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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언덕’, 홍상수의 마법이 통하는 ‘공간의 발견’

[무비게이션] ‘자유의 언덕’, 홍상수의 마법이 통하는 ‘공간의 발견’

등록 2014.09.04 16:24

수정 2014.09.04 16:25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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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 언덕’, 홍상수의 마법이 통하는 ‘공간의 발견’ 기사의 사진

사실 그렇다. 영화란 감독 혹은 작가의 화법이 구현한 결과물이다. 그 영화를 통해 어떤 주제와 재미 그리고 하고 싶은 얘기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는 인공적 혹은 작위적인 형태가 되고 만다. 대중들은 그것을 상상력이라고 치환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를 완벽하게 거부하는 감독이 있다. 일단 이를 거부하면 대중성은 보장 받기 힘들다. 또한 재미란 가장 중요한 코드도 놓치게 된다. 그런데 거부와 동시에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움켜 쥔 감독이 딱 한 명이 있다. 바로 홍상수다.

4일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신작 ‘자유의 언덕’은 그의 전작들에서도 이어지는 모호한 제목이 먼저 눈에 띈다. 아니 제목 자체에서 오는 느낌은 ‘자유’와 ‘언덕’의 조합이다. 가장 쉬운 단어 두 가지의 조합이 만들어 내는 중의적 혹은 함축적 단계의 전환이 홍상수 영화의 매력 중 하나다.

일단 그의 영화는 아주 쉽다. 일반 상업영화에선 느끼기 힘든 일상성과 즉흥성이 난무한다. 시놉시스 혹은 트리트먼트 수준의 종이 몇 장으로 촬영을 시작하고, 항상 그날그날 아침에 쪽 대본을 배우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홍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다. ‘자유의 언덕’ 역시 주인공 ‘모리’(카세 료)의 즉흥성에서 시작한다.

 ‘자유의 언덕’, 홍상수의 마법이 통하는 ‘공간의 발견’ 기사의 사진

첫 사랑 권(서영화)을 만나기 위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모리의 며칠간의 여정을 그린 영화는, 모리의 여정과 모리가 보낸 편지를 읽는 ‘권’의 공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권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온 모리는 그와의 추억이 얽힌 공간을 찾아다니며 그를 추억하고 기다리고를 반복한다. 그의 모습과 함께 권은 모리가 보낸 편지를 한 장씩 읽어가며 모리를 생각한다.

하지만 시골에서 요양을 하다 서울로 올라와 모리의 두툼한 편지를 읽던 권은 계단을 내려오던 중 현기증을 느껴 손에 들고 있던 편지를 놓친다. 날짜와 순서가 없는 편지는 뒤죽박죽이 되고 그때부터 관객들이 보는 모리의 공간은 시간의 순서가 뒤섞이게 된다.

 ‘자유의 언덕’, 홍상수의 마법이 통하는 ‘공간의 발견’ 기사의 사진

모리의 발걸음은 평범함의 일상이다. 홀로 북촌 거리를 거닐고, 권과의 대화 속에 등장한 경리단 길을 거니는 등 일상과 다를 바 없다. 그의 일상에서 등장하는 영선(문소리)과의 만남 그리고 사랑(?)은 뜬금없는 감정의 돌출처럼 보이지만, 편지가 뒤섞인 뒤 등장한 점을 고려하면 현실과 상상의 경계선에 놓인 어떤 ‘감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게 보인다. 모리가 권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모습은 흡사 상원(김의성)이 게스트하우스의 여자 손님(정은채)과의 말싸움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문제에 더 맞닿아 있는 게 옳다고 보여진다. 두 사람의 싸움을 두고 모리는 상원에게 “유부남과 저 여자가 분명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며 상대의 감정을 왜곡하는 장면은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권을 추억하는 자신의 방식을 대변하는 것처럼.

관객들은 ‘자유의 언덕’을 따라가다 보면 묘한 상상의 세계 속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모리의 왜곡된 시간 속 행보와 그의 행보를 조종하는 듯한 권의 모습은 한 편의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기묘한 순간의 연속을 전달해 준다.

 ‘자유의 언덕’, 홍상수의 마법이 통하는 ‘공간의 발견’ 기사의 사진

마지막 모리와 권의 만남이 이뤄지고 두 사람이 자유의 언덕 너머로 사라지면서 화면을 채우는 모리의 독백은 관객들에게 ‘홍상수 월드’의 한 자락이 그렇게 저녁노을 너머로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홍상수 월드’의 일상과 상상을 넘나드는 기상천외한 작법은 무너지게 된다. 모리와 상원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주인 구옥(윤여정)의 마지막 시퀀스가 ‘자유의 언덕’ 속 왜곡된 시간의 완성에 마침표를 찍으며 홍상수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일상으로의 초대’ 속 파티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리고 관객들은 68분의 기묘했던 ‘이상하고 흥미로운 홍상수 월드’의 여행 기차에서 발을 내려놓게 된다.

 ‘자유의 언덕’, 홍상수의 마법이 통하는 ‘공간의 발견’ 기사의 사진

‘자유의 언덕’이란 제목은 모리와 권이 만나는 어떤 지점의 은유적 표현일 수도 있고, 혹은 권을 만나기 위해 모리가 찾아온 한국의 북촌에 있는 영선의 카페일 수도 있다. 마지막 모리와 권이 저녁노을을 속으로 사라진 실제 언덕의 모습도 된다. 결국 ‘자유의 언덕’은 한국에서 지낸 며칠간의 시간 속에 모리가 경험한 여러 감정의 다발을 총칭하는 하나의 문장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 하다.

홍상수 영화가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비단 그가 해석하는 영화의 특수성만은 아닐 것이다. 가장 일상적인 영화 속의 시간 속에 숨쉬는 일상적이지 않은 배우들의 모습도 한 몫을 한다. 앞서 설명한 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관객들에겐 특수성으로 전달된다. 극중 상원과 게스트하우스 여자 손님의 말싸움 장면은 홍상수 영화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긴 느낌과 표현의 결정체다. 그 장면에서 두 배우가 주고받는 호흡의 간격은 일반적인 영화적 간극과는 완벽하게 틀어지는 장면이다.

 ‘자유의 언덕’, 홍상수의 마법이 통하는 ‘공간의 발견’ 기사의 사진

색다른 점은 일본의 연기파 배우 카세 료가 시종일관 영어로 대화를 하고 김의성 윤여정 문소리 역시 영어로 대화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홍상수의 힘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68분의 간결한 러닝타임도 매력적이다. 짧고 강렬하고 확실하며 웃기고 또 매력적이다. 공간을 이용하고 인물을 만들어 내는 홍상수의 마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제7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경쟁부문에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진출했다. 4일 개봉.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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