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장인의 좌익 활동이 거론되자 "그러면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일갈했다. 결국 이 한마디는 일거에 논란을 반전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을 한방에 국민 남편, 의리 남으로 부각시켰다. 반면에 청문회에 등장하는 많은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부인 핑계를 대며 “나는 몰랐다. 부인 혼자 저지른 일”이라고 말할 때마다 찌질함의 극치를 보였다. 치부와 자녀교육, 공(功)은 함께 나누고자 하면서, 과(過)는 부인에게 떠넘기려는 이중 행태를 보여서다.
위기의 순간, 부부의 인연은 약한 고리이기도, 강한 고리이기도 했다. 아니 위기보다 더 힘든 것은 권력, 성공에의 유혹이었다. 그 앞에서 부부는 때론 천륜보다 강하기도 했지만 때론 부질없이 약하기도 했다. 때론 연합전선을 형성하기도 했다. 부부란 인륜이 반드시 동고동락의 운명공동체로 작용한 것만은 아니었다. 비정하거나, 매정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순애보적 사랑도 없지 않았다. 또 어떤 경우는 목표를 위해 전략적 제휴로 연합작전을 벌이는 동지인 경우도 있었다.
먼저 순정파의 애처가형부터 살펴보자. 성공했다고, 성공하기 위해서 평생 살아온 부인을 버리란 말이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전버전, 어쩌면 노대통령은 이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지 않았을까 추측도 해본다. 우리가 흔히 쓰는 ‘조강지처(糟糠之妻)’의 어원과 관련돼있다.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 성공했다고 해서(성공을 위해) 조강지처와 헤어지지 않는다란 뜻이다. 쌀겨와 술지게미를 먹으며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한 본부인은 집밖으로 내쫓지 않는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후한 광무제(光武帝)의 누이인 호양공주가 일찍이 과부가 돼 쓸쓸이 지냈다. 광무제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재혼을 시킬 생각으로 마음에 드는 이가 있나 그녀의 의향을 슬쩍 떠보았다. 그녀는 유부남인 송홍을 슬쩍 지목하였다. 그는 요즘말로 당대의 훈남이었던 듯하다. 실력이나 인물이나 모두 출중하였다. 마침 송홍이 공무로 편전에 들어오자 광무제는 누님을 병풍 뒤에 숨기고 그의 뜻을 넌지시 물었다. 송홍은 이때 단호히 거절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신은 가난할 때 친하였던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내보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臣聞 貧賤之交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광무제는 누이의 재혼 추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반대로 성공을 위해 인륜은 눈도 깜짝 하지 않고 포기한 비정형 남편의 배처가(背妻)도 있었다. 살처구장(殺妻求將), 장군이 되기 위해 아내를 죽인다는 뜻이다. <사기열전>의 <손자오기열전> <열국지>에 등장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위나라 장군 오기다. 오기는 전쟁터 병사의 다리에 난 고름을 빨아줄 정도로 인자한 장군으로 유명하다. 반면에 개인적으로는 장군의 자리를 얻기 위해 자신의 부인을 직접 목 베어 죽이는 이중적 면모를 보였다.
더구나 장인은 어려운 처지에 처한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보살펴준 은인이었다. 오기가 노나라에서 장교로 일하고 있을 때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했다.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장군으로 기용하려 했다. 하지만 오기가 적대국가인 제나라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므로 의심을 품고 망설였다.
오기는 자신의 아내를 직접 목 베 그 수급을 조정에 바친다. 그것으로 자기와 제(齊)나라는 조금도 관련이 없음을 증명했다. 그의 소망대로 사령관에 임명됐고 제나라와 싸워 큰 승리를 거뒀다. 전쟁이 끝나자, 조정 대신들은 ‘자리욕심을 위해선 부인마저 죽일 정도로 인륜을 무시하는 위험한 인물’이란 이유로 문제시했다. 오기의 정치적 위상이 급부상한 것에 대한 견제심리도 작용했다. 결국 그는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 초나라를 옮겨 다녀야 했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인륜을 해치면서까지 내세우는 공명심이 결국 본인을 해친 셈이다.
성공을 위해 인륜을 지킬 것인가, 버릴 것인가. 순정파, 비정파가 있었는가하면 목표를 위한 동지형, 즉 애정전선을 넘어 목표를 위한 전략적 제휴형도 있었다. 이들의 부인은 지모를 넘어 독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여장부였다는 게 공통점. 그 당시 남자위주 사회에서도 남편이 공처가란 말을 들을 정도로 막후권력을 행사했다는 것도 이채롭다. 이들은 남편이 성공이란 야망을 위해 세를 불리고 강화하는데 결정적 힘을 보탰다. 동지로서 함께 내달렸다.
한고조 유방과 그의 부인 여희, 삼국시대 위나라의 정치가이자 전략가인 사마의와 부인 장정화 부부가 그 경우다. 여희는 배우자를 넘어 파트너, 스폰서였다. 동네 건달에 불과했던 유방이 세를 불리고 힘을 강하게 하는데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유방이 죽자, 남편인 유씨 가문을 몰아내고 여씨천하를 만들 정도로 강한 권력욕을 보였다. 사마의의 부인 장정화는 남편이 못마땅하면 귀를 붙잡고 뒤흔들며 바가지를 긁을 정도로 드센 여자였다.
사마의는 젊은 시절, 조조의 벼슬명령을 거절하면서 중풍이 있다고 핑계를 댔다. 집에서 자리보전하고 누워있을 때의 일이다.. 햇빛이 나 책을 말리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당시엔 서고에 보관해둔 책이 눅눅해지지 않기 위해 햇빛이 나면 책을 말리는 풍속이 있었다.
책을 아끼는 사마의는 자신이 중풍이란 핑계를 댄 것을 깜박 잊은 채 자신도 모르게 밖으로 뛰쳐나가 책을 직접 거둬 들였다. 몸성한 사람으로 책을 수습하는 장면을 집안의 여종이 목격했다. 그것을 안 사마의 부인 장정화는 이 일이 누설돼 화를 불러들일까봐 쥐도 새도 모르게 그 여종을 죽였다.
그렇게 입을 막은 다음 친히 집안일을 틀어쥐고 운영했다. 이 일을 계기로 사마의는 그녀가 보통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앞에서 꼼짝 못하고 부인 말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 동지형 부부는 전략적 제휴로 머리를 맞대고 목표를 성취해나간다. 단 옛 문헌에 의하면 목표까지 뜻을 같이 하지만 목표달성후 부부의 전선에 균열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한고조와 여후, 사마의와 부인 장춘화 모두 말년 금슬은 좋지 못했다.
권력 유혹 앞에서 꿋꿋하게 배우자를 지킨 사람도, 피도 눈물도 없이 버린 사람도, 때론 배우자 연합전선으로 위기를 헤쳐나가 목표를 이뤄나간 유형 등 옛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돌아보며 요즘 세태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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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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