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도시정비(재개발‧재건축‧리모델링) 사업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나 부정부패 등 각종 잡음을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다. 이대로 가다간 1기 신도시 계획을 세워봤자, 구체적 실행단계에서 똑같은 문제를 겪을 뿐이다.
실제로 올해도 도시정비사업은 조용한 날이 없었다. 역대 최대 규모 재개발이라는 용산구 '한남3구역'은 조합의 비리의혹으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재건축에서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크다는 강동구 '둔촌주공'은 조합과 시공사의 갈등으로 사상 초유의 재건축 공사 중단과 유치권 행사 사태를 빚었다.
이외에 동작구 흑석2구역, 용산구 한남2구역, 울산 중구 B-04구역 등에서 시공권을 노리는 시공사들이 조합원을 대상으로 선물을 주거나, 상호비방전을 벌이는 일이 일어났다. 겉으론 클린 수주하겠다는 건설사들도 경쟁이 붙으면 어김없이 논란을 빚었다. 사회적 비난이 거세지자 최근엔 수의계약이나 들러리입찰이 늘어나는 기현상도 나타난다.
조합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많다. 도시정비사업은 조합원 대부분이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인이다. 각자 생업이 있는 탓에 조합 내부 사정에 어두운 경우가 많다. 반면 조합 임원이 가진 권한은 막강해서, 조합이 가진 토지수용권 행사를 비롯해 각종 행정절차와 협력업체 선정에 관여할 수 있다. 부정과 비리가 일어나기 쉬운 구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조합 내부에서 갈등을 겪는 것도 다반사(茶飯事)다. 상호 비방은 물론이고 고소고발에 폭력행위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일들로 인해 우리 사회에선 도시정비사업을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문제는 이런 일들을 겪고도 정부는 여전히 소를 잃어버린 외양간을 고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법망이 너무 느슨하다. 2003년 도시정비법 제정으로 뇌물 등을 받은 조합 임원을 공무원의 수준으로 형사(刑事) 처벌 할 수 있게 됐지만, 이외에 각종 업무관리나 행정처리 등에 대해선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거기다 모든 것을 법적으로 해결하기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법적으로 애매한 경우도 많다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정부와 서울시가 2019년 수주전에 과열에 대한 합동점검을 벌였던 한남3구역에선 입찰 지침을 넘어서는 과도한 조합원 혜택제공 등 법 위반 사례가 발견됐다. 하지만 처벌조항이 없어 재입찰을 진행하는 정도에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업계에선 정부차원에서 도시정비사업을 전담하는 관리 기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인허가 등 행정절차를 통합관리하면서, 갈등을 중재하고, 부정부패 등을 처벌하는 기능을 모두 가진 '범정부'적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
전담기관이 각종 절차를 통합 관리‧심의하면,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낭비를 줄일 수 있다. 현재 도시정비사업은 계획입안과 심의, 인허가, 각종 규제사항 등을 국토부와 광역지자체, 기초단체가 나눠서 담당하고 있다. 각 단계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고 반려되면 처음부터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각종 인허가에만 5~10년이 걸리곤 한다. 절차가 통합되면 인허가 기간이 절반이상 줄어들 수 있다.
지금 정부는 1기 신도시 정비를 위한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조직을 더 확대‧재편하고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TF는 정부와 공기관과 도시계획, 건설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건물을 짓는' 것에 너무 치우쳐 있다.
제대로 된 계획을 수립하고 신도시를 만들려면 법조계, 경찰, 언론, 회계, 기업인 등 더 많은 사회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 단순히 주거시설만 새로 짓는 게 아닌 변화하는 산업과 경제, 라이프스타일을 도시에 반영해야 한다.
갈등해결과 각종 부정행위 방지 및 처벌을 할 수 있는 기관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비업계에선 "조합장 1명 이상이 구속된 뒤에야 사업을 끝낼 수 있다"란 웃지 못 할 말이 있다. 비단 형사적 처벌이 아니더라도 각종 업무처리에 대한 불신으로 조합장을 해임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곳에선 조합과 일명 '비상대책위원회'라고 불리는 조합에 반대하는 조합원 단체가 서로 반목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나 기관 어느 곳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권한이나 책임을 분명하게 가진 곳이 없다.
특히 법적 소송이나 조사에 이르기 전에 갈등을 봉합하는 '중재' 능력이 부족하다. 서울시에서 건설전문가와 법률가로 이뤄진 '코디네이터' 제도를 도입해서 운영했지만, 둔촌주공 공사 중단 사태에서 그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내용에 대한 접근은 양쪽 의견을 정리하는 수준에 그쳤고, 책임을 피하기 위해 '판단'은 유보했다. 이후 공사는 중단 6개월 만에 재개됐지만, 조합은 1조원 이상의 손실비용을 떠안게 됐다.
도시정비사업은 각 단계별로 수많은 일이 얽힌 만큼, 제대로 된 중재를 위해선 더 다양한 전문가의 참여가 필요하다. 그리고 중재안의 판단요지는 문제가 법적으로 비화했을 때 주요한 참고사항으로 써야 한다. 이미 언론중재위원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는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미 준공 30년이 넘은 아파트가 서울과 수도권에만 약 50만가구다. 15년 이상 아파트까지 범위를 넓히면 300만가구가 넘는다. 1기 신도시 30만가구는 당장 들이닥친 대규모 실전이다. 1기 신도시 정비 전에 기틀을 잡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부동산으로 인해 또다시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목이 마른 뒤 우물을 파는 어리석음을 겪지 않아야 한다.
뉴스웨이 장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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