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나는 배우. 조승우를 표현하는 말로 이 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조승우에게는 진한 사람 냄새가 났다. 노트북 모니터를 향하던 두 눈이 조승우에게 고정됐다. 그가 내뱉는 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표정, 몸짓, 눈빛까지 강렬한 이끌림이었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많은 배우들과 만났지만 조승우는 다른 이들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를 정리하며 그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 귀한 줄 알고, 무대 귀한 줄 아는 조승우는 천상 배우였다.
고백하건데 조승우를 향한 편견이 있었다. 무대나 작품을 통해 완벽한 모습을 보이던 조승우지만 자신의 팬을 둘러싼 일에 날 선 반응을 보이고, 뮤지컬계에서 부당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그이기에 언론을 통해 비춰진 그는 까칠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한낯 편견에 불과했다. 실제로 만난 조승우는 따뜻했다. 어느 질문 하나 허투루 답하는 법이 없었고, 기자를 향해 투정도 부리며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애교도 보였다. 그렇게 그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조승우는 2012년 10월 개봉한 영화 ‘복숭아 나무’(감독 구혜선) 이후 3년 만에 영화로 돌아왔다. 다수의 뮤지컬을 통해 쉴 틈 없이 관객과 만나온 조승우지만 스크린을 통해서는 좀처럼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런 그가 영화 ‘내부자들’을 선택했다.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은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는 내부자들의 의리와 배신을 담은 범죄드라마이다. 이병헌은 대기업 회장과 정치인에 이용당하다 폐인이 된 정치깡패 안상구 역을, 조승우는 빽도 족보도 없이 근성 하나 믿고 버텨온 무족보 열혈 검사 우장훈 역을, 백윤식은 국내 유력 보수지 정치부 부장을 거친 현역 최고 논설 주간위원 이강희 역을 각각 연기한다. ‘파괴된 사나이’, ‘간첩’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삼고초려 끝에 조승우는 우장훈 옷을 입었다. ‘내부자들’을 세 번이나 거절했지만, 운명처럼 그는 작품과 만났다. 왜 그리고 출연을 망설인걸까.
“일부러 영화 작업을 미룬 것은 아니었어요. 2,3년 내에 굵직한 10주년 공연들이 연달아 있었죠. 뮤지컬 ‘베르테르’, ‘헤드윅’, ‘맨오브라만차’ 무대에 연달아 올랐죠. 동시에 ‘내부자들’을 찍은거에요. 일부러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당시 주변에서 ‘왜 ’내부자들‘을 안하려 하느냐’는 말이 많았어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작품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이런 이야기가 관객의 입장에서 보고싶을까 망설였던 것 같아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텍스트를 통해 접한 세상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죠.”
조승우는 딱 하나만 바라봤다. 그가 작품을 통해 음미한 세계는 너무나 씁쓸했다. 그래서 선뜻 출연하기가 망설여진 것. 그가 얼마나 작품을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완벽주의자 답게 허투루 작품을 선택하고, 연기하지 않는 조승우였다.
‘내부자들’은 윤태호 작가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웹툰이 큰 인기를 얻은 만큼 영화는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이병헌, 백윤식이 가세해 덩치를 키웠다. 조승우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원작에 없는 캐릭터 우장훈을 연기했다. 원작에 없는 인물인 만큼 치밀한 분석과 전사가 필요했다.
“우장훈 검사가 정의를 추구하지만 복수를 원하고, 표면적으로 정의를 원하지만 결국 사회적으로 학연, 지연에 큰 피회를 보는 사람이 되죠. 경찰을 그만두고 검사가 되었지만 큰 벽에 부딪혀요. 그 지점을 주목했어요. 관객들께서도 회사, 학교, 교육기관 등에 종사하는 분들께서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존재하실 거라 느끼는 분들도 계실 거고,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했죠. 우장훈은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해요. 주변 것들도 교묘히 이용해가면서 단 하나의 목표를 추구하죠. 우장훈을 받고 뚝심 있게 가자 싶었어요. 입체적인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연기를 단순화 시켰죠.”
조승우는 단순하게 우장훈에 접근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극 중 우장훈은 바로 옆에 앉아있을 것처럼 현실적이다. 그렇다고 무거운 인물만은 아니다. 이는 이병헌과의 차진 대사가 한 몫 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극의 분위기는 두 배우만 만났다 하면 이내 살아난다.
“이병헌과 애드리브를 많이 주고받았어요.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죠. 상황에 충실했고 자연스레 애드리브로 이어졌죠. 이병헌도 나도 다양한 애드리브를 주고받은 덕에 한 장면에 여러 버전이 나오기도 했어요. 욕은 거의 애드리브였어요. 급기야 욕을 수집했어요. 경상도 욕 대사는 주변인들에게 자문을 구했어요.”
‘믿고 보는 배우’ 조승우-이병헌의 만남은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심지어 ‘내부자들’이 브로맨스 영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둘의 연기호흡은 좋았다. 욕이면 욕, 액션이면 액션, 찰떡궁합을 선보이며 명불허전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조승우는 이병헌에게 매력을 느꼈다.
“이병헌과는 언젠가 꼭 한 번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죠. 이병헌은 흥행하나 바라보고 가는 배우는 아니에요. 다양한 장르 영화를 하는 이병헌이잖아요. 작품성 있는 영화부터 장르성이 강한 영화, 또 천만이 넘은 영화 ‘광해’까지 선택 기준을 종잡을 수 없지요. 이병헌한테 기준을 물으니 시나리오라고 하더라고요. 저와 비슷해요. 25년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것도 그렇고, 한류를 넘어 헐리우드까지 진출했잖아요. 진짜 독한거에요. 외국에 나가면 다시 신인으로 시작해야 하는 건데 그 과정을 모두 밟아 성공을 이룬 배우잖아요. 대단해요. 배울 점이 많은 형이에요. 자극을 주는 좋은 배우이자 형을 얻었어요.”
조승우는 백윤식과 영화 ‘타짜’ 이후 9년 만에 재회했다. ‘내부자들’에서 조승우와 백윤식은 팽팽하게 맞붙는다. 큰소리를 높이거나 몸싸움을 벌이지 않는다. 힘있는 대사를 주고받으며 마치 말로 하는 격투기 같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두 배우의 카리스마 대결이 볼만하다. 다시 만난 백윤식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여전히 멋지고 젊은 감각을 가지고 계신 배우에요. 같이 있으면 많은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이 있어요. 백윤식 선생님이 아버지 세대지만 한국 근현대사를 겪은 배우에요. 6.25도 겪은 분이라서 당시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더라고요. 또 옛날 영화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촬영 대기하는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즐겁게 촬영했어요. 그런 시대를 살아왔지만 감각이나 스타일, 주관이 젊어요. 트렌드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배우에요. ‘타짜’ 촬영 당시 선생님의 싸리한 눈빛을 한 번 보니 감정이 반사적으로 나왔거든요. 이번 작품도 그랬어요. 카메라가 돌아가고 선생님의 눈빛을 바라보면 생각이 모두 사라져요. 흘러가는 대로 맡길 뿐이죠.”
조승우는 무대를 일컬어 자신의 고향이라고 했다. 영화, 공연, 방송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승승장구하는 그였지만 그는 겸손했다. 무대는 그의 초심이기도 하다. 여전히 무대 귀한 줄 아는 초심을 간직한 조승우였다.
“저는 연기자에요. 무대를 좋아하는 연기자이자 고향(무대)을 좋아하는 연기자죠. 물론 그 무대가 카메라 앞일 수도 있어요.(웃음) 하지만 무대가 고향인 배우라고 늘 이야기를 합니다. 무대가 가장 좋아요.”
조승우는 ‘내부자들’과 ‘베르테르’로 스크린, 무대를 통해 각각 관객들과 만난다. ‘내부자들’에서는 검사 우장훈으로, 뮤지컬 ‘베르테르’에서는 베르테르로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정의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검사에서 첫사랑의 시린 아픔을 지닌 여린 베르테르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조승우다.
“‘내부자들’을 본 관객이 ‘베르테르’를 보면 무대 위 저 사람이 우장훈 검사야? 하실 거 에요. 그렇게 전혀 다른 배역의 옷을 입는게 짜릿해요. 예전에 영화 ‘클래식’을 찍을 당시 소녀팬이 생겼어요. 처음으로 소녀팬이 생겨서 좋았는데, 영화 ‘와니와 준하’를 보고 ‘어떻게 저럴 수 있냐’라며 팬 카페를 탈퇴하시더라고요. 역할을 잘 소화했다고 위안했죠.(웃음) 또 ‘맨오브라만차’ 공연 당시 할아버지 분장을 한 무대 위 제 모습을 보고 ‘조승우 왜 안나와’라고 물으셨대요. 기분이 좋았죠. 그게 연기고 배우죠. 매번 배역과 작품에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늘 주어진 기회에 감사해요. 배우로써 가장 큰 보람은 배역에 자신의 색을 입혀가는 과정이죠. 그게 배우를 하는 재미가 아닐까요?” [사진=쇼박스]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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