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없는 경제회의 ‘서별관회의’···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 앞서
청와대 본관 서쪽에 있는 회의용 건물 서별관에서 열리는 밀실회의는 이른바 ‘서별관회의’로 불린다. 언제, 누가 참석해 어떤 주제를 갖고 논의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속기록조차 남지 않는 이 회의에서 주요 경제정책이나 금융정책 등이 다뤄지고 의견이 조율된 사항만이 공식화된다.
서별관회의는 지금껏 뒷말만 무성했다. 우선 회의 장소가 청와대 옆에 있는데다, 주요 참석자들도 청와대 경제수석, 경제부총리, 금융감독원장, 금융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 사실상 경제실세들이다. 회의 개최 날짜는 화요일이나 일요일 등에 주로 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딱히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나라의 경제분야 최고위급 회의가 밀실에서 비밀리에 열리고 있는 것이다.
서별관회의의 구체적인 회의내용이 전해진 것은 최근에서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이 서별관회의에서 4조2000억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에 대한 대우조선 지원방침을 결정했다는 주장이 전해지면서다. 흔적이 남지 않는 회의체의 막강한 권한이 알려진 셈이다. 2013년 4조5000억원을 지원받고도 회생하지 못한 STX조선해양의 지원방안, 동양그룹 사태 등도 여기서 논의된 주제들이었다.
기준금리도 서별관회의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0월에 한은 총재가 서별관회의에 참석한 이후 기준금리를 10월과 11월 3번에 걸쳐 1.25%포인트 내린 게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4월 말 이주열 한은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서별관회의가 열렸고, 한 달 여 후 한은은 1년 만에 기준금리를 내렸다. 또 4월 말부터 국책은행의 구조조정 자금 확충방안 논의가 본격화됐다.
서별관회의 자체가 경제논리를 바탕으로 한 결정보다 정책논리를 앞세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업 불황이 장기화될 조짐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부터 제기됐지만, 이명박정부 시절 선제적인 구조조정은 뒷전으로 미뤄졌다. 현정부 들어서도 지난해 ‘터지기’ 직전이었던 순간에 대우조선을 지원해 대량실업이나 경제리스크를 ‘미루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20일 야3당은 기업구조조정 관련 청와대 서별관회의에 대한 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서별관회의에 대한 청문회라기보다 구조조정 전반에 관한 청문회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청문회가 열린다면 지금까지 서별관회의에서 다뤄진 민감한 내용들과 회의체 성격을 들춰내려는 야당의 움직임에서 자유롭기는 힘들다. 특히 청와대를 정조준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서별관회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열려 20년 가까이 됐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총 5번의 정부를 거치면서도 흔들림 없이 존재해 왔다. 김대중정부의 카트대란, 노무현정부의 저축은행 부실사태, 이명박정부의 중소조선소 부실 등 역대 서별관회의가 가감없이 모두 드러나면 여야 모두 이로울 게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야당이 합심한 이유는 간단하다. 16년 만에 찾아온 ‘여소야대’ 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레임덕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 때 정부의 밀실회의로 9조원 가량의 국민세금이 낭비됐고, 대기업 부실을 눈감아줘서 경제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을 공식화하겠다는 것이다. 야당이 서별관회의와 구조조정을 묶어 청문회를 열겠다는 이유다.
한편, 야3당은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와 함께 기존에 합의했던 어버이연합 지원의혹, 법지비리 사건, 백남기씨 사전 진상규명, 가습기 살균제 등 5개의 청문회에 공조키로 했다.
세종=현상철 기자 hsc329@
뉴스웨이 현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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