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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논리에 발목 잡힌 은산분리 완화, 은행권 혁신 막는다

[자본시장 액티브X를 없애자/은행①]정치 논리에 발목 잡힌 은산분리 완화, 은행권 혁신 막는다

등록 2018.03.05 17:56

수정 2018.05.17 12:23

정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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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IT 융합 기반 혁신 요구 빗발치지만정치권·당국, 구시대 프레임 갇힌 채 방관인터넷은행 1년 다 되도록 발전 답보상태 대승적 차원서 은산분리 제한적 완화해야

흔히들 금융 산업을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라 칭한다. 돈이 오가는 시장인 만큼 아무나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탓에 금융권 안팎에는 다양한 규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지나친 규제로 인해 금융권 전반의 성장이 저해된다는 지적은 몇 년째 끊이지 않아왔다.

특히 은행권 안팎에서는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해묵은 시각 프레임에 갇혀 구시대적 정책 행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생각의 문을 닫고만 있다 보니 금융 산업 발전이 저해된다는 것이 은행권의 불만이다.

정치 논리에 발목 잡힌 은산분리 완화, 은행권 혁신 막는다 기사의 사진

은행권이 호소하는 가장 큰 구시대적 규제는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을 엄격히 분리하고 있는 이른바 ‘은산분리 원칙’ 고수다.

은행권은 인터넷전문은행 등 신기술과 접목한 혁신적 금융 서비스의 출현을 위해 은산분리 원칙이 완화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과 금융당국에서는 은산분리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 또는 보수적인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현행 은행법 아래에서 비금융자본(산업자본)이 소유할 수 있는 은행 내 지분은 10%로 한정돼 있다. 이마저도 의결권 유효 지분으로 폭을 줄일 경우 비금융자본의 실질적 은행 지분 보유 한도는 고작 4%에 불과하다.

4%로 한정된 비금융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넓히려면 현행 은행법을 고쳐야 한다. 그러나 여당을 중심으로 다수의 국회의원들은 은행법 개정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금융회사 지분을 비금융자본에 개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우려 때문이다.

은행권에서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인터넷전문은행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한정적인 은산분리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출범한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등 두 곳의 인터넷은행은 기존 은행권의 보수적 영업 환경을 깨고 혁신적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메기’ 역할로 주목을 받았다. 인터넷은행의 흥행 성공은 침체된 금융 산업에 새로운 혁신의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자본금이 빠르게 소진되는 가운데서도 법의 테두리에 막혀 자본금을 마음대로 늘리지 못하다 보니 운영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거액의 자본금을 출연할 수 있는 KT와 카카오 등 핵심 비금융자본의 투자 채널이 막힌 것이 어려움의 배경이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인터넷은행에 한해서만 비금융자본의 은행 보유 지분 한도를 34~50%까지 올리고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도 제한적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특례법 발의가 있었지만 소모적인 논쟁만 오가는데 그쳤고 결국 몇 개월째 국회에서 잠자는 법안이 되고 말았다.

정치권이 은산분리 완화를 주저하는 배경으로는 은산분리 원칙 완화 후 대기업이 은행을 사금고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가장 먼저 꼽힌다.

실제로 2013년 동양 사태 등 일부 저축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기관이 대기업의 사금고처럼 악용된 경우가 있었는데 은산분리 원칙이 무너지면 이런 일이 또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은행권과 학계 일각에서는 인터넷은행에 대한 감독당국의 확실한 가이드라인과 제재 원칙만 있다면 비금융자본이 금융회사를 자금 융통의 채널로 악용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은산분리 원칙 완화 이후 일어날 효과 예측도 정치권과 은행권의 의견이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

은행권은 선도적 기술을 갖춘 IT 기업이 금융 시장에 접근해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치권은 기존 은행이 진행하고 있는 모바일 뱅킹 혁신만으로도 핀테크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당국의 모호한 정책 행보다. 금융당국은 제3의 인터넷은행 인가 가능성을 연이어 언급하며 인터넷은행에 대한 대중화에 대해 찬성 의견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행 대중화의 뼈대가 돼야 할 은산분리 완화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보수적인 상황이다.

특히 금융권 전반의 혁신 밑그림을 그렸던 금융행정혁신위원회마저도 은산분리 완화 문제에 대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장 안팎에서는 금융당국이 변화하고 있는 시장의 현실과 괴리된 판단을 하고 있다며 당국을 비판하고 있다.

한 은행의 관계자는 “금융 산업 자체의 리스크를 산업자본 쪽에서도 잘 알고 있기에 은산분리 원칙 완화 이후에도 산업자본이 무분별하게 금융자본에 침투할 우려는 적다”며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한 해외 사례도 많은데 정작 우리나라만 원론적 논쟁만 되풀이하다 보니 미래 금융시장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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