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추’ 속 현빈을 기억하는가. 떠돌이 위조 지폐범이지만 시한부 같은 짧고도 강렬한 사랑을 했던, 그 만큼 저릿한 이별과 마주해야 했던 한 남자, 훈. 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배우 박송권이 입었다.
살인죄로 교도소에 수감된 여자 애나가 어머니의 부고로 3일간 외출을 나오며 우연히 마주치는 남자 훈과 갖는 특별한 만남을 그린 영화 ‘만추’가 무대에 오르는 것.
한국 멜로영화 사상 걸작으로 꼽히는 이만희 감독의 동명의 영화(1966)를 리메이크한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2011년)가 원작이다. 당시 현빈과 탕웨이가 주인공 훈과 애나를 각각 연기해 호평을 이끌었다. 첫 연극이자 7번째 리메이크.
연극 ‘만추’의 무대에서 현빈이 연기했던 남자주인공 훈은 박송권과 이명행이, 탕웨이가 연기했던 애나는 김지현과 김소진이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캐스팅 라인업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이가 있다. 바로 배우 박송권. 박송권은 다수의 뮤지컬 무대에 올라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육감적인 퍼포먼스로 박력 넘치는 연기를 펼친 것.
그런 박송권이 올해 가을, 바바리 코트를 입고 가슴 저릿한 사랑을 연기하는 훈으로 분한다. 대극장 무대에서 벗어나 소극장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더 가까이 호흡하고 있다.
공연이 열리고 있는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박송권은 “행복하다”는 말로 운을 뗐다. 그는 “이렇게까지 바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요즘 스케줄이 많아서 행복하다. 스케줄이 많고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피곤하지만 행복하다”라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박송권은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연극 ‘만추’ 무대에 오르면서 연말에 공연과 공연 연습을 병행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찌 소극장 무대에 오를까.
“무대에 대한 갈망이 있었죠. 예전에 연극 ‘갈매기’를 했었어요. 당시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의 연속이었죠. 그러나 제 연기에는 아쉬움이 많았어요. 의욕만 가지고 작품에 임한 것은 아닐지 아쉬웠죠. 늘 뮤지컬무대에 오르며 연극을 살펴보게 됐어요. 좋은 작품을 발견하면 해보고 싶고 그리웠어요.”
박송권은 소극장 무대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고 했다. 밀도 깊은 감정연기에 대한 목마름이었을까.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고 있는 박송권이다.
“노래는 혼자서 연습할 수 있죠. 그러나 대사만으로 이루어진 연기를 하려면 상대역과의 호흡이 중요해요. 함께 맞춰야 하고 어떻게 해야할 지 대화를 통해 나누는 게 중요하죠. 이번 작업을 통해 연습을 많이 했어요. 마음을 비우게 되더라고요.(웃음) ‘만추’를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죠. 다시 연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배우란 어떤 것인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과 반성도 했어요.”
올 한해 박송권은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명성황후’ 등 다수의 무대에 오르며 숨가쁘게 활약했다. 그는 “지금 시점에 ‘만추’를 만나게 돼 중요하다.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추’는 결코 만만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6번이나 리메이크 될 만큼 인기를 얻은 작품이고, 또 현빈-탕웨이 주연의 영화 ‘만추’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국내 관객들의 주목을 받은 것. 현빈과의 비교도 불가피하다. 부담은 없었을까.
“어떻게 애나를 만날 것인가, 낯설게 마주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원론적인 결론은 훈이 젊은 청년이라는 것이죠. 청년의 직업이 무엇이든 애나한테 호기심을 갖게 됐을거에요. ‘돈을 빌려달라’고 한 것도 호기심 때문이죠. 남자로서 호기심에 주목했어요. 만남을 갖고 오가는 수 많은 대화 속에서 훈은 많은 고민을 했을거에요. 애나를 관찰하고 함께 호흡하며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젖어들었겠죠. 쌓아온 감정을 키스를 통해 확인하게 되죠.”
박송권은 영화 ‘만추’에서 애나에 비해 전사가 펼쳐지지 않았던 훈에 주목했다. 무대를 통해 훈의 전사, 즉 아픔에 주안을 뒀다고도 했다.
“애나는 전사를 통해 충분히 설명 된 인물이죠.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훈도 분명 가슴 아픈 전사를 가진 인물이라는데 주목했어요. 밑바닥 사람들의 만남이잖아요.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될 것 같았죠. 훈이 가진 아픔에 대한 설명이 있지 않으면 감정이 쌓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훈의 아픔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무게감의 경중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연습과 대화를 거듭했어요.”
결국 ‘만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아픔이다. 저마다 가슴 속에 아픔을 품고 있을 터. 박송권은 관객들이 가진 아픔에 위로가 되고자 하는 바람을 전했다.
“관객들이 가진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죠. 종류가 다르지만 경중을 가늠할 수는 없잖아요. 각자의 아픔을 ‘만추’를 통해 조금이나마 함께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보듬어주고 싶어요. 그 아픔, 이야기, 제가 들어드릴게요.”
한편 박송권이 무대에 오르는 연극 ‘만추’는 오는 11월 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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