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선생은 1836년 음력 2월 22일(그해 양력 4월 7일) 세상을 떠났다. 실학박물관과 다산연구소에서는 매년 양력일인 4월 7일에 다산을 흠모하는 시민들과 함께 모여 묘제를 지내 왔다. 서세 170주기인 지난 2006년부터 지내 14년째이다.
다산 정약용은 200년 전인 1819년에 '흠흠신서'를 저술했다. 흠흠신서는 조선의 과학수사 지식을 집대성한 한국법제사상 최초의 율학 연구서이며 법의학, 법해석학을 포괄하는 형법연구서이다. ‘흠흠欽欽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는 뜻의 이 책의 서문에 정약용은 집필 의도를 이렇게 남겼다.
‘비참함과 고통으로 울부짖는 백성의 소리를 듣고도 태연하고도 편안할 뿐 아니라 구제할 줄 모르니 화근이 깊어진다.‘
당시 지방고을에서는 살인사건이 한번 발생하면 한 마을이 온통 쑥대밭이 될 정도였다. 수령이 시신을 검시하고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 아전들은 백성들의 세간을 약탈하고, 무고한 백성을 감옥에 가두는 등의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정약용은 이러한 폐단을 바로잡고 관리들을 계몽할 필요를 느꼈고 사건의 판례와 수사 내용을 담은 수사노트이자 실무 지침서를 쓰게 된다. 이렇게 총 30권 10책으로 구성돼 350여 건의 사례를 담고 있다. 타살인지 자살인지 판별하는 방법은 물론, 진짜 정신이상자를 구분하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써 놓아 관리들이 실제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묘제의 초헌관은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이며 아헌관은 김종규 문화유산신탁 이사장이다. 또한 종헌관은 손진우 성균관 수석부관장이 관장 한다.
다산 묘소에서 묘제 및 헌다례를 봉행한 데 이어, 실학박물관 열수홀에서 기념 강연과 공연(11:00~12:30)이 있다. 강연은 김호 경인교대 교수가 `흠흠신서 저술 200주년의 현재적 의미`라는 제목으로 진행한다. 왜 다산이 왜 '흠흠신서'를 썼는가? 오늘날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이며 그 정신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등을 중심으로 강연한다.
공연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춘향가) 보유자인 신영희 명창이 맡았다. 강연과 공연이 끝나면 참석 시민들은 다산 유적지를 산책하면서 다산 선생을 기리는 한편 봄을 만끽할 예정이다.
2019년은 다산 정약용선생이 유배에서 풀려나 남양주 마재마을로 귀향하시고 난 이듬해로 '흠흠신서'를 완성한 2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묘제와 기념행사는 경기도민과 국민들이 다산선생을 역사적 인물을 넘어 높이 우러르고 본받는 큰 스승으로 자리매김 한다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 금번 묘제행사를 통해 다산선생의 유풍(遺風)이 면면히 계승됨을 경기도민과 국민에게 주지시키고 다산문화의 향수를 충족시켜 국가와 지역 구성원으로서의 자긍심이 고취되기를 기대한다.
뉴스웨이 안성렬 기자
ansungy0648@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