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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책임경영’ 내세운 혁신 전도사···글로벌 LG 성장 이끌어

[구자경 별세]‘자율·책임경영’ 내세운 혁신 전도사···글로벌 LG 성장 이끌어

등록 2019.12.14 13:11

수정 2019.12.17 17:45

이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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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창업회장 장남···45년간 기업 경영 전념‘강토소국 기술대국’ 신념 강조···글로벌 LG 도약

2012년 2월 구 명예회장이 연암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LG그룹 제공2012년 2월 구 명예회장이 연암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LG그룹 제공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장남으로 ‘LG그룹 2대 회장’을 지내며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1925년 경남 진주에서 연암 구인회 LG 창업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45년 진주사범학교 졸업 후 교편을 잡았으나 1950년 선친의 부름을 받고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했다.

이사로 입사했으나 그는 공장에서 현장 근로자들과 함께 먹고 자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럭키크림 생산을 직접 담당하며 현장경험을 쌓기 시작했으며 금성사의 첫 라디오 생산 과정 등도 직접 챙겼다.

구인회 창업회장이 1969년 타계하자 1970년 LG그룹의 장남 승계 원칙에 따라 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25년 동안 LG그룹을 이끌었다.

취임 첫 해인 1970년 그룹 매출은 520억원에 불과했으나 1994년에는 30조원을 넘어섰다.

그는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과 경쟁력뿐이라는 ‘강토소국(疆土小國) 기술대국(技術大國)’을 강조했다.

이 같은 신념으로 구 명예회장은 연구개발과 기술확보에 힘쓰며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1982년 미국 알라바마주의 헌츠빌에 세운 컬러TV공장은 국내 기업에서 최초로 설립한 해외 생산기지며 재임기간 동안 50여개의 해외법인을 설립했다.

독일 지멘스, 미국 AT&T, 일본 히타치·푸지전기 등 글로벌 기업들과 합작 경영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특히 1966년 호남정유와 미국 칼텍스의 합작, 1974년 금성통신과 지멘스와 합작은 잡음없이 이뤄진 동신에 선진기술을 배운 좋은 사례로 꼽힌다.

1995년 2월,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 명예회장(왼쪽)이 고 구본무 회장에게 LG 깃발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LG그룹 제공1995년 2월,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 명예회장(왼쪽)이 고 구본무 회장에게 LG 깃발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LG그룹 제공

그는 잇따라 LG 기업을 기업공개하며 투명경영 활성화에도 앞장섰다.

구 명예회장은 1970년대 대기업 최초로 그룹 모체 기업인 락희화학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으며 이어 전자 업계 최초로 금성사가 기업공개를 했다.

당시 기업공개는 기업을 팔아 넘기는 것으로 오해해 이를 우려하는 분위기였으나 구 명예회장은 이에 앞장서 우리나라 초기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고 민간 기업의 투명경영을 선도한 것이다.

금성사 이후에도 1974년 금성통신, 1976년 반도상사·금성전기, 1978년 금성계전, 1979년 럭키콘티넨탈카본 등 10년간 10개 계열사의 기업공개를 단행해 안정적인 자금 조달을 통한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

1988년에는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을 발표해 그룹의 전면적인 경영혁신을 이끌며 ‘경영 혁신 전도사’로도 불리기 시작했다.

구 회장은 선진화된 경영 체제 정착을 위해 ‘자율과 책임경영’을 원칙으로 내세우며 회장 1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관행적인 경영체제 탈피에 나섰다.

당시 고객과 사업을 잘 아는 전문경영인이 권한을 갖고 자율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며 결과에 책임을 지라는 ‘자율과 책임경영’은 LG 내부와 재계에서도 선뜻 실행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경영체제 개념이었다.

1990년 2월에는 ‘고객가치 경영’을 기업 활동의 핵심으로 삼은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 ‘인간존중의 경영’을 선포했다.

구 명예회장은 경영혁신 활동이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직접 임직원들을 만나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2년에 걸쳐 그룹 전 임원 500여명과 오찬 미팅을 갖기도 했다.

1975년부터 20년 동안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후계자 수업을 받게 한 구 명예회장은 1995년 70세의 나이로 장남에게 회장직을 물려주며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는 재계 첫 ‘무고(無故) 승계’이기도 했다.

1995년 회장직 승계 당시 구 명예회장은 고 구본무 회장에게 “경영혁신은 끝이 없다. 자율경영의 기반 위에서 경영혁신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 그룹 구성원 전체의 공감대를 형성시켜 합의에 의해 일을 추진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은퇴 후에는 난, 버섯 연구 등 평소 꿈이었던 취미활동을 하며 보냈다.

구인회 창업회장이 생전 강조한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는 말에 따라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철저하게 평범한 자연인의 삶을 살았다.

한편 이 밖에도 구 명예회장은 1972년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냈으며 1987년 18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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