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화폐박물관이 학예사(큐레이터)를 채용한다. 2001년 독립적인 박물관 개관 이후 1명의 학예사를 채용했던 한은이 또 다른 인력을 채용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이번 채용인력은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전문보조원이다. 현재 화폐박물관의 인력 대비 업무가 많은데도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을 채용하는 것.
업계에선 한은의 화폐박물관이 젊은이들의 인력을 착취하는 ‘열정페이’의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은 화폐박물관, 경력인정대상기관 선정 기준 미달로 권고 조치
10일 한은 공고에 따르면 11일까지 화폐박물관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계약직 전문보조원을 뽑는다. 자격은 학예사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는 자로 경력을 우대한다.
화폐박물관은 한은 재단이 운영하는 사립 박물관으로 등록돼 있다. 이 박물관은 관장인 커뮤니케이션팀장과 반장, 학예사로 3명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인력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른 경력인정대상기관 선정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은 화폐박물관은 경력인정대상기관으로 등록돼 있다.
기준은 ▲학예사자격증 소지자 2명 이상(관장 포함) ▲3급 정학예사 1명당 실습 및 실무연수자 각 2명 ▲준 학예사 1명당 실습 및 실무연수 1명이다. 현재 화폐박물관에는 학예사 1명만이 있을 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총괄과 관계자도 “한은 화폐박물관에 선정 기준 미달로 권고 조치를 한 적이 있다”면서도 “기관 대 기관입장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즉, 한은은 지속적으로 경력대상선정기관 기준이 미달이었으나 지금에서야 인력 충원을 하는 셈이다.
한은 커뮤니케이션팀은 “권장 사항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최근 한은에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위에서 이제서야 정원을 내줘 전문보조원을 채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물관과 갤러리 동시에 관리···“업무 과도”
문제는 또 있다. 이번에 뽑는 전문보조원이 계약직이라는 점이다. 큐레이터가 조사연구와 소장품의 수집·보존·전시·교육 등의 박물관의 핵심 인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요성을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고에는 올해 12월까지로 계약기간이 명시됐다. 해당부서는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라 최대 2년 간 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2년 뒤 정규직 전환이 아닌 계약 만료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해석으로 보인다.
앞서 작년 대구미술관에서는 1년 9개월 간 비정규직 큐레이터 4명을 해고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일이 있다.
또 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업무가 과도하단 지적도 나온다. 이번에 채용되는 한은 화폐박물관의 전문보조원은 화폐박물관의 전시 화폐의 조사·연구를 맡는다. 명시된 내용은 ▲화폐의 수집, 정리, 보존, 관리, 전시 등에 관한 업무▲한국은행 소장 미술품 관리▲화폐박물관 및 한은갤러리 기획전시회 개최▲화폐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에 대한 안내▲화폐박물관 전시유물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박물관홈페이지 운영 등이다.
다수의 사설 큐레이터들은 “규정 근무시간 (월~금요일, 오전9시~오후5시) 내에 모두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라고 지적했다. 특히 화폐박물관과 한은갤러리의 기획전시회를 모두 관리해야한다는 점과 박물관 방문 관람객 안내는 무조건 주말 근무가 포함된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화폐박물관의 개장시간은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토·일요일이 모두 포함된다.
지금 근무중인 학예사 역시도 업무가 과해 퇴근시간을 지키는 적이 거의 없었다며 업무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예사는 “준국립의 성격을 띈 한은이 관리하는 박물관서부터 비정규직 큐레이터를 양산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도 “워낙 큐레이터 근무 여건이 열악해 이런 계약 조건에도 지원하는 이가 많은 게 씁쓸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손예술 기자 kunst@
뉴스웨이 손예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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