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은 겉살의 코미디와 속살의 아픔을 고루 간직한 전쟁의 이중성을 특유의 해학과 가벼운 터치 그리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결코 가볍게 소화시킬 수 없는 대사의 향연으로 그려냈다. 배경 자체가 한반도 최대의 비극이라 일컫는 한국전쟁이다. 이를 코미디의 겉살로 채울 수 있을까. 충무로 최고 시나리오 작가인 천성일의 감독 데뷔작에 대한 주목도는 우선 이 겉살의 매끄러움에서 시작된다.
불혹을 바라보는 남복(설경구)은 태어나는 아이의 이름도 짓지 못하고 징집 대상자로 선발돼 전쟁터로 끌려온다. 시간적 배경은 휴전 3일 전이다. 국군 수뇌부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비밀문서를 각 부대로 전달할 특공대를 조직한다. 남복이 속한 부대도 이들 중 하나다. 하지만 부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북한군의 습격을 받아 부대원이 몰살당하고 남복은 홀로 비밀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하지만 비밀문서가 총격전 속에서 사라졌다.
같은 시간 북한군 탱크부대 소속 소년병 영광(여진구)은 미군의 전투기 폭격에 부대원들을 모두 잃게 된다. 홀로 남은 영광은 “탱크를 사수하지 못하면 총살”이란 상관의 명령에 겁을 먹고 서투른 조종 실력으로 북으로 기수를 돌린다. 이 과정에서 남복이 잃어버린 비밀문서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남복과 영광은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두 사람은 비밀문서를 두고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한다. 그와 동시에 북한군의 공습과 국군의 추격이 이뤄진다.
‘서부전선’은 3일 뒤면 끝나는 전쟁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남북한 쫄병의 애기를 통해 전쟁이란 참상이 갖고 있는 겉살의 아이러니를 그린다. 남북한군 수뇌부는 전쟁의 마무리를 위해 난상토론을 진행한다. 누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문서 전쟁을 벌이는 상황 속에서 이를 모르는 전장의 병사들은 생과 사의 갈림길 속에서 싸움을 지속한다. 각각의 사연도 다양하다. 남한으로 돈을 벌기 위해 왔다가 전쟁이 터져 가지 못한 채 빨갱이 때려잡겠다고 군에 입대한 군인(이경영), 진급에만 목을 맨채 관료주의에 빠져있는 장군(김태훈), 중간자의 입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군인정신의 소유자로 비춰지는 군인(정성화) 등은 전쟁이란 괴물이 갖는 실체와 그 속성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단편 같은 인물들이다.
사실 ‘서부전선’의 실체는 이런 주변부의 인물들이 아닌 남복과 영광을 통해 보여 지는 작은 병사들의 진심이고, 외침이다. 남복은 “누가 해방시켜 달라고 했냐” “집에 가자”며 영광을 다독인다. 돌아가고 싶다. 두 사람은 가야 할 곳이 있고, 결국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가지 못한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는 비밀문서를 전달해야 한다는 명령과 탱크를 지켜야 한다는 말 한 마디에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코미디와도 같은 전쟁의 겉살을 그린다. 왜 서로를 죽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왜 서로를 겨눠야 하는지도 모른다. 왜 전쟁터로 끌려 나왔는지도 모른다. 그저 전쟁이란 괴물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작가 출신의 천성일 감독은 전쟁의 속성을 실체에 접근할수록 비극이지만 그 외피에 담고 있는 희극의 본질을 건드린다. “왜”라는 질문에 어느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속성이 결국 희극이자 비극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서부전선’은 그 점을 통해 희극과 비극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다. 웃음이 넘치면서도 눈물을 자극하는 두 얼굴이 ‘서부전선’에 담겨 있다.
그 아이러니함은 두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비는 이유를 담은 비밀문서에서 정점을 찍는다. 일종의 ‘맥커핀’이다. 영화가 끝을 맺은 뒤에도 그 비밀문서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천성일 감독은 이 맥커핀을 통해 ‘서부전선’이 갖고 있는 웃음과 눈물의 희비극을 말한다. 대체 무엇을 위해 달리고, 그것을 위해 웃는 사람은 누구이며 또 눈물 흘리는 사람은 누구인지.
‘서부전선’의 웃음과 눈물이 감정의 바닥을 긁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개봉은 오는 24일.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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