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 눈 먼 여검객 월소의 안식처, 다원
해바라기 밭으로 둘러 싸여 고려인의 왕래가 거의 없는 이량동 마을 언덕에는 월소가 생활하는 다원이 존재한다. 아랍상인들이 찻잔을 기울이고 세상의 얘기가 오가는 이곳은 ‘당시 저런 장소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이국적이고 이색적인 공간으로 창조됐다. 무역이 활발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진귀한 아랍 소품들과 아랍 패턴의 패브릭으로 실내를 디자인해 더욱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한 다원은 눈 먼 여검객 월소를 위한 맞춤형 공간이기도 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녀를 위해 실내를 가로지르는 물길을 내고 찻잔을 흘려보내게 했다. 또 실내 소품에 다양한 질감을 부여하여 촉각을, 차내음과 연기를 통해 후각을 강조함으로써 시각 대신 다른 감각이 월등히 발달한 월소 캐릭터를 더욱 부각시키려 했다.
NO2. 적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공간, 유백의 사저
권력을 쫓으며 살아온 유백은 늘 적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인물이다. 평소에도 늘 단단한 갑옷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그의 거처 역시 ‘어두운 미로’처럼 설계해 외부로부터 완벽한 방어 태세를 갖추게 했다. 또한 원하던 모든 것을 가졌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고뇌를 간직한 그의 어두운 속내처럼 사저 안은 규모와 동선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훗날 복수를 위해 숨어든 홍이는 이 미로 같은 공간을 헤매며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 이상의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사저 깊은 곳 월소를 가두는 밀실 또한 유백과 월소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감을 반영한 복합적인 공간으로 설정되었다. 여러 겹의 문과 발로 분리돼 있는 이곳은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함께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너무나 멀어져 버린 두 사람의 감정과 관계를 투영하고 있다.
NO3. 권력자 유백과 그를 동경하는 젊은이들의 공간, 무술대회장
기존의 사극들이 수평적인 배열을 선보여 왔다면 ‘협녀, 칼의 기억’은 전체적으로 수직적인 배열을 강조한다. 영화 초반 두 눈을 사로잡으며 등장하는 무술대회장의 높고 큰 공간은 젊은 검객들의 뜨거운 에너지와 만나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한다. 젊은 검객 홍이와 율은 유백이 보는 앞에서 거침없는 무술실력을 보여주는데, 무술대회장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듯한 두 사람의 뜨거운 에너지는 유백을 넘어 하늘로 치솟아 오를 듯 힘차다.
한편 이 대회를 개최한 유백은 대회장 위의 높고 먼 곳에서 이들을 관망하듯 내려다보고 있어 그의 권위가 더욱 부각된다. 수많은 장정들을 쓰러뜨리던 율과 홀연히 나타나 그를 가볍게 제압하는 홍이,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는 유백의 조화는 묘한 긴장감을 발산하며 드라마의 강렬한 시작을 알린다.
NO4. 권력을 열망했던 유백의 모든 것이 집약된 곳, 무령궁
무령궁은 권력에 눈이 멀어 동료들까지 배신한 유백의 욕망이 절정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그의 욕심과 권력을 표현하기 위해 무령궁은 끝없이 거대한 규모로 디자인 되었다. 가장 화려하고 웅장해야 했던 무령궁 세트는 2억원의 예산이 들었으며 무형문화제 장인이 만든 가벽과 금빛 소품들을 활용해 화려함의 끝을 보여준다.
또한 이곳은 유백과 홍이의 숨막히는 마지막 대결이 펼쳐지는 장소로 수직 활강의 움직임이 많은 와이어 액션을 자연스럽게 녹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높이와 둘레의 기둥들을 배치, 공간을 위아래로 크게 확장시켰다. 가장 높은 곳을 원했던 유백의 마지막 목적지 무령궁은 보는 이를 사로잡는 거대한 스케일로 영화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것이다.
캐릭터 맞춤형 공간으로 얘기에 풍성함을 더하고 있는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은 오는 13일 전국 극장가를 찾는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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