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 기업대출 8년 만에 역성장···수요·공급 모두 위축양보다 질적 성장하겠다는 은행들···기업대출 조여 RWA 관리경제성장 잠재력 훼손 우려···"정부 차원 구조개혁 노력 필요"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 기업대출은 상반기엔 가파르게 증가하다가 4분기 들어 감소로 전환했다. 연말 계절적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전분기 대비 감소로 돌아선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분기 중 기업대출 감소는 조선업 관련 부실채권을 정리했던 2016년 4분기(-8조3000억원) 이후 처음이다.
4분기 기준 은행 기업대출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 2022년엔 전분기 대비 14조9000억원 늘었고, 2023년에도 9조5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엔 3분기 19조4000억원 확대됐으나 4분기 들어 1조1000억원이나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4분기 은행의 기업대출 둔화는 시설자금과 운전자금 모두에서 나타났고,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수요가 줄어든 점이 기업대출 감소의 가장 큰 배경으로 꼽힌다.
중소기업의 경우 하반기 들어 수출 회복 기대감이 약화되면서 관련 자금 수요가 크게 위축됐다. 대기업 역시 미국 신정부 정책 방향, 중동지역 정세 등의 영향으로 대규모 신규 투자 대신 유동성 확보에 나선 상황이다. 개인사업자도 사업 부진에 따른 폐업 과정에서 대출 상환이 함께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업 대출 수요도 하반기 들어 대출금리가 반등하고 부동산 가격상승 기대가 약화되면서 크게 둔화됐다.
자본비율 관리 나선 은행···위험가중치 높은 기업대출 '부담'
은행들도 스스로 기업대출 공급을 줄이고 있다. 목표를 조기 달성한 주요 은행들은 지난해 4분기 프로모션 종료, 기업대출 감축시 성과평가(KPI) 가점 부여, 영업점의 금리 전결권 제한 등을 조치했다. 특히 신용위험 관리를 위해 중소기업 부실채권 매‧상각을 확대하고, 상대적으로 연체율 상승폭이 큰 업종에 대한 대출 심사도 강화했다.
이와 더불어 밸류업 추진, 환율 상승 등으로 자본비율 관리 필요성이 높아진 점도 상대적으로 위험가중치가 높은 기업대출의 축소 요인으로 작용했다. 코로나19 이후 크게 확대됐던 신규보증 등 금융지원이 축소된 것도 기업대출 둔화로 이어졌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업황 부진으로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악화되면서 중소기업의 대출 연체율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지난 2022년 말 0.32%에서 2023년 0.48%로 높아졌고 지난해 9월엔 0.65%까지 치솟았다. 특히 건설업과 숙박 및 음식점업의 연체율은 1%대를 돌파했다.
이와 관련해 천상영 신한금융지주 CFO는 지난 6일 컨퍼런스콜에서 "지난해 4분기 기업대출은 우량기업을 중심으로 취급해 0.9% 성장에 그쳤다"며 "앞으로는 성장기조를 바꿔 양보다는 질적 성장에 그룹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자산건전성 및 RWA 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더욱 보수적으로 취급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가계대출도 쉽게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가계대출 성장률을 GDP 성장률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선 가계대출, 기업대출 모두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인 셈이다.
당초 금융권에선 올해부터 기업대출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주택담보대출 금리만 내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과 정치권까지 가산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은행이 가계대출 영업을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분위기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은행들은 기업대출을 조이고 가계대출을 다소 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내외 금융·경제여건의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자본적정성 관리, 부동산·건설업 등 취약업종 중심의 여신건전성 관리 등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한은이 조사한 국내은행의 차주별 대출태도지수를 살펴보면 올해 1분기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3'에 그쳤다. 반면 가계주택과 가계일반은 각각 6과 3을 기록했다. 플러스는 대출태도 완화 및 대출수요 증가를 나타내며 마이너스는 그 반대를 뜻한다.
여신활동이 기업 부가가치 창출과 괴리···"신성장 정책적 지원 필요"
은행의 기업대출 성장 둔화는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경제를 더욱 짓누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깊다. 은행의 여신활동이 기업의 부가가치 창출 및 생산성 향상(고용, 기술개발, 설비 개선 등)과 동떨어져 있어 경제 성장의 잠재력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기업부채와 관련해 금융기관의 자금중개기능 효율성 저하와 거시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성장잠재력 훼손 차원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은행 등 금융기관은 추가적인 건전성 지표의 악화 가능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손실흡수능력을 보수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확충해야 할 것"이라며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금융 본연의 자금중개기능을 제고하기 위해 기업부채의 질적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정책당국도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혁신산업의 발굴과 미래 핵심 먹거리 산업에 대한 산업정책 차원의 전략적 자원배분 플랜 마련이 필요하다"며 "정상기업으로의 복귀가 어려운 한계기업에 대한 신속한 구조조정과 함께 업종별 특성을 고려한 취약부문의 지속적인 구조개혁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권규빈 한은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조사역은 "기업들의 투자위축이 성장 잠재력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신성장 부문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금융지원의 실효성을 높여 나가는 것과 더불어 장기적으로는 금융기관의 신용공급이 가계 및 부동산 부문에서 기업 및 신성장 부문으로 전환돼 자금 배분의 효율성이 높아지도록 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pkb@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