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전문가 중 일부는 선거 전날인 11월 4일 해리스의 승리 확률이 트럼프보다 높다는 마지막 예측을 내놓기도 했지만, 결과는 박빙과는 거리가 먼 트럼프의 승리였다. 정치학자들이 늘 미국 정치제도의 문제로 이야기하는 '간선제 투표'도 이번에는 문제가 아니었다. 전국 선거, 선거인단 수 모두 트럼프가 해리스를 압도했다.
다시금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시대정신이 쩌렁쩌렁 울리는 것일까? 투표수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 대비 약 200만표가 줄었는데, 해리스는 바이든 대비 1000만표가 줄었다. 달리 이야기하자면 트럼프주의에 대한 미국 유권자의 새로운 선택이 아닌, 미국 민주당과 해리스 지지가 위축되어 벌어진 결과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 곳은 바로 흔히 경합주로 불리는 러스트벨트(Rust Belt)다. 펜실베니아,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일리노이주에 걸쳐 있는 철강, 자동차 등 중공업 기반 제조업 벨트를 이야기한다. 이번 선거에서 해리스가 지켜야 했던 '블루 월'이었던 러스트벨트는 일리노이를 제외하면 모두 압도적인 격차로 트럼프를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은 한편에서 러스트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불만을 이야기한다. 세계화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고, 공장이 이전하는 일을 겪었기 때문에 노동조합과의 연대에 기반을 둔 민주당 '골수 지지'를 철회했다는 것이다.
다른 한 편에서 트럼프의 인종주의, PC-Wokeism(정치적 올바름과 문화적 진보주의)에 대한 반대에 넘어갔다고 말한다. 이는 백인 노동자들이 백인의 우월함, 남성의 전통적 지위, 낙태 반대, 동성애 반대 등의 '문화 전쟁'에서 이들이 넘어갔다는 말이다. 히스패닉들도 보수적인 가족에 대한 기대 때문에 트럼프로 표심이 넘어갔다고 한다. 해리스 못지않게 트럼프의 득표수 역시 줄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자는 좀 과장 되었고, 전자는 일정 부분 맞는 말로 보인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기인 2008년부터 지금까지 민주당-공화당 정권 상관없이 '제조업 살리기'가 미국 정가의 핵심 화두였다는 점이다. 미국으로 공장을 다시 가져오는 '리쇼어링', 중국산 제품과 (완제품에 탑재된) 부품에 대한 막대한 관세를 통한 글로벌 제조기업의 FDI 유도 등 할 수 있는 수단은 다 동원했던 것 같다. 미국 민주당 지근 거리의 리버럴 등은 제조업 살리기가 품을 들이는 데 비해 성과가 별로 나지 않으니 이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까지 전한다.
실제로 민주당 공화당 어느 정권도 러스트벨트의 제조업을 살리는 데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막대한 제조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는 선벨트를 새로운 제조업 벨트로 등극시켰다. 마치 한국의 2000년대 이후 제조업 투자가 동남권 대신 경기 남부와 충청권에 집중된 것처럼 말이다. 고용 관점에서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이는 제조업이라는 것이 공장 몇 개 짓는다고 해결되는 문제 이상임을 시사한다. R&D를 포함한 다양한 직군의 '고부가가치 부문'과 연계된 공장이어야 고용의 질이 높고, 완성품부터 소재·부품·장비까지 '구색'을 갖춰야 지역 경제가 활력을 갖는다. '완성품 생산 기지'는 한계를 돌파하지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학, 공공 연구소, 제조업체의 연계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러스트 벨트의 경우는 어떻게 첨단 분야, 연구 기능과 전통적 제조를 엮느냐의 문제에서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트럼프 2기 정권은 러스트벨트를 살릴 수 있을까? 질문을 바꾸면 한국에서는 동남권 제조업체를 전환시킬 수 있을까? 관성적인 접근 말고 새로운 대안을 어떻게 구상하고 실행하느냐 문제는 상존한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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