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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의 골덴텍스 역사 속으로···삼성, 영욕의 직물사업 '눈물' 철수

이병철의 골덴텍스 역사 속으로···삼성, 영욕의 직물사업 '눈물' 철수

등록 2022.03.13 10:33

천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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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직물공장 창립 66년 만에 중단 예고'제일모직'사명·직물 사업 마저 역사 속으로이병철 회장 각별한 애정, 87년까지 이사로 공장인력 고용승계, 얽힌 실타래 어떻게 푸나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명품 원단의 대명사 '골덴텍스'가 남긴 업적은 화려하다. 국산 양복지(양복을 지을 옷감)를 만들어 보이겠다는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의 꿈과 열의로 탄생했다. 1950년대 '비싸도 외제가 좋다'라는 인식이 팽배했을 시절, 오직 품질만으로 우리 땅에서 외제 양복지를 몰아내고 국민 의복 생활에 새바람을 불어 넣었다. 혼수품으로도 큰 인기를 끌면서 국산 골덴텍스는 고급 옷감의 기준이 됐다. 나아가 모직 원조국인 런던 수출길에 오르면서 세계 산업계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골덴텍스를 개발한 제일모직은 국내 섬유산업 선도 기업으로 우뚝 성장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의 합병 발표로 '제일모직'이라는 사명(社名)은 창립 6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오늘날 삼성의 원동력이 됐다는 점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실질적 모태가 사라진 지 불과 몇 년 만에 영위 중인 사업마저 손을 떼게 됐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국내 유일하게 원단을 직접 생산하는 경북 구미공장 철수를 예고하면서 직물 사업은 66년 만에 막을 내린다.

◇ 국산 원단생산 66년 만에 직물 사업 중단 =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오는 11월 말 경북 구미공장의 문을 닫는다. 이병철 회장이 1956년 섬유 국산화를 선언하며 대구에 제일모직을 세우고 원단을 생산한 지 66년 만이다.

국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수입 원단과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점이 사업 중단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 2018년 이후 4년간 직물 사업의 누적 적자는 80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구미공장 평균 가동률은 69.08%에서 52.6%로 떨어졌다. 경영 악화 상황이 지속되면서 부득이하게 사업 종료를 결정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지난 2014년부터 삼성SDI 구미 사업장 일부 부지를 임차해 직물 사업을 운영해 왔으며, 계약 만료 시점(11월 말)을 앞두고 있다. 이를 감안해 부지 확보, 분사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했으나 직물 사업의 경쟁 우위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삼성그룹의 모태 사업 중 하나를 철수한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기업이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을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해 명분보다 실리를 택해야 하는 치열한 경쟁구도의 단면을 보여준다. 6년여 전 삼성그룹 토대인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으로 합병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60여년 훌쩍 넘게 사람들의 추억 속 각인된 제일모직의 이미지를 감안하면 그 아쉬움은 쉽게 떨치지 못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 삼성 모태 '제일모직' 이병철 회장 각별한 애정 쏟아 = 제일모직은 이병철 회장의 손때가 가장 많이 묻어 있는 기업이다. 1954년 창립 이후 1971년까지 대표이사를 맡았고 1987년 별세 전까지 등기이사로 등재됐을 만큼 애정을 갖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병철 회장은 1953년 제일제당을 설립한 뒤 이듬해인 1954년 9월 자본금 1억환(2500만원)을 들여 '제일모직공업 주식회사'란 이름으로 직물사업에 뛰어 들었다. 당시 제일모직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렸다. 1956년 6월 탄생한 골덴텍스는 '최고의 소재'를 뜻하는 대명사였다.

골든텍스로 만든 양복은 불티나게 팔렸다. 혼수품으로도 인기를 끌면서 결혼 예단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신부가 망신을 당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얼마나 잘 팔리던지 골덴텍스의 상표를 도용한 상품이 시중에 유통될 정도였다.

새로운 양복지 회사들까지 속속 진입하면서 우리나라는 섬유산업의 새 시대를 열었다. 제일모직은 외제 양복지를 몰아내는 동시에 국민 의복 생활을 향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가적으로는 연간 25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외화를 절약할 수 있었다.

정부 관계자들과 해외 귀빈들의 방문도 끊이지 않았다. 1957년 제일모직 대구 공장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의피창생(依被蒼生, 옷이 새로운 삶을 만든다)'이란 휘호를 남긴 것은 유명한 일화다.

모직의 원조국인 런던에 골덴텍스를 수출하기도 했고 1970년대 섬유 업계에서 수출을 주도했다. 섬유 산업이 어려움에 처한 1980년대 패션 산업의 문을 연 것도 제일모직이었다. 1985년 영국에 신사복 '갤럭시'를 수출하기 시작해 1987년 의류수출 1000만 달러를 달성했다.

1986년 이병철 회장은 "직물과 패션은 업종상 성장 한계가 있다. 새로운 업종으로 변신을 해 보라"고 지시한다. 이 회장이 타계하기 직전 제일모직은 석유화학사업에 뛰어들면서 '소재'기업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제일모직 사람들은 '선대회장이 남긴 마지막 유산'이라고 말한다.

2013년 제일모직은 패션사업부문을 관계사인 삼성에버랜드에 넘긴 이후 소재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해왔다. 2014년 7월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 합병하며 소멸 위기를 겪었지만,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꾸며 간신히 살아났다. 그러나 이듬해 삼성물산과의 합병 발표로 제일모직이라는 사명은 창립 6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구미공장 인력 고용승계 잡음, 실타래 어떻게 푸나 = 직물 사업 마저 중단을 예고한 가운데 구미공장 근무 인력들의 고용 문제는 과제로 남아있다. 현재 9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노사협의체를 꾸리고 있으며, 오는 23~25일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공식적으로 사업 종료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희망 퇴직이나 고용승계 등에 대한 내용도 이 자리에서 논의된다.

그러나 사업장 폐쇄를 둘러싼 현장 직원 반발이 만만찮은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 부천 물류센터 등 사측이 제시한 근무지가 자택과 멀고, 맡게 될 업무에 대해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그간 직물 사업을 담당해 온 인력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고용문제 실타래가 복잡하게 얽힐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시각이 나온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고용 유지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과거 이병철 회장의 직원이 남달랐다는 사실도 되돌아보게 된다. 제일모직 창립 초기 이병철 회장은 직원 경영진에게 기숙사 환경을 최상급으로 갖추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공장 곳곳에 좋은 나무를 심고, 연못과 분수까지 마련했다. 공장이 가동하면 1000명이 넘는 여직원들이 기숙사에 머물 예정이었다.

일부 임원들은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쓴다며 투덜대기도 했지만, 이병철 회장은 고집을 꺽지 않았다. '누구나 즐거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일할 수 있을 때 작업 능률도 오르고 직장에 대한 애착도 생긴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제일모직은 국산 양복지를 만들어 보이겠다는 이병철 회장 뿐 아니라 대한민국 여공들에게도 꿈의 공장으로 통했다. 때문에 신문에 여공 모집 공고가 나면 공장 앞은 인산인해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모직 합격자가 나오면 동네 입구에 축하 현수막을 붙일 정도였다. 당시 입사 경쟁률은 평균 50대 1 정도로 전해진다.

뉴스웨이 천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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