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축적한 노련한 엔지니어들을 지키는 동시에 젊은 인재들에게 '정년 고민 없이 일할 수 있다'는 미래 비전을 심어주기 위한 취지다.
최근 정부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정년이 지나도 일할 수 있는 '고령자 계속고용제'를 추진한다고 밝힌 만큼 기술 인력들이 정년을 넘겨 일할 기회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우수 인력이 정년 이후에도 계속 근무할 수 있게 '시니어 트랙' 제도를 시행하기로 하고 세부 내용을 가다듬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인사제도 개편을 통해 고령화, 인구절벽 등 환경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축적된 기술력과 경험의 가치가 존중받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현재 시니어 트랙 자격 요건, 연장 기한, 처우 등 구체적인 시행 지침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달 신년사에서 "훌륭한 기술 인재에게 정년이 없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선언해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SK하이닉스는 우수한 기술 전문가가 정년인 60세가 지나도 계속 근무할 수 있게 하는 기술 전문가 제도(Honored Engineer·HE)를 2018년 12월 도입해 2020년에 1호 전문가를 배출한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이와 함께 사내 대학을 통해 '정년없는 엔지니어'들을 키워나간다는 계획이다.
2017년 설립한 사내 대학 'SKHU'(SK hynix University)에는 '전문 교수 제도'가 있다. 임원들이 퇴직 후 SKHU 전문교수진에 들어가 자신이 보유한 지식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앞으로 정년이 없어진 우수 엔지니어들도 실무에 근무하면서 때에 따라서는 사내 대학에서 후배들 교육에 참여하는 형태로 일하게 될 전망이다.
지난해 이 대학의 교육과정은 6600개를 넘어섰으며, SK하이닉스의 구성원 3만명이 학습한 시간은 연간 160만 시간을 넘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 무한경쟁 상황에서 정부나 기업 모두 우수 인재를 외국에 빼앗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SK하이닉스처럼 기술 인재의 정년을 없애 은퇴할 나이 이후에도 국내에서 기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LG전자는 특화된 기술력 보유자를 비롯한 우수 인재의 경우 정년 이후에도 컨설팅 계약을 통해 자문역할을 맡기는 등 탄력적으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기술 인재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과 별개로 정부는 고령층 전반의 인력을 계속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지난 10일 고령층 계속고용제를 도입해 고령 인구가 60세 정년 이후에도 일할 수 있게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령자 계속고용제는 60세 정년이 지난 직원도 계속 일할 수 있게 기업에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기업들은 재고용이나 정년연장, 정년 폐지 중에서 고용연장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정년 연장을 법제화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우회적인 방식으로 고령층이 정년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앞서 생산인력 감소, 일손 부족 등의 문제를 겪은 일본도 70세까지 정년 연장을 권고하는 내용의 '고연령자 고용안정법'을 지난해 4월부터 실시 중이다.
다만 우수 기술 인력에만 더 일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과 달리 고령층 계속고용제를 기업들 전반에 적용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기업 상당수가 '60세 정년'도 부담스러워하는 데다 청년층 일자리를 뺏는다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반발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2019년 9월에도 계속고용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경영계가 난색을 보여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국내 기업 300곳을 조사한 결과 89.3%가 60세 의무화로 중장년 인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 기업은 그 이유로 높은 인건비, 신규 채용 부담 등을 주로 꼽았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정년 60세 의무화의 여파가 해소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령화 속도만을 보고 고용연장을 추진하면 MZ세대의 취업난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며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직무 전환 활성화 등으로 임금과 직무의 유연성을 높이는 고용시장 선진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뉴스웨이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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