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묵 삼성생명 부사장이 논란을 촉발한 약관 검증의 책임을 사실상 금감원에 떠넘기자, 윤석헌 금감원장이 발끈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날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에 대한 정무위의 종합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 부사장은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과소 지급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이 “약관 내용을 보면 어디에도 만기환급금 적립분을 제외한다는 표현이 없다. 적립액을 위한 재원도 함께 지급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지적하자 “약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에 대해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의 판단 내용과 외부 법무법인의 자문 내용의 차이가 워낙 커서 법원 판단을 받아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이사회에 한 것”이라고 답했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의원이 “가장 기초가 되는 계약상 권리·의무가 약관을 통해 규율되는데 약관에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위해 운용수익을 차감한다는 내용이 없다”며 재차 삼성생명의 책임을 묻자 이 부사장은 “약관에는 그런 내용에 대한 문구가 없지만 산출방법서에 정한 바에 따라 한다고 돼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약관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부사장의 이 같은 발언은 불명확한 약관을 이유로 과소 지급한 즉시연금을 일괄 지급하라는 금감원의 권고를 거부한 삼성생명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가입자들에게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 연금을 지급했으나, 이와 관련된 내용은 약관이 아닌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만 기재돼 있었다.
특히 이 부사장은 복잡한 산출방법서와 관련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의 질의에 “보험상품은 산출방법서상의 산식이 복잡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워 보험 전문가인 보험개발원 등이 검증한다. 보험은 상품 구조가 어려워서 금융감독원에도 보험 쪽에만 보험상품감독국(보험감리국)이 있고 은행이나 증권에는 없다”며 “소비자에게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보고 전문가들이 대신 검증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보험약관을 대신 검증해야 할 전문가, 즉 금감원이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윤 원장도 이 같은 점을 의식한 듯 이 부사장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발언권을 얻어 반박에 나섰다.
윤 원장은 “수식이 복잡하고 설명이 어려우면 소비자들은 알아볼 방법이 없다. 그러면 결국 불완전판매되가 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윤 원장과 이 부사장은 소비자를 상대로 한 소송을 놓고도 상반된 입장으로 마찰을 빚었다.
이 부사장은 삼성생명이 보험 가입자를 상대로 소송을 남발하거나 소송 제기를 유도한다는 제 의원의 지적에 대해 “보험금 지급 청구 건수가 연간 200만건인데 저희가 제기한 소송은 1~2건이다”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윤 원장은 “삼성생명이 즉시연금을 과소 지급한 계약이 5만5000건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비자들이 200만건 중 1건 소송을 한다는 건 소송으로 가면 다 포기한다는 것”이라며 “이것도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문제가 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삼성생명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가입자 A씨에게 과소 지급한 연금을 지급토록 한 분조위의 결정에 따라 모든 가입자에게 미지급금을 일괄 지급할 것을 권고했다.
삼성생명은 2012년 9월 즉시연금에 가입한 A씨에게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 연금을 지급했으나, 상품의 약관에는 연금 지급 시 해당 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없었다.
삼성생명은 올해 2월 분조위의 결정을 수용해 A씨에게 과소 지급한 연금과 이자를 전액 지급했으나, 동일한 유형의 다른 가입자에게는 미지급금을 일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삼성생명은 7월 26일 이사회에서 금감원의 일괄 지급 권고를 거부하고 상품 가입설계서상의 최저보증이율 적용 시 예시 금액보다 적게 지급한 금액만 지급키로 했다.
삼성생명이 지난달 24일과 27일 지급한 미지급금은 71억원(2만2700건)으로, 금감원이 일괄 지급을 요구한 4300억원(5만5000건)의 60분의 1 수준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생명은 민원을 제기한 가입자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해 보험금 청구 소송비용 지원에 나선 금감원과 충돌했다. 삼성생명은 처음 소송을 제기했던 민원인이 분쟁조정 신청을 취하하자 다른 민원인을 상대로 동일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국내 생명보험업계 1위사인 삼성생명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 지급을 거부하면서 한화생명, KDB생명, 미래에셋생명 등 다른 생보사들도 줄줄이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한화생명은 지난달 9일 즉시연금 가입자 B씨에게 과소 지급한 즉시연금을 지급하라는 분조위의 분쟁조정 결정에 대한 불수용 의견서를 금감원에 제출했다.
한화생명이 의견서를 통해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한 것은 분쟁조정을 신청한 B씨 1명이지만, 이는 동일한 유형의 다른 가입자들에게도 일괄 지급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화생명은 약관의 연금 지급액 관련 항목에 ‘만기보험금을 고려해 공시이율에 의해 계산한 이자 상당액에서 소정의 사업비를 차감해 지급한다’는 문구가 있다.
한화생명의 즉시연금 미지급금은 850억원(2만5000건)으로 삼성생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KDB생명은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가입자 C씨에게 과소 지급한 연금을 지급토록 한 분조위의 결정을 이달 초 수용키로 했다.
금감원은 지난달 18일 분조위를 개최해 연금액 산출 기준에 관해 명시 및 설명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C씨에게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하지 않은 연금액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KDB생명은 C씨와 동일한 유형의 다른 즉시연금 가입자들에게 전체 미지급금을 250억원을 일괄 지급하지는 않기로 했다.
C씨가 가입한 즉시연금 약관에는 ‘연금 지급 개시 시의 연금계약 책임준비금을 기준으로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 정한 바에 따라 계산한 연금액을 연금 지급기간 동안 지급한다’고 기재돼 있다.
미래에셋생명은 이달 중순 금감원의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 지급 권고를 거부하고 법적 대응 결과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미래에셋생명의 경우 분조위에 즉시연금 관련 금융분쟁 신청이 접수되지 않았으나 사전에 이 같은 입장을 정했다.
한화생명과 즉시연금 약관 유형이 동일한 미래에셋생명의 즉시연금 미지급금은 약 200억원이다.
뉴스웨이 장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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