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우는 이번 영화를 통해 재평가를 받아 마땅할 배우로서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분명 그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할 수 없는 연산군의 전형성을 파괴했다. 이미 수 없이 등장했던 ‘동어 반복’의 타이틀을 가질 수밖에 없는 뻔한 연산군이지만 김강우는 달랐다. 분명 칭찬이다. 그럼에도 김강우는 쑥스럽기 보단 미안한 마음뿐이란다.
“전 분명히 말하지만 이 영화에서 전면에 등장하면 안 되는 조연이에요. 지훈이의 연기와 캐릭터가 전면에 부각되야 마땅하고, 전 그저 MSG일 뿐이죠. 하하하. 정말 힘들었던 점은 배우는 캐릭터를 만들면서 비슷한 누군가를 떠올려요. 그런데 떠오르는 사람이 전혀 없더라구요. 처음이었어요. 못잡겠더라구요. 고민이 많았죠. 그러다 한 동영상을 보고 약간의 힌트를 얻었죠.”
김강우가 힌트를 얻은 동영상은 미국의 역대 연쇄 살인마들을 심문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독일의 전 독재자이자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가 군중들에게 연설하는 장면이다. 무언가 실마리가 얻어지는 듯 했다. 그래도 부족한 듯했다. 동물들의 사진을 구해다 집에다 붙여놨다고.
“이빨을 드러낸 맹수, 홀로 고독하게 걷는 표범, 초식 동물의 목을 물고 있는 사자의 눈빛이 담긴 모습, 먹이를 잡아먹기 전의 독사 등 이런 모습이 담긴 사진을 집안 곳곳에 붙여 놨죠. 평소에도 그냥 보면 좀 섬뜩한 장면들이죠. 그런데 좀 실마리가 다가오는 것 같았죠. 잡히지 않을 듯한 연산의 모습이. 방안 가득히 붙여 놓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죠. 물론 그 방은 저만 들어갈 수 있어요. 하하하. 가족들이 보기엔 좀 그렇잖아요(웃음)”
김강우가 그렇게 만들어 낸 연산군의 외모는 사실 기존 사극에서 보여 준 왕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파격 그 자체였다. 아주 간단한 장치가 하나 더 해졌지만 상당히 독특했다. 바로 눈 옆에 찍힌 붉은색의 커다란 반점이었다. 이 점은 김강우가 민규동 감독에게 직접 제안해 만들어 낸 부분이다. 꼼꼼하기로 유명한 민 감독도 김강우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패륜, 폭력적, 극단적인 왕의 모습을 갖고 있는 인물이 연산군이잖아요. 사실 생각해 보면 그래요. 그 시절 절대 권력을 쥔 그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렇게 안해도 하고 싶은데로 다 하고 살 수 있었을 텐데, 아마도 어떤 성격적인 결함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요. 어머니 폐비 윤씨 사건도 있었지만 전 다르게 생각했죠. 어떤 태생적인 콤플렉스에 휘둘린 인물, 결국 외모적인 부분에서 뭔가 연산군은 달랐을 것이란 점을 떠올리고 점을 만들어 봤죠. 연산군의 초상화가 지금까지 하나도 전해지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이 영화가 개봉하면서, 아니 기획단계부터 화제를 모은 점은 파격적인 노출이 차고 넘치는 19금 사극이란 점이었다. 그 가운데 연산군이 있고, 그를 부추기는 ‘간신’의 얘기는 의도적으로라도 노출 장면이 다수 등장해야 했다. 영화 속에는 예상대로 상당히 은밀하고 파격적이며 야릇한 장면이 다수 등장했다. 그 가운데 김강우가 연기한 연산군도 분명 숨을 쉬고 있었다.
“어떠셨어요. 야했나요? 사실 남성분들보다 여성분들의 의견이 제일 궁금해요. 영화 속보다 좀 더 수위가 높은 장면도 있었는데 편집이 좀 됐어요. 다들 허구라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 상상이 좀 보태졌지만 실제는 더 했다고 해요. 나체의 여자를 붓으로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장면도 상상이 좀 가미된 부분인데, ‘충분히 그럴 법했다’란 전제가 있었죠. 사냥 한 번 나가면 주변 민가를 전부 때려 부순 왕인데 그 정도가 대수였겠어요.”
사실 김강우를 가장 괴롭히고 힘들게 한 것은 아무래도 실존 인물 연산군을 연기한단 점일 것이다. 특히 연산군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폐악의 정점을 찍은 인물아닌가. 그의 연기에 따라서 역사적 평가가 왜곡될 수도 있을 터다. 김강우도 그 점에서 대해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엄청났죠. 부담감은. 내 연기 하나로 연산군이란 인물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고, 미화될 수도 있고. 그 선을 정말 잘 지켜야 했어요. 그 당시를 평가하는 책들도 정말 많잖아요. 연산군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간 게 신하들이란 주장도 있고, 연산군 자체가 못된 사람이란 주장도 있고. 그래도 아무리 못된 인간이라도 연민이란 게 있잖아요. 태생적인 결핍에 따른 어떤 악행. 그런 점을 좀 더 못보여 준 게 아쉽죠.”
김강우의 연산군 연기 절정은 단연코 ‘돼지 장면’이다. 수십 마리의 돼지와 함께 방에 갇혀 피칠갑을 한 채 신하들을 노려보는 광기의 연산군은 소름을 넘어 공포감이 느껴질 정도다. 우스갯소리겠지만 김강우도 그 장면에서 공포감을 느꼈단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자신이 연기한 인생의 시간 속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힘든 장면이었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한 10마리 정도 됐나? 우선 돼지란 동물은 통제가 안돼요. 걔들은 이상하게 자꾸 누우려고 해요. 한 마리 일으켜 세우면 또 한 마리가, 이게 반복이 되니깐 죽을 맛이죠. 거기에다가 제가 피를 온 몸에 바르고 있잖아요. 아시겠지만 이 피가 달콤한 물엿 같은 것으로 만들어요. 전 더군다나 하의를 다 벗고 있구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하하하. 얘들이 달려들어서 피를 핥으려고 하는데 진짜 무서웠다니까요. ‘간신’ 다시 찍으라구요? 그 장면만 아니면 다시 찍겠습니다(웃음)”
그 장면을 찍으면서 흡사 ‘지옥의 묵시록’에 등장한 말론 브랜도의 모습을 연상했다는 김강우다. 돼지와의 악몽 때문에 그런 명장면이 등장했으니 그의 노력에 충분히 박수를 보내도 아깝지 않을 정도다.
“원래 캐릭터를 빠져나오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데 이번은 좀 틀리네요. 약간의 잔상이 남는 정도랄까. 그래도 곧바로 OCN 드라마 ‘실종느와르 M’을 찍게 돼서 다행이에요. 그 작품도 좀 쎈 스타일인데 오히려 치유가 됐다고 할까. 하하하. 우선은 ‘간신’을 정말 많이 봐주셨으면 해요. 그만큼 많이 노력했으니. 근데 너무 쎄서 여성분들이 싫어할까 걱정이긴 해요. 하하하.”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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