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불확실성 확대에 전전긍긍하면서도 '국면전환 희생양' 될까 조용한 행보 지속
4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그룹은 비상계엄 사태가 사업에 미칠 영향을 놓고 내부적으로 머리를 맞대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이들 모두 외부엔 이렇다 할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회장 주관 사장단 회의를 열거나 직원에게 재택근무를 권고하는 등 움직임이 속속 감지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가 이뤄지는지에 대해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다.
A기업 관계자는 "전날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자 그룹 최고 경영진이 모여 중계방송을 지켜보며 새벽까지 비상대책회의를 열었고, 이날 계열사별로도 자체적으로 사업 태세를 점검할 예정"이라면서도 "안건은 물론 간단한 일정조차도 공유되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행사를 취소한 곳도 있다. 당초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상법 개정 관련 토론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분위기를 고려해 미루기로 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영풍·MBK파트너스 연합 역시 오전 9시30분께 기자간담회를 열어 임시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입장을 내놓으려 했다가 황급히 계획을 접었다.
이와 함께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비롯한 주요 경제단체도 아직까지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코멘트를 내놓지 않았다.
사실 재계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계엄 후폭풍에 국내외 증시에서 우리 기업 관련 종목의 가격이 곤두박질쳤고, 설상가상 환율까지 요동치면서 수출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국회가 비상계엄 저지에 성공함에 따라 주도권이 야당으로 넘어가면서 반도체 등 주요 산업 지원 정책이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점 역시 걱정스러운 대목으로 꼽힌다.
게다가 출범을 앞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산업의 보조금 지원 정책을 틀겠다고 예고하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 기업엔 정부의 도움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런 만큼 정부의 비상계엄 선언을 놓고는 아쉬움이 크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이미 일부 기업에선 벌써부터 탄핵 정국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럼에도 재계가 나란히 숨을 죽인 것은 자칫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 수 있다는 우려가 앞선 탓이다. 계업 저지로 수세에 몰린 정부 입장에선 국면을 뒤집거나 시장의 관심을 돌릴 만한 카드가 필요할 텐데, 이 와중에 불편한 내색으로 이들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각종 제재로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간 정부는 주요 기업의 사업구조 재편 과정이나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경과 등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때로는 강도 높은 코멘트를 내놓으며 자신들의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제동을 걸었다. 향후 관련 사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B기업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최대한 주목받지 않고 현 상황을 돌파하자는 분위기"라면서 "일단 사업에 미칠 타격을 최소화하는 데 신경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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