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박 강자 일진머티리얼즈→실리콘 음극재 스타트업 테라테크노스 인수과거 동박 기업 인수 철회 당시..."전략적 합치도 낮다고 판단" 언급일진머티리얼즈 아닌 동박 사업 자체에 매력 잃었을 수도높은 기술 장벽 담보하는 대규모 투자 및 니켈박 대체설 부담 관측실리콘 음극재, 전기차 주행거리·충전 속도 단축 효과에 선점 경쟁당장의 사업성 보다 성장성에 투자 해석...2차전치 밸류체인 구축
포스코그룹은 지난 1일 실리콘 음극재 스타트업 '테라테크노스' 지분 100%를 인수했다. 테라테크노스는 2017년 설립된 실리콘 음극재 스타트업으로, 열전달이 우수한 고온 액상 방식의 연속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다른 업체보다 생산성이 3배 이상 높다. 실리콘 음극재는 현재 리튬이온전지에 대부분 사용되고 있는 흑연 음극재 보다 에너지 밀도를 4배 정도 높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전기차 주행거리 향상은 물론 충전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어 차세대 음극재로 꼽힌다. 포스코그룹은 테라테크노스의 인수에 총 478억원을 투입했다.
포스코그룹은 이전까지 매물로 나온 국내 동박 시장의 강자 일진머티리얼스의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혔다. 미래 소재 기업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데다 과거 2019년 동박 제조 투자사 KCFT(현 SK넥실리스) 인수전에 뛰어든 전례 때문이다. 당시 포스코는 삼성증권을 자문사로, 인수전에 참여했다. 그러나 실사 후 전략적 합치도가 낮다고 판단해 인수 의사를 접었다. 이후 포스코그룹은 동박 기업이 매물로 나올 때마다 줄곧 인수 후보자로 거론돼 왔다. 2020년 솔루스첨단소재(두산솔루스)가 M&A시장에 나왔을 때 그랬고, 최근 일진머티리얼즈가 매물이 되자 포스코그룹은 여지없이 소환됐다.
동박은 전기차 배터리 음극재를 감싸는 막으로, 구리를 아주 얇고 넓게 펴서 만드는 게 기술의 핵심이다. 두께가 얇을 수록 음극에 더 많은 활물질을 채워 배터리 용량을 높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쉽게 찢기고 주름이 잘 생겨 높은 기술력을 요한다. 기술적 장벽이 높다보니 신생 혹은 후발 업체들의 진입이 쉽지 않다. 동박 사업의 대표 기업으로 SKC의 SK넥실리스, 일진머티리얼즈, 중국 왓슨, 대만 창춘, 일본 후루카와 정도가 꼽히는 이유다. 일진머티리얼즈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용 동박 시장에서 일본 후루카와(시장 점유율 43%), SK넥실리스(22%), 덴카이(13%)에 이어 세계 4위(13%)를 차지하고 있다.
성장성은 좋다. 전기차 1대에 동박 40kg가량이 사용되는데,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 그만큼 동박 사업도 성장할 수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용 동박 수요는 2020년 13.5만톤에서 2025년 74.8만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그룹이 일진머티리얼즈를 품게 되면 세계 4위의 동박 사업 시장 지위는 물론 높은 기술력과 사업성 및 수익성을 보장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포스코그룹은 이러한 일진머티리얼즈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일각에서 제기한 인수설에 대해 최정우 회장이 직접 나서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인수전에도 뛰어들 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딜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포스코그룹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과거 KCFT(현 SK넥실리스) 인수 의사 철회 당시 "전략적 합치도가 낮다"고 언급한 점을 돌이켜 보면 이 때부터 동박 사업 자체에 매력을 잃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실제로 포스코그룹의 2차전지 소재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면 주로 양극재와 음극재로 구성돼 있다.
업계는 동박 사업 특성상 대규모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 됐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점차 늘어나는 전기차 수요에 맞춰 동박 생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계속해서 자금 투입이 이뤄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동박 1만톤(t)을 생산하는 데 약 1500억원 규모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진머티리얼즈의 경우 현재 총 4만톤(t)의 동박 생산 능력을 보유 중인데 2025년까지 20만 톤(t) 이상의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경우 단기 내 대규모 자금 수요가 불가피하다. 최근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전에 대기업 참여가 저조한 바로 이 때문이란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가격으로 약 3조원이 예상되는 가운데 인수 후 곧바로 대규모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 M&A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시대로 접어들면 동박이 다른 소재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우려 역시 반영됐을 거란 추측이다. 관련 업계 일각에선 전고체에 함유된 황산화물이 동박을 부식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전고체 배터리 내 리튬메탈 음극을 적용하면 고체 전해질이 동박을 부식시킬 우려가 있어 기존 동박을 그대로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동박을 다른 소재로 대체하거나 니켈도금층을 추가하는 니켈박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니켈박 생산 이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미 동박 생산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상황에 니켈박 전환은 가능성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또한 니켈박 전환을 위해 추가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점도 버거운 요소다.
이에 반해 테라테크노스의 실리콘 음극재 사업은 당장은 돈이 되진 않지만, 성장성이 확실하다. 2024년부턴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그간 전기차는 배터리는 양극재 등 소재 밀도를 높여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충전시간으로 관심도가 옮겨갔다"며 "배터리 수명에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초고속 충전이 가능한 실리콘 음극재 관련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사들은 실리콘음극재 함량을 높이는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은 5% 미만의 함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2025년에는 10% 이상, 2030년에는 25% 이상을 목표로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는 실리콘 음극재 시장 규모가 2030년까지 매년 39%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이미 실리콘 음극재 시장에 진출, 선점 경쟁이 한창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실리콘 음극재 첫 양산에 성공했고, 실리콘 첨가 비중을 최대 10%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SK 또한 이미 생산 기술을 확보, 2024년 양산을 앞두고 있다. 테라테크노스를 찜한 포스코홀딩스는 연내 실리콘 음극재 증설을 시작해 2024년 상반기 안에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테라테크노스 기술에 미래기술연구원, 포스코, 포스코케미칼 등 포스코그룹의 이차전지 소재 관련 기술 역량을 더해 2030년에는 연간 생산량을 수만톤까지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넓게 보면 포스코그룹의 테라테크노스 인수는 2차전지 소재 밸류체인 구축의 일환으로도 읽힌다. 포스코그룹은 2010년 리튬 추출 기술 개발을 시작한 이래 △양·음극재 사업 본격화 △아르헨티나 리튬 염호 인수, 호주 리튬, 니켈 및 탄자니아 흑연 광산 지분 투자 등 2차전지 원소재 사업 강화 △2차전지 리사이클링 사업 진출 △차세대 2차전지소재 역량 마련 등 2차전지소재 공급에 필요한 밸류체인 구축에 주력해왔다.
지난 5일 열린 포스코그룹 '2차전지소재사업 밸류데이'에서 유병옥 포스코홀딩스 친환경미래소재팀장은 "지난 10여년간 선제적인 기술개발과 투자로 육성해온 사업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며 "포스코그룹의 양·음극재 사업은 2015년 380억원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경섭 포스코홀딩스 2차전지소재사업추진단장은 "포스코그룹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리튬, 니켈, 흑연 등 2차전지 원료부터 전구체는 물론 양·음극재 및 차세대 2차전지용 소재까지 생산, 공급하는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양극재 61만톤, 음극재 32만톤, 리튬 30만톤, 니켈 22만톤 생산 및 판매체제를 구축해 2차전지소재사업에서만 매출액 41조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정대헌 포스코케미칼 에너지소재사업부장은 '양·음극재 사업 현황과 전략'에 대해 "양·음극재 사업은 포스코그룹의 원료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기반을 착실히 다져 왔다"고 말했다. 이어 △차세대 이차전지용 양·음극재 개발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 △북미·유럽·중국 등 글로벌 생산능력 구축 △전략적 파트너십 확대 등을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시장을 선도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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