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측 의혹, 곳곳서 실제 사실과 정면 배치朴-李 독대, 삼성물산 합병 주주 의결 후 성사국민연금, 자본시장 혼란 막고자 합병 찬성‘韓 대표 펀드’, 美 자본 편 들어줄 이유 없어강제로 뺏긴 재단 출연금, 뇌물 판단은 무리부정적 경제 여파 감안하면 영장 기각 필수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2015년에 단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두 회사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의 도움을 얻는 조건으로 박 대통령을 통해 최순실 일가를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과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승마 선수 활동 지원 명목으로 최순실 소유 회사인 코레스포츠에 지원한 220억원,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 소유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원 등 총 430억여원의 돈을 대가성이 있는 뇌물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해 준 것이 대가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삼성의 행동을 뇌물공여 행위로 연결하기에는 몇 가지 논리적 허점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특검의 판단과 달리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만난 시점과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성사 시점이 다르다는 점이다.
특검은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자리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의결 관련 의견이 오갔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양사의 합병이 의결된 것은 2015년 7월 17일 주주총회였고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최초 독대는 의결 후 8일이 지난 7월 25일의 일이었다.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이전에 이미 합병은 의결됐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합병에 대한 우군 조성을 요청하기 위해 박 대통령 측에 뇌물을 전달했다는 특검 측 논리는 맞지 않는다.
특히 삼성 측에서도 최순실 소유의 독일 회사에 돈을 송금한 것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안과 무관하게 일어난 일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주도적 열쇠를 쥐고 있었던 국민연금공단이 줄곧 반대 의사를 보이다가 찬성 의견으로 돌아선 배경 역시 삼성의 청탁이나 뇌물 때문이 아니라 합병 이후의 시너지 효과와 국익을 감안한 선택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연금은 수천억원대의 손해가 예상됐던 상황에서도 당시 양사 합병비율인 1:0.35의 합병을 찬성했다. 이 배경으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합병 시너지 효과’를 국민연금 측이 기대했다는 분석이 있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삼성이라는 특정 기업의 사익을 우선하기보다 국가를 대표하는 공공기관으로서 국익을 위해 양사의 합병에 찬성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무산될 경우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주가 폭락이 우려됐고 이는 자본시장 전체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이를 막기 위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측이 합병 의결 직후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도 합병에 찬성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여기에도 논리적 비약이 있다.
국민연금 측에 배임죄를 물으려면 삼성물산 주가 하락을 국민연금이 알았다는 점이 전제돼야 하지만 여러 변수에 의해 움직이는 증시의 특성상 삼성물산 주가의 움직임을 예측하기는 상식적으로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합병 의결 이후 삼성물산 주가가 떨어진 것은 제일모직 때문에 야기된 것이 아니라 옛 삼성물산이 호주 광산개발 계획인 ‘로이힐 프로젝트’ 등 해외사업에서 발생한 3조원 가량의 손실과 연결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 손실은 합병 전에 발생한 것이다.
제일모직 주주들이 되레 손해를 봤다는 의견도 현실과 맞지 않다. 합병 이후 삼성물산이 대주주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되면서 바이오 사업의 장부상 가치도 올라갔다. 때문에 합병 이후 제일모직의 바이오 사업 평가가치는 합병 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는 것이 재계와 증권가 안팎의 설명이다.
아울러 삼성과 외국계 투기자본인 엘리엇 매니지먼트 사이의 갈등이 격화됐던 당시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대한민국의 대표 국부펀드로서 국익을 제고하기 위해 엘리엇의 편을 들어주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눈여겨 봐야 한다.
재단 출연금이 삼성의 자의에 의해 건네진 돈이 아니라 사실상 강제로 강탈된 돈이라는 점 역시 이 돈을 뇌물로 봐서는 안된다는 의견에 힘을 더하고 있다.
여기에는 과거 사례가 있다. 1980년대 5공 정권 당시 국내 다수의 대기업들은 정부의 강압에 못 이겨 일해재단에 운영 자금을 출연했다. 그러나 당시 논란이 됐던 기업인들 중에서 뇌물죄로 처벌을 받은 기업인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해재단 운영금 강제 모금 과정과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운영금 출연 과정은 배경이나 수단이 너무나 닮아 있다. 그럼에도 유독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출연금에 대해서만 뇌물죄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는 분석이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이 최순실 등 다른 혐의자들과 달리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기 때문에 법원이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촉망 받는 기업인 중 한 명인 이재용 부회장이 어설픈 논리에 입각해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된다면 이는 글로벌 경제 무대에 나서는 우리나라 기업들에게도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특검은 우리 경제에 미칠 여파 등을 감안해서라도 무리한 주장과 맞지 않는 근거를 앞세워 이 부회장 등 기업인들을 옭아매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꼬집었다.
뉴스웨이 이선율 기자
lsy0117@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