 마리가 만들어 낸 공간적 이질감. 살아 숨 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무엇일까.
‘채피’, 영화적 깊이와 성찰의 수준을 넘어선 영상 괴물이다. 개봉은 오는 12일.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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