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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본시장 활성화의 근본 조건들

전문가 칼럼 류영재 류영재의 ESG 전망대

자본시장 활성화의 근본 조건들

등록 2025.02.2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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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활성화의 근본 조건들 기사의 사진

자본시장 살리기를 위한 밸류업, 상법개정 논의가 여전히 뜨겁다. 필요하고도 중대한 논의다. 자본시장을 살려야 할 당위성은 차고도 넘친다. 자본시장은 다음과 같은 선순환 고리의 출발점인 까닭이다. "주주이익 보호 → 자본시장 활성화 → 기업의 자본조달 용이 → 투자 촉진 → 경제 발전 → 주식 가치 증대 → 국민 재산형성에 기여"

일견 그럴듯한 선순환 연결 고리로 보인다. 하지만 위 선순환 고리 속에는 몇 가지 전제의 생략, 논리의 비약이 숨어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만 보자면, 주주이익 보호는 자본시장 활성화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여타 조건들이 보완될 때 그 다음 단계인 자본시장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중요한 조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주가는 경제 펀더멘털의 거울이다."라는 금언에서 그 조건을 찾아야 한다. 펀더멘털에는 밸류업 정책에서 강조하는 자기자본이익률 제고와 같은 수익성 측면만 있지 않다. 한국경제와 기업들의 미래 성장성 측면도 있다. 이 문제에 천착하지 않고 주주보호 정책만 운운하면 자본시장 살리기는 반쪽 또는 반의반 쪽밖에 되지 않는다. 제로섬 게임이 될 수도 있다.

한국경제와 한국기업들의 성장성 현주소를 생각해 보자. 우선 성장성은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것을 설득력과 임팩트 있는 내러티브의 존재 유무로 판단한다. 즉 국가 단위든 기업 단위든 성장성은 내러티브가 얼마나 큰가. 그것이 과연 강렬하고 설득력이 있는가로 볼 수 있다. 예컨대 최근 GM이 24년 4분기 호실적, 즉 좋은 수익성의 숫자를 발표했다. 하지만 주가는 내린다. 왜 그럴까? 감동적인 내러티브가 없는 까닭이다. 이처럼 시장은 그 기업에 비전이 있느냐, 꿈이 있느냐, 다른 말로 미래 성장성이 있느냐에 따라 더 크게 반응한다. 숫자만이 아닌 내러티브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한국경제는 이 '내러티브'를 잃어버렸다. 과거에는 대한민국의 강렬한 서사가 있었다. 1990년대에는 CDMA로 대표되는 글로벌 통신 강국의 꿈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초고속망으로 상징되는 인터넷 글로벌 리더의 서사가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2008년 전후 애플이 스마트폰을 제시하자, 한국은 빠른 추격자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가속화된 인공지능 경쟁에서 한국은 길을 잃었다. 미국은 저만치 앞서가고, 중국은 빠르게 따라붙고 있는데, 한국은 사실상 낙오하고 있다.

이러니 한국 특유의 내러티브가 상실된 것이다. 투자자들은 강력한 내러티브가 없는 자본시장에 좋은 밸류에이션을 부여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필자는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진단한다.

첫째, 3세·4세 경영세습에서 찾아야 한다. 아버지, 할아버지 잘 만난 것 외에는 경영 능력조차 검증이 안 된 후손들이 항공모함 대기업의 조타수를 맡고 있다. 기업 지배 지분은 편법 상속이 가능할지 모르나 기업가정신은 편법 상속이 안 된다. 그러니 할아버지가 쌓아 놓은 기업가정신의 내러티브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미래 비전과 방향성 제시도 함께 사라졌다. 이 내러티브는 기업가정신으로 충일한, 과거 이병철, 정주영, 이건희 등과 같은 기업가들의 상상과 통찰에서 나온다.

둘째, 덩치만 커진 대기업들을 정점으로 형성된 대한민국 기득권 카르텔에서 찾아야 한다.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 관료, 언론, 대형로펌, 사법부, 그들에 포획된 학자들이 연합하여 신생기업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을 쌓고 있다. 하지만 높아진 장벽은 그 안에 위치한 기업들의 생명력도 떨어뜨린다. 흡사 온실 속의 화초와도 같이. 한국에서는 이 기득권 온실효과로 인해 기업 성장의 신진대사에 큰 문제가 생겼다. 20년 전과 대동소이한 한국 자본시장 시가총액 순위가 그것을 웅변한다.

셋째,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가 R&D와 산업정책이 멈춰 섰다. 유럽연합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R&D투자 규모를 11.5배나 늘렸다. 미국은 2.8배 늘었다. 반면 한국은 2.2배 증가에 불과했다. 그 투자 규모로 비교해 보면 그 격차가 확연하다. 중국은 23년 기준 2158억 유로, 미국은 5,319억 유로인데 비해 한국은 425억 유로에 불과하다. 투자 없이 미래 성장과 신산업 추진은 없다.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상법 개정, 밸류업 지속 추진 꼭 필요하다. 하지만 위 세 가지 문제 해결이 보다 근본적이다. 따라서 이 문제도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 위 세 가지 문제가 함께 바뀌지 않는 한, 클릭 한 방으로 투자 국적을 옮길 수 있는 시대에 투자자들의 발걸음을 되돌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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