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코로나19 영향 유커·다이궁 급감 실적 직격탄신규 사업자 계속 늘어 과당 경쟁 심화 경영난 심각결국 한화·두산·에스엠·탑시티 백기들며 사업권 반납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면세업은 이제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5년 사이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 보따리상(다이궁)에 힘입어 고공 성장했으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보복, 일본과의 무역전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외부 요인에 흔들리며 요동쳤기 때문이다.
이 기간 서울 시내면세점 수는 두 배 이상 늘어났다가 신규 사업자 4곳이 도로 특허권을 포기하는 등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한때 대기업간의 각축장이 됐던 면세시장은 ‘빅3’인 롯데·신라·신세계마저 사업 존속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2015~2016년 세 차례 면세점 각축전···오너 총출동 = 2015년 7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면세점’을 둘러싼 유통 대기업간 경쟁이 치열했던 해였다. 전통적인 유통업인 백화점, 대형마트가 저물어가는 가운데 면세점만 유커 증가에 힘입어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을 당시였다. 정부는 그해 2000년 이래 15년만에 신규 서울 시내면세점 3곳을 신설하기로 결정, 대기업이 모두 참여 가능한 일반 입찰 2곳, 중소중견기업만이 가능한 제한경쟁까지 총 3개 신규 사업자를 뽑았다.
대기업 2개 사업권 입찰에는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의 합작법인인 HDC신라면세점과 롯데·이랜드·신세계·현대백화점·한화갤러리아·SK네트웍스 등 무려 7개의 대기업이 참여했다. 최종 승자는 HDC신라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였다. 무려 14대1의 경쟁률을 뚫은 중소중견기업 면세 사업자로는 하나투어, 로만손, 토니모리 등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에스엠(SM)면세점이 선정됐다.
같은해 11월에는 연말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두고 ‘2차 면세대전’이 이어졌다. 이 입찰에서 기존 사업자인 롯데와 SK는 각각 신규 사업자인 신세계와 두산에게 사업권을 빼앗겼다. 롯데면세점은 국내 1위 매장 명동본점 수성에는 성공했으나 월드타워점을 잃었다. SK네트웍스는 하나뿐인 워커힐 면세점을 내주면서 면세 사업을 사실상 접게 됐다.
이듬해 10월에도 신규 특허가 3곳 추가돼 ‘3차 면세점 대전’이 열렸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이 SK네트웍스·HDC신라면세점을 제치고 신규 사업권을 거머쥐었다. 롯데는 월드타워점을 다시 열게 됐고, 신세계는 강남 진출에, 현대백화점은 면세업 진출에 성공했다.
2015과 2016년 세 차례에 걸친 서울 시내면세점 쟁탈전은 면세점 유치를 위해 그룹 오너가 전면에 나서는 등 경쟁이 치열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월드타워점 수성을 위해 2015년 ‘상생2020’ 계획을 언론 앞에서 직접 공개했고, HDC신라면세점의 경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HDC현대산업개발과의 합작법인 설립을 주도한 데 이어 프레젠테이션(PT) 심사장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신세계가 2015년 1차 면세점 대전에서 특허 획득에 실패한 후 그해 말 두 번째 특허에 도전할 당시 사업계획서에 직접 ‘사업보국(事業報國)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달라’는 내용의 인사말과 자필 서명을 넣었다.
오너일가의 자녀들도 면세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라는 특명을 받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은 한화갤러리아의 여의도 면세점 TF에 참여했고,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장남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역시 두산의 두타면세점 오픈을 준비했다.
◇5년만에 대기업 신규 사업자만 두 곳 퇴출 = 그러나 ‘장밋빛 전망’은 오래 가지 못했다. 시장 경쟁은 점차 심화하는 상황에서 ‘큰손’인 중국인에 의존한 시장 구조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2016년 시작된 사드 배치 보복은 잘 나가던 면세 시장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듬해 초에는 중국 정부가 한국으로의 저가 단체 여행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한한령을 내리면서 그간 물 밀 듯 들어왔던 유커가 자취를 감췄다. 이어 면세시장이 다이궁에 의존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여행사나 가이드에 지급하는 송객수수료가 치솟아 면세업을 운영하기 위한 비용도 크게 늘었다.
반면 서울 시내면세점은 5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1~3차 면세점 대전을 치르기 직전인 2015년 6월 말까지 서울 시내면세점은 6곳에 불과했으나 특허가 계속 추가되면서 지난해 상반기에는 13곳까지 확대됐다. 면세시장 환경은 요동치는데 경쟁자가 급증한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에는 서울 시내면세점 대기업 특허가 3곳 추가됐는데도 현대백화점만 단독으로 응찰할 정도로 서울 시내면세점의 인기가 크게 식었다.
출혈 경쟁 심화와 수익성 악화로 면세기업들의 이탈도 시작됐다. 지난해 4월 한화갤러리아가 여의도 갤러리아 63 면세점 특허를 반납하기로 한 데 이어 두산마저 같은해 10월 두타면세점 특허를 반납하기로 하면서 면세업에서 철수했다. 지난 1월에는 탑시티면세점이, 3월에는 중견기업 1위 사업자인 에스엠면세점마저 서울점 특허를 반납하기로 했다.
◇외부 변수에 취약···규모의 경제 갖추기 어려워 = 이처럼 면세업이 외부 변수에 취약하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의 무계획적인 특허 발급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면세사업자들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면세사업은 몸집을 키워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바잉 파워를 늘려 수익성을 키울 수 있는 대표적인 사업으로 꼽힌다. 그러나 사업자가 난립하면서 브랜드, 유커, 다이궁 등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했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2015년 이후 면세사업에 뛰어든 신규 사업자들 중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있었던 업체들은 소수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당분간 면세시장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에는 일본과의 무역전쟁으로 일본인 관광객도 줄어들었다.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당분간 외국인 관광객이 더 이상 유입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한한령 완화 움직임이 있긴 하나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종결되지 않는 한 면세시장 회복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롯데면세점의 1분기 매출액은 8727억원, 영업이익은 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7.5%, 96.0% 급감했다. 신라면세점은 1분기 매출액이 8492억원으로 31% 감소했고, 영업손실이 490억원 발생해 적자 전환했다. 신세계디에프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0.5% 급감한 4889억원에 머물렀고 영업손실이 324억원 발생해 적자 전환했다.
2분기 국내 면세시장의 실적도 악화하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4월 국내 면세점 총 매출액은 9867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50.5% 줄었다. 5월 매출액 역시 1조179억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51.2% 감소했다.
뉴스웨이 정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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