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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 정사와 야사의 균열 속 숨은 얘기를 보라

[무비게이션] ‘간신’, 정사와 야사의 균열 속 숨은 얘기를 보라

등록 2015.05.12 15:40

수정 2015.05.12 16:02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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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신’, 정사와 야사의 균열 속 숨은 얘기를 보라 기사의 사진

사화(士禍)에 대한 얘기는 드라마틱한 관점부터 이른바 ‘학살’에 대한 잔인성 그리고 관계의 뒤틀려짐이 만들어 낸 ‘비화’를 담고 있다. 특히 이를 바라보는 정사(正史)와 야사(野史)의 판이한 관점은 오늘날에 이르러 여러 갈래로 뿌리내릴 수 있는 해석력을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영화 ‘간신’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연산군’의 폭정 속 ‘폭압’의 실체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 졌는지를 보다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한자어로 간통할 간(奸)을 쓴 간신(奸臣)이 아닌 간사할 간(姦)을 쓴 간신(姦臣)을 제목으로 쓴 이유는 연출을 맡은 민규동 감독의 분명한 의도로 비춰진다. ‘계집 녀’ 세 명이 뒤엉킨 ‘간사함’은 역설적으로 이 영화 속에선 각기 다른 색(色)을 띠면서 진짜 간신(奸臣)을 만들어 내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간신이 ‘권력의 개’로 표현된 ‘폭군 연산군’을 만들어 냈으니 기묘한 권력(權力)의 덧없을 그린다. 물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간의 관계성은 의외의 화학 작용과 연결 고리를 지니고 있다. ‘정사’가 기록한 갑자사화의 주동자 임사홍-임숭재 부자의 얘기는 그렇게 ‘야사’가 바라본 관점의 차이를 ‘간신’이란 이름으로 스크린에 그려냈다.

 ‘간신’, 정사와 야사의 균열 속 숨은 얘기를 보라 기사의 사진

영화 시작과 함께 화면에는 세 명의 벌거벗은 여인이 서로가 뒤엉킨 채 신음소리를 낸다. 흡사 간사할 간(姦)을 몸으로 표현하듯 얽히고설킨 기묘한 몸뚱아리는 영화 속 인물들의 뒤엉킨 관계를 암시하는 듯하다. 이 여인들은 궁녀들. 이 모습을 보고 희희낙락거리며 화선지 위에 그리는 한 남자는 연산군이다. 오른쪽 눈에는 붉은 반점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다. ‘용안’(龍顔)이라 불리던 왕의 얼굴에 이런 반점을 찍어 넣은 것은 정사와 야사 모두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연산’의 고결하지 못한 흠집이다.

사실 그 흠집은 실제 역사가 기록한 ‘천년 이래 으뜸가는 최고의 간흉’ 임사홍-임숭재 부자다. 이들은 폐비 윤씨의 생모에게 피붙은 적삼을 건내 받고 연산에게 이를 건내 갑자사화를 일으키고 정권을 움켜 쥔다. 산천조목이 눈물을 흘리지만 딱 두 사람만이 웃었다는 영화 속 대사는 시대의 아이러니와 권력의 상충관계를 그린 잔혹함의 한 줄 정리다.

 ‘간신’, 정사와 야사의 균열 속 숨은 얘기를 보라 기사의 사진

임숭재(주지훈)는 권력의 속성에서 밀려났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바닥을 알 수 없는 복수심에 불타 더욱 ‘간흉’의 길로 들어선다. 연산의 눈을 멀게 하기 위해 온갖 아첨을 펼친다. 간혹 숭재의 이런 행동은 같은 간흉이자 아비 임사홍마저 경악케 할 정도다. 나아가 숭재는 연산에게 그리고 자신을 위해 1만의 미녀를 징집해 ‘천년의 쾌락을 단 하루에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전한다. 이른바 ‘채홍사’의 등장이다.

연산은 임사홍-임숭재 부자에게 ‘채홍사’의 전권을 부여하고 전국의 여인들 징집을 명한다. 숭재는 자신들에게 ‘소인’이라 칭했던 위인들에게 복수를 한다. 그들의 딸과 아내와 첩을 빼앗았다. 이들 부자로 인해 궁궐은 육욕의 아방궁으로 변하고, 이때 등장하는 ‘흥청’과 ‘망청’이란 단어가 훗날 ‘흥청망청’의 기원이 됐단 흥미로운 야사까지 전해진다.

 ‘간신’, 정사와 야사의 균열 속 숨은 얘기를 보라 기사의 사진

1만명의 징집된 미녀들은 다양한 방중술을 교육 받으며 연산의 노리개로 사육된다. 이 과정에서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하게 된다. 간사할 간(姦)의 세 명을 뜻하는 듯하면서도 이들 세 명의 여인은 각기 다른 색(色)으로 ‘간신’의 뜻을 풀어간다. 백정의 딸 ‘단희’(임지연)는 세도가의 딸로 위장해 궁에 발을 들이민다. ‘지옥’으로 표현될 징집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기녀 ‘설중매’(이유영)는 신분 상승의 기회로 징집을 선택한다. 그의 눈에 단희는 하나의 경쟁자일 뿐이다. 여기에 연산의 후궁이자 숙원 장녹수(차지연)는 설중매와 단희의 경쟁 여기에 임사홍 부자의 날뜀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암투를 펼친다. 이들 세 명의 여인이 사실은 임사홍-임숭재-연산 세 남자의 눈과 귀를 흐트러트리는 진짜 ‘간신’처럼 느껴질 정도다. 세 명의 여인 모두 목적과 의미는 다를 지언정 ‘간신’ 속 남과 여 모두 간사함(姦)과 간통할(奸) 사이에 자유롭지 못함은 권력이 가진 속성과 기묘한 접점을 보인다.

임숭재의 타락도 임사홍의 집착도 연산의 광기도, 알고 보면 ‘계집 세 명’이 뒤엉킨 간사함(姦)에 자신 스스로도 모르게 속아 넘어간 어리석음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결국 이들 여섯 명의 운명은 역사의 정사와 야사가 바라본 관점의 차이만큼 벌어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사라지고 없어지고 증발해 버린 채 스크린을 꽉 채웠던 살색과 핏빛 향연의 학살극도 막을 내린다.

 ‘간신’, 정사와 야사의 균열 속 숨은 얘기를 보라 기사의 사진

‘간신’은 민규동 감독의 장기인 이야기의 세공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흥청망청’의 유례, 연산과 임사홍 부자의 관계, 연산의 폭정 속 숨은 얘기를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밀도 있는 고리에 고리를 물고 풀어냈다. 반면 단점은 민 감독 특유의 러브스토리 강박증, 여기에 불필요할 정도의 ‘세밀함’이 과잉요소로 다가온다. 화선지 위에 그려진 여백이 얘기하는 부분은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줘도 좋을 법했다.

그럼에도 ‘간신’은 기묘한 권력의 드라마이자 감정의 전쟁터처럼 느껴진다. 간신(奸臣)이던 간신(姦臣)이던 민규동 감독의 세공력만큼은 ‘간신’을 통해 정점을 찍었다. 개봉은 오는 21일.

 ‘간신’, 정사와 야사의 균열 속 숨은 얘기를 보라 기사의 사진

P.S 김강우의 ‘연산군’ 연기는 역대 ‘연산군’ 가운데 최강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광기(狂氣)를 넘어 귀기(鬼氣)를 느끼게 할 정도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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