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은 1938년 일제 강점기 경성 인근이다. 유럽의 건축 양식을 본 딴 한 기숙학교. 첩첩산중 숲속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마치 있어선 안 될 듯한 공간 속에 자리한 이 학교는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주란(박보영)을 맞이한다. 주란의 눈에 처음 들어온 학교의 압도적인 위용은 낯설음과 공포의 경계선에 서 있다. 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주란을 경계한다. 아니 외면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쟁자가 한 명 더 생겼다는 것에 불만이 생긴 것이다. 그들에겐 신세계인 도쿄로 갈 수 있는 기회 비용이 그 만큼 더 비싸진 셈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외면해도 주란에게만큼은 따뜻한 연덕(박소담)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한다.
‘경성학교’는 그렇게 별 다를 것 없는 사춘기 ‘걸로맨스’의 전형성을 따라간다. 흡사 퀴어적인 해석력을 낳을 요지가 다분할 정도로 주란과 연덕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 폐병에 걸려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던 주란은 연덕의 응원에 체력장 테스트에서 일취월장한다.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고 혹은 학교를 빠져나가 둘 만의 비밀 장소에서 때론 모두가 있는 공간에서 눈빛만으로 사랑인지 혹은 우정인지를 알 수 없는 교감을 나눈다.
다소 텐션을 잃은 채 느슨하게 흘러가던 ‘경성학교’의 스토리는 중반 이후 급격하게 변곡점을 맞이한다. 주란의 눈에 비친 학교의 이상함은 하나 둘이 아니다. 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쓰러지는 학급 친구들. 하루가 멀다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을 먹이는 교장(엄지원). 사라진 소녀들이 이따금 주란의 눈에 목격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상증세는 곧이어 주란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교장의 얼굴은 차가운 미소가 그려진다.
‘경성학교’의 기본적인 정서는 공포를 바라보고 있다. 산속 외딴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속에 자리한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서양식 건축물의 학교. 한국영화에서 그동안 사용해 온 학교란 공간의 문법적 사용처는 ‘기담’식의 의문형 부호였다. 무언가 일어날 것 같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 차갑고 냉정하면서도 생명력을 갖고 있는 하나의 객체로서 학교는 기괴한 배경으로만 사용돼온 공포의 대명사였다. ‘경성학교’ 역시 초반 주란과 연덕의 ‘걸로맨스’를 보듬어 주고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이 바로 ‘학교’ 자체였다.
하지만 후반 들어 ‘학교’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그 시선은 급격하게 식어버린다. 일제강점기 여러 고증을 바탕으로 이뤄진 시나리오 속 반전의 묘미는 ‘학교’란 공간 자체가 가진 이중성을 극명하게 살리고 있다. 물론 ‘학교’란 공간이 영화 ‘경성학교’의 스토리 맥을 결정하는 주요한 포인트와 장치는 아니다. 사라진 소녀들과 교장의 숨은 야욕 그리고 일제의 천인공노할 만행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알아왔던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죄악 가운데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경성학교’는 아름답기에 더욱 추악하고 잔인한 이면의 모습을 그려낼 도구로 소녀와 학교란 공간의 조합과 교배를 이뤄낸 것 같다. 이런 시도라면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근래 등장한 한국영화 가운데 스토리와 미장센 그리고 공간의 활용도가 가장 균형미를 갖춘 결과물이다. 개봉은 오는 18일. 15세 관람가.
P.S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장르적 이종교배가 상당히 거북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영화적 미장센 두 가지만으로도 관람의 욕구 충족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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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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