換亂 이후 ‘과잉 투자 공포증’ 재계 확산‘안 쓰고 안 뽑는’ 보수적 경영 기조 뚜렷향후 성장 위해서는 투자 드라이브 나서야
외환위기 봉착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재계 내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여러 경영 혁신 작업을 통해 많은 것이 새롭게 생기고 바뀌었다.
2000년대 들어서 우리 재계에서 확실히 자취를 감춘 것은 문어발식 투자다. 주력 업종이 아님에도 남들이 하는 업종이라고 무조건 경영에 참여했던 문어발식 투자 때문에 멀쩡했던 기업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현재 기업들이 진행하고 있는 ‘셀프 빅딜’ 역시 비주력 사업을 정리함으로써 과거에 진행됐던 문어발식 투자의 흔적을 하나둘씩 지워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기조가 한 가지 있다. 바로 보수적 투자 기조다. 웬만해서는 돈을 잘 안 쓰려 한다. 과거에 비해 경영 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이 워낙 커졌기 때문에 두려움이 많다. 투자액 기준으로 뽑아낼 수 있는 이익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국내 30대 기업들의 명목상 투자 규모는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2013년 30대 기업의 총 투자액은 116조8000억원이었지만 올해는 136조원 수준으로 16% 정도 늘어났다. 그러나 재계 상위 대기업의 투자만 늘어났을 뿐 중견·중소기업의 투자는 사실상 제자리 수준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과거 구조조정 이후 고용의 폭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 30대 기업의 신규 인재 채용 규모는 지난 2013년 14만4500명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16% 가량 줄어든 12만1000여명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기업의 투자와 고용 계획을 쉽게 요약하자면 실질적 투자의 규모를 줄이고 인력 고용의 폭을 줄여 불필요한 자금 유출을 막아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안 쓰고 안 뽑는’ 보수적인 경영 기조가 뿌리 깊게 박힌 셈이 됐다.
재계가 이처럼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과거 재앙의 핵심이 됐던 ‘방만경영’의 단초를 제거해 안정적인 수준에서 회사를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보수적 투자 기조의 연장을 매우 우려스러운 시각으로 보고 있다. 18년 전과 같은 외환위기 현상이나 대규모 기업의 ‘릴레이 부도’ 사태 등이 재발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현재 생존한 기업들은 웬만큼 기반이 갖춰진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기조가 계속 된다면 추락의 위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추락보다 더 무서운 저성장의 굴레에 빠질 수 있다. 이미 일본이 저성장의 공포에서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고 자칫 우리나라도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공격적 투자를 통해 내수를 살리고 고용 확대를 통해 전체 소비 시장을 늘릴 수 있도록 자신감을 피력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바깥의 사정이 불확실하다고 하더라도 미리 투자를 해놔야 다른 지역의 시장이 부진한 틈을 타 새로운 성장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이 그동안 쌓아둔 유보금을 내수 시장에 풀어낼수록 시장 부양 효과가 생기는 만큼 내수 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위기 요소를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한 보수적 경영 기조는 경영 안정에 기여할 수 있지만 한계를 뛰어넘는 성장에는 독이 될 수 있다”며 “주력 산업 성장을 도모하는 방면으로 각 기업이 효율적 투자를 집행해 성장 동력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andrew.j@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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