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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정체된 기업은행···윤종원 행장에겐 ‘혁신’ 기회

10년간 정체된 기업은행···윤종원 행장에겐 ‘혁신’ 기회

등록 2020.01.10 14:56

한재희

,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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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후 중기대출 등 성과 정체시중은행과의 경쟁서 입지 좁아져‘혁신 금융’도 비슷한 수준에 그쳐국책은행 역할 다른 은행에 내주기도외부 출신 행장의 ‘충격 요법’ 필요실적‧혁신 ‘퀀텀 점프’ 과제로 남아

3일 첫 출근길에 노조의 저지로 발길을 돌린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이 2020년 범금융권 신년인사회에 참석, 첫 공식일정을 소화했다. 사진=이수길 기자3일 첫 출근길에 노조의 저지로 발길을 돌린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이 2020년 범금융권 신년인사회에 참석, 첫 공식일정을 소화했다. 사진=이수길 기자

노조의 출근 저지로 취임 후 일주일째 본사에 발을 들이지 못한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지만 그를 향한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내부 출신 행장이 은행을 이끌며 중기지원과 실적 성장을 이뤄냈으나 혁신적인 측면에선 부족했다는 평가에서다.

게다가 최근엔 모든 은행이 중기지원을 늘리면서 스타트업 등 혁신 성장 생태계 마련에 적극 나서는 추세라 지금에 안주한다면 기업은행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윤 행장은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임명한 이후 이날까지 일주일 넘게 정상 근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출근 첫 날이었던 3일과 7일에는 본사를 찾았다가 노조의 반대에 발길을 돌렸다.

기업은행 본점 출근이 막힌 윤 행장은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마련한 임시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하지만 처리할 수 있는 업무는 제한적이다. 당장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른 내부 임원 인사와 자회사 CEO 인사 등도 외부에서 처리하기 부담스럽다. 노조와의 갈등이 진행되는 가운데 인사가 불씨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기업은행 안팎에선 노조가 윤 행장과 대화를 통해 출근 저지를 풀고 시급한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투쟁이 장기화 될수록 피해는 고스란히 은행에 돌아가게 된다.

이미 기업은행은 주 역할인 중기지원에서부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간 기업은행은 중기대출 분야에서 1위를 지켜왔다. 하지만 시중은행이 중기지원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점유율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작년 6월 말 기업은행 중기대출 점유율은 22.75%였는데 연말엔 22.59%를 기록해 0.16%포인트 떨어졌다. 지난 2010년 처음으로 점유율 20%를 돌파한 이후 10년째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최근 중기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 시중은행과의 격차를 벌리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기 대출 시장이 파이(π)가 한정된 ‘제로섬 게임’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고객 유치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시중 은행들의 비중이 커지는 만큼 기업은행의 입지는 좁아지게 된다.

양적으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대내외 경제 불안요인이 가중되면서 수익성 지표가 흔들린다는 점도 부담이다. 지난해 3분기 자기자본순이익률(ROE)은 8.39%로 2017년 이후 가장 낮았다. 업종별 연체율이 급격하게 상승해 고정이하여신(NPL)이 늘었고 여기에 더해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보수적으로 재산정하면서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쌓은 영향을 받았다.

혁신 금융에서도 이렇다할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혁신 금융 성과를 봤을 때 시중은행과 차별점이 없다는 얘기다.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등은 별도의 혁신 성장 플랫폼을 운영하며 혁신 기업을 직접 육성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업은행 역시 ‘IBK 창공’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시중 은행과 대동소이하다. 국책은행으로서 정부의 기조에 적극적으로 발맞춰야 하지만 그 역할이 희미해진 셈이다.

지난해 12월 LG화학과 금융권의 투자 지원 협약 체결 과정에서도 이러한 부분이 여실히 드러난다. 5년간 LG화학의 2차전지 투자를 위해 총 50억달러(약 5조8155억원)를 지원한다는 협약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그리고 NH농협은행이 참여한 반면 기업은행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정부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려는 소재·부품·장비 분야이고 협력업체 지원 계획까지 포함한 협약이었음에도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동참하지 않은 데 부정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협의체엔 포함됐지만 농협은행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평가는 뻐아프다.

‘필승코리아펀드’도 마찬가지다. 이 상품은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우수한 국내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로 문재인 대통령과 관료, 지방자치단체장의 가입에 유명세를 탔는데 그 또한 농협금융의 작품이었다. 물론 기업은행도 펀드 판매로 힘을 보태기는 했다. 다만 ‘국내산업 육성’과 ‘기초과학 발전 지원’이라는 상품의 취지를 고려했을 때 기업은행이 설계했다면 어땠겠냐는 아쉬움은 남는다.

관료 출신 행장이라고 해서 ‘낙하산 인사’라고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는 이유다. 힘 있는 외부 출신 행장이 혁신과 성장을 동시에 이끈 사례도 이미 있다. 제20대 고(故) 강권석 행장은 관료 출신의 행장이면서 기업은행의 퀀텀점프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 행장 취임 후 기업은행은 총자산 100조원을 돌파했고 순이익 1조원 시대를 열었다. 국책은행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면서 정부와의 소통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며 지금까지도 존경 받는 은행장으로 꼽힌다.

신임 기업은행장이 취임하면 강 행장의 묘소를 찾아 기리는 것이 관례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윤 행장 역시 지난 6일 강 행장의 묘소를 찾아 “고인의 유지를 이어받아 혁신금융을 통해 국가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의 발전을 지원하고, 나아가 기업은행이 초일류 은행으로 발돋움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윤 행장은 스스로 “함량미달 낙하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경영 성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가 담긴 말로 풀이된다. 외부 출신 행장으로서 10년째 내부 출신 행장이 이어지며 생겨난 파벌과 관행 등을 새롭게 정비하기 위한 기회로 삼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내부 출신과 외부 출신을 따지기 전에 기업은행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면서 “출근투쟁을 장기화로 경영 전반에 차질을 빚게 되면 은행과 직원 모두에게 피해가 가는 만큼 앞으로 윤 행장이 보여줄 성과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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