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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전략가 정지선, 몸집불리기 성공했지만 시장 선점은 실패

[현대백화점은 지금①]M&A 전략가 정지선, 몸집불리기 성공했지만 시장 선점은 실패

등록 2020.11.09 10:43

정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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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취임 후 2010년대 들어 매년 평균 하나씩 사들여유통업에서 제조업으로 영토 확장 그룹 자산 5배 불려보수 경영기조 신사업 뒤늦은 진출로 시장 선두 놓쳐

유통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유례없는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전통적 유통업의 정체, 정부의 규제, 일본과의 무역갈등, 중국의 한한령 등으로 이미 요동치던 유통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당장의 실적뿐만 아니라 향후 이 후폭풍이 어떤 식으로, 어디까지 갈지도 미지수다. 오랜 불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간 내놨던 처방들이 더 이상 답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각 유통사들은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는 한편 사업 전략을 재편하는 등 또 다시 새로운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유통업계 그룹사를 중심으로 최근 현안과 경영 상황 등 현주소를 통해 짚어본다.[편집자주]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현대백화점그룹은 올해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체제를 갖춘지 14년차를 맞았다. 정 회장은 2010년대 들어 공격적인 인수합병(M&A)를 통해 현대백화점을 실질적인 ‘그룹사’로 키웠다.

정 회장은 M&A시장에서 ‘큰 손’으로 불린다. 안정적인 자금 흐름을 바탕으로 우량 기업을 사들였고, 그룹의 영토도 유통업에서 제조업으로 확대했다. 이렇게 사들인 기업들은 대부분 현대백화점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안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현재도 M&A와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공격적인 M&A도 최근 들어 속도가 저하되고 있다. 아울렛, 면세점, 화장품, 이커머스 등 신사업에 뛰어들었으나 경쟁사에 비해 이미 크게 뒤쳐진 상황이었고, 주요 사업에서 시장 1위 기업도 아직 배출하지 못했다. ‘잘할 수 없는 사업은 포기한다’는 보수적 경영 기조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보수적 경영 기조 버리고 사업 전방위 확장 = 현대백화점그룹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삼남인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이 1999년 일찌감치 계열분리를 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현대백화점을 현재의 ‘그룹사’로 키운 것은 실질적으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공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기존에는 ‘보수적 경영’으로 유명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03년 부천 중동점 이후 2010년 상반기까지 백화점 신규출점이 없었을 정도로 보수적 성향을 보였다. 정 회장 역시 2007년 말 취임한 이래 이런 기조를 이어가면서 2010년까지 그룹의 부채비율을 낮추는 등 내실 경영을 했다.

정 회장은 2010년 본격적으로 ‘공격 경영’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2010년 현대백화점그룹 창립 39주년을 맞아 열린 비전 선포식에서 “대규모 M&A 등을 통해 그룹과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사업을 적극 발굴하고 검토하겠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그룹은 이후 거의 1년에 1개꼴로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 특히 2012년 한섬과 가구업체 현대리바트를 인수한 것은 정 회장의 가장 큰 공으로 꼽힌다. 이전까지 유통업에 치우쳐져 있던 그룹 포트폴리오는 이를 기점으로 제조업까지 크게 확장됐다.

한섬 인수는 특히 정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 했다. 한섬은 시장에 나왔던 당시 우량 패션기업 매물로 꼽히면서 여러 기업들의 관심을 받았는데, 정지선 회장이 한섬 창업자였던 정재봉 회장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한섬은 부채비율이 극히 낫고 타임, 마인, 시스템 등 ‘노세일’을 표방한 고급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알짜기업으로, 일찍감치 M&A 매물로 나오면서 시장의 관심이 높았다. 정 회장은 당시 한섬 인수를 두고 라이벌 관계였던 SK네트웍스 패션부문을 2017년 한섬을 통해 인수하면서 패션 사업을 더 확대했다. 한섬은 지난해 매출액이 1조2598억원, 영업이익이 1065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3.0%, 16.8% 성장하는 등 국내 패션 시장 둔화에도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정 회장은 최근 급격히 성장 중인 ‘홈퍼니싱’에도 일찌감치 관심을 기울여 2012년 현대리바트를 사들였다. 현대리바트는 최근 가구업계 경쟁 심화로 실적이 다소 부진하나 홈퍼니싱 업계 2위까지 올라있다. 2018년에는 건자재 업체 한화L&C(현 현대L&C)를 인수해 리빙·인테리어 사업에서만 2조3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거두고 있다.

이외에 정 회장은 2009년 새로넷방송, 2013년 포항방송, 2018년 서초방송 등을 인수하며 케이블 TV(SO)사업을 확대했고, 2011년 LED조명업체 반디라이트(현대LED), 2013년 식품 가공업체 씨엔에스푸드시스템, 2015년 건설·중장비업체 에버다임(940억원)을 품으며 전방위로 사업 영토를 확장했다.

◇아울렛·면세점·이커머스·화장품 진출 늦어 = M&A를 바탕으로 현대백화점그룹의 덩치도 급격히 불어났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포털에 따르면 현대백화점그룹의 자산총액은 정 회장이 취임한 2007년 4조9390억원으로 지난해 15조3050억원으로 5배 이상 불어났다. 그룹 매출액도 2007년 2조8940억원에서 지난해 9조290억원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도 3940억원에서 7390억원으로 증가했다. 재계 순위 역시 2007년 34위에서 지난해 21위로 껑충 뛰었다.

그러나 여전히 현대백화점그룹은 이전의 보수적 경영 기조를 버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신사업들이 대부분 이미 시장이 어느 정도 조성되고 경쟁사가 이미 자리를 잡은 후에서야 시작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대형마트다. 경쟁사인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이 2000년대부터 대형마트 사업을 시작해 그룹 덩치를 불려온 것과 달리 현대백화점은 현재도 대형마트 사업을 하지 않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 대형마트 업종 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롯데와 신세계가 대형마트를 통해 2000년대에 벌어들인 이익이 상당하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그룹 재무 상태가 우량한 만큼 그 동안 홈플러스, 킴스클럽 등 대형마트 매물이 나올 때마다 원매자로 거론됐으나 사실상 이 사업 진출을 포기했다. 이미 오프라인 대형마트 업종 자체가 사양산업이 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형마트가 없다보니 이커머스 진출도 늦어졌다는 점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H몰, 더현대닷컴 등에 이어 지난 7월 신선식품 등을 다루는 현대식품관투홈 등 여러 전문몰을 운영하고는 있으나 그룹사 전체가 참여하는 자체 이커머스 플랫폼 구축은 포기했다. 현대백화점은 이커머스 사업 진출이 이미 늦어 경쟁하기가 어려워졌고, 지금에서야 대규모 투자를 통해 이커머스 플랫폼을 구축한다 하더라도 대형마트가 없어 시너지를 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롯데와 신세계가 롯데온, SSG닷컴(쓱닷컴)에 수조원을 투자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외에 현대백화점그룹은 아울렛, 면세점 진출도 유통업계 미래 먹거리로 꼽히던 당시보다 늦어져 경쟁사보다 뒤쳐졌고 복합쇼핑몰 역시 롯데의 롯데몰, 신세계의 스타필드 같이 내세울 만한 브랜드가 아직 없다. 여러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긴 했으나 여전히 업계 1위 계열사도 내지 못했다.

◇현대HCN 매각 자금으로 실탄 마련···사업 확대 지속 = 현대백화점그룹은 향후에도 현재 사업과 유관한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M&A를 지속한다는 구상이다. 이전에는 유통업과 큰 연관성이 없는 사업까지 ‘문어발식’으로 뛰어들었다면, 최근에는 ‘유통’과 ‘생활’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도 정비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최근 현대HCN 방송(SO)·통신 사업부문(이하 현대HCN)을 매각하면서 실탄을 충분히 마련했다. HCN의 매각 대금은 4911억원이나 계열사 현대미디어와 토지, 건물 등 매각 대금을 포함하면 현대백화점그룹이 쥐게 된 현금은 6000억원 수준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이번 매각 대금과 보유 현금을 바탕으로 신사업이나 대형 M&A에 적극 나선다는 구상이다. 투자 대상은 성장성이 높거나 유통, 패션, 리빙·인테리어 등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와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분야로 정하고 있다.

실제로 올 들어 지난 5월 기능성 화장품 전문기업 클린젠 코스메슈티칼의 지분 51%를 인수해 화장품 사업에 진출한 데 이어 8월 천연 화장품 원료 시장 1위 기업 SK바이오랜드를 품으며 사업 확대를 본격화 했다. 이 역시 다소 늦은 진출이고 화장품 시장마저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성장 가능성을 엿봤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매장 출점도 지속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해 말 경쟁사가 모두 불참한 가운데 서울 시내 면세점 두 번째 특허를 획득해 올해 초 동대문점을 열었다. 지난 3월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T1) 4기 사업자로 선정돼 공항 면세점 사업에 진출, 9월부터 임시 운영에도 돌입했다. 올해 대전과 남양주에 프리미엄아울렛을 열었으며 내년 2월 초에는 서울 최대 백화점인 여의도점의 문을 연다. 최근 서울에 백화점이 신규 출점하는 것은 현대백화점이 유일하다.

뉴스웨이 정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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