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회에서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임직원들에게 주문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 전환 속도가 빨라지는 시점에서 관성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였죠.
정 회장의 말대로 현대차그룹은 국내 어떤 대기업그룹보다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이미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 톱5에 오른 현대차그룹은 전동화를 비롯해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 중인데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차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였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신사업은 물론이고 본업인 자동차 판매에서도 '변화와 도전'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간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과 중국 자동차 시장에 다시 도전장을 던진 게 대표적입니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 없이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던 정 회장의 포부가 차츰 윤곽을 드러내는 모습이네요.
이 같은 변화와 혁신 노력을 바탕으로 현대차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국내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어들이는 회사가 됐습니다. 특히 그룹 전체가 똘똘 뭉쳐 미래차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다만 여름에 접어들면서 생산현장에서 들리는 잡음은 굉장히 아쉽습니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에 소속된 현대차 노조는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연속 무분규로 임금 및 단체협상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심상치 않습니다. 노조는 매번 관철되지 않았던 정년연장을 위해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인데요. 올해 요구안에는 20만원 가까운 기본급 인상을 비롯해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등의 내용도 담겨져 있습니다.
이미 현대차 노조는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의 7월 총파업대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6월 총파업엔 기아 노조만 참여했지만, 이번엔 약 5만명에 달하는 현대차 노조가 총파업 투쟁의 선봉에 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4년 연속 무분규를 달성했던 현대차 노조가 투쟁 깃발을 들어 올리는 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경직된 노사관계에선 변화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정 회장의 의지가 실현되긴 어려울 겁니다.
노동계 안팎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 내부에선 여의도를 방불케 하는 정치싸움이 치열합니다. 일종의 정당인 현장조직이 10여개나 있고, 이들 조직은 집행부 선거마다 공약을 내걸고 '대권'에 도전하죠. 국내 정치성향이 보수와 진보로 나뉘듯 노조도 강성파와 실리파로 갈립니다.
현대차 노조가 다시 파업에 나서게 된 것도 지난해 강성성향의 안현호 지부장이 당선된 결과인 것으로 보입니다. 실리성향이었던 이상수 전 지부장은 임기 내내 무분규를 이끌었지만, 강성성향 입장에선 무분규보다 파업에 익숙할테니까요.
이미 '귀족노조' 프레임이 씌워진 현대차 노조의 파업은 사회적 지지를 받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투쟁과 파업을 불사할 수 밖에 없는 건 표를 지키기 위한 전략적 판단일 겁니다. 연봉 대폭 인상 등의 요구안을 내놓지 않으면 탄핵과 같은 불신임 위기에 몰릴 수도 있을테니까요.
저는 현대차 노조 집행부가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유튜브 보면서 나사조이는 데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대중의 인식을 깨뜨릴 '변화'와 '도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노조 소식지에는 조합원들의 부고가 상당히 자주 올라옵니다. 무거운 부품을 다루는 탓에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공정에 따라 상당한 유해물질에 노출돼 있습니다. 포름알데히드, 톨루엔, 벤젠 등에 의해 발생하는 이른바 '새차 냄새'를 조합원들은 매일같이 맡고 있죠. 따지고 보면 연봉 1억원도 오래 근무한 조합원이 열심히 특근과 연장 근무해야 받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 집행부가 해야 할 일은 연봉인상과 정년연장보다 근로환경 개선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조합원들이 얼마나 위험환경에 노출돼 있는지 측정하고, 이를 투쟁의 명분으로 삼는다면 대중들도 따가운 시선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전기차 등 미래차 생산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직무교육도 결국 노조가 중심이 돼야 합니다. 전기차 생산체제가 본격화되면 자동차 기업의 전체 고용규모는 줄지 않겠지만 생산직 규모는 감소할 가능성이 큽니다. 기존 내연기관차 생산에 투입됐던 인력이 전기차 시대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스스로 고민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자동차 산업은 전동화 전환과 맞물려 대전환기를 맞이했습니다. 이에 따라 자동차 공장의 생산성 제고는 경영진의 의사결정이나 연구개발(R&D) 이상으로 중요해지고 있는데요. 이제 노조도 여름만 되면 파업부터 생각했던 과거와 이별하고 '변화'를 통해 새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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