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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벤츠' 실라키스 되고 '지엠' 카젬 안되고···외투기업 韓 떠날 빌미 줬다

오피니언 기자수첩

'벤츠' 실라키스 되고 '지엠' 카젬 안되고···외투기업 韓 떠날 빌미 줬다

등록 2022.03.23 07:00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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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er
자동차 업계가 한창 시끄럽습니다. 카허 카젬 한국지엠주식회사 사장이 무려 '세 번째' 출국금지를 당하면서입니다. 카젬 사장의 혐의는 '근로자 불법 파견'입니다. 카젬 사장은 2017년 9월1일부터 협력업체 24곳에 근로자 1719명을 불법 파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카젬 사장은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닙니다. 한국지엠의 불법 파견 문제는 2005년부터 이어진 '현재진행형' 이슈입니다. 카젬 사장이 취임 첫 날부터 불법 파견을 지시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설사 파견근로를 인지했더라도, 미국에서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범죄가 이뤄진 경우 법인과 행위자를 동시에 처벌하는 '양벌규정' 탓에 카젬 사장은 범죄자로 몰릴 위기에 놓였습니다.

검찰은 유독 카젬 사장에게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9년 11월 첫 번째 출금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공식 기소장이 날라온 것은 이듬해 7월입니다. 하지만 출금 상태는 1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해외 일정에 차질이 계속되자 카젬 사장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4월 승소했습니다.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검찰은 조치 해제 일주일 만에 또다시 카젬 사장 발목에 족쇄를 채웠습니다.

세 번째 출금 배경에는 글로벌 GM의 리더십 교체 결정이 있습니다. GM은 지난 2일 카젬 사장을 중국 SAIC-GM 총괄 부사장에 임명한다는 인사 발령을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검찰은 바로 다음날인 3일 카젬 사장에 대해 출금 명령을 내렸습니다. 카젬 사장의 중국 임기는 오는 6월1일부터 시작됩니다. 카젬 사장 측은 우선 지난 14일 서울행정법원에 출금 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일정에 맞춰 한국을 떠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카젬 사장 발이 묶이면서, 한국지엠 후임 사장에 대한 인사도 중단됐습니다. 리더십 공백이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카젬 사장은 그동안 모든 사법절차에 협조해 왔습니다. 앞서 법원 결정으로 출금 효력이 중단되자 미국 디트로이트 소재 GM 본사로 출장을 갔고, 곧바로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선제적인 인사 발표 역시 도주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GM에서는 현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초 카젬 사장의 임기는 2020년까지였지만, 그는 5년째 한국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빼곡하게 잡혀있는 수사와 재판 일정이 첫 번째입니다. 한국지엠이 GM 임원들의 '기피 1호 대상'이 되면서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한 점이 두 번째입니다. 실제 카젬 사장은 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강성노조와의 마찰로 사무실에 감금 당하는 '테러'를 당한 것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합니다. 그는 글로벌 GM에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차례 전달했지만,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한국지엠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데, 이번 출금으로 리스크는 더욱 커진 실정입니다.

문제는 더 있습니다. 수입차 업체 대표들의 무수히 많은 '해외 도피'를 막지 못한 검찰이 만만한 한국지엠 이슈로 그간의 실수를 만회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상 카젬 사장은 희생양이 된 셈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를 수입차 1위로 끌어올린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전 사장은 2015년 부임했습니다.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하던 그의 마지막은 불명예스러웠습니다. 검찰이 2020년 벤츠코리아의 '배출가스 불법조작'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자 독일로 출장을 떠났고, 영영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도피'입니다. 그 사이 벤츠코리아에는 새로운 후임 사장이 선임됐고, 실라키스 전 사장은 북미지역 사장을 맡아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아우디코리아 전임 대표이던 요하네스 타머 전 사장 사례도 있습니다. 2017년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타머 전 사장은 재판이 시작되자 출장을 이유로 출국했습니다. 타머 전 사장은 재판에 응하지 않았고,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입니다. 키쿠치 타케히코 전 한국닛산 사장 역시 2016년 디젤모델 인증서류 조작 논란이 불거지자 개인 사유를 이유로 사임한 뒤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는 캐시카이와 Q5 등 여러 논란 차종을 판매한 장본인이지만,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동차 업계 뿐 아니라 외국계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 흉흉한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업적 제약이 많고 리스크가 큰 한국시장에 굳이 막대한 투자를 지속할 필요가 있냐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겁니다. 국내 기업들도 인건비가 싼 동남아 지역이나, 중요도가 큰 해외 시장에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마당에 한국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입니다. 단순 판매법인만 운영하는 편이 정부 간섭에서 자유롭고, 빠져나갈 구멍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인식이 겉잡을 수 없이 퍼지면, 결과적으로 한국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은행은 2018년 한국지엠이 심각한 유동성 문제로 존폐기로에 놓이자 8000억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조건으로는 '10년간 철수할 수 없다'는 확약을 내걸었습니다. 이제 6년 뒤면 GM과 산은이 약속한 데드라인이 다가옵니다. 현재의 분위기로는 2028년 이후에도 한국지엠이 국내 공장을 가동하고, R&D센터를 운영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소들이 다 떠난 다음에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지엠의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 자동차 회사의 일이 아닙니다. 외투기업들이 한국을 떠날 빌미를 스스로 제공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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