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 손해에도 시장점유율 확보 전략암울한 반도체 시황···내년까지 '먹구름'반도체업계 줄줄이 투자 축소 계획 내놔
반도체 산업은 경기 불황과 물가상승에 따른 세트(완제품) 수요 위축으로 판매량과 가격이 모두 하락했다. 이중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이 주력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는 경기 민감도가 높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의 성장세로 인한 기저효과가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수요 감소 현상을 더 크게 체감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반도체 기업들은 줄줄이 투자 축소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시황 불안정에 '검토' 수준이던 투자 축소를 단행키로 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6일 3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내년 투자 규모를 올해 투자액(10조원 후반대 예상)보다 약 50% 줄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제품 중심으로 생산량을 줄여 나가기로 했다.
마이크론과 키옥시아 등 해외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마이크론은 하반기 공장 생산량 축소와 내년 설비투자 30% 감축을 발표했다. 일본 키옥시아도 이달부터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웨이퍼(실리콘 원판) 투입량을 30% 줄이기로 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지난 14일 올해 설비투자를 계획(400억달러 예상)보다 10% 줄이겠다고 밝혔다.
단, 국내외 반도체 업계들의 예외 없는 투자축소, 생산량 감소 발표에도 삼성전자는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계획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설비투자와 관련해서도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해 적정 수준으로 인풋(input) 투자를 지속, 업황과 연계해 설비투자를 유연하게 운영하겠다는 투자 기조도 동일하다고 밝혔다. 이는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제품 공급을 줄이지 않음으로써 시장점유율을 늘리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삼성의 공격적인 행보를 '반도체 치킨게임(상대가 무너질 때까지 출혈 경쟁을 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앞서 '반도체 암흑기' 시절이던 지난 2007년 4분기 반도체 분야에서 나란히 1, 2위를 달리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 가격이 떨어지면 대만 등 후발업체들이 투자 및 생산량을 줄이게 될 것'이라는 논리를 앞세웠다.
삼성전자는 당시 영업이익 4300억원 실적을 기록했고, 하이닉스는 17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끝내고 3180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가격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D램 생산을 늘리는 치킨게임을 주도했지만 결국 삼성전자만이 살아남은 셈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지금은 서로 피해를 덜 보기 위해 몸을 사리고 있고, D램의 경우 삼성과 하이닉스, 마이크론이 독과점하고 있기 때문에 충돌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서로 조절을 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얘기가 나온 건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한 낸드 플래시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암울한 반도체 시황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해지면서 시장 전망엔 '먹구름'이 가득하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내년 반도체 시장 성장률을 4.6%로, 시장 규모는 6620억달러(943조190억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반도체 시장이 역성장했던 2019년 이후 최저치다. 내년 메모리반도체 성장률 전망치는 0.6%로, 0%대 성장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지난해 메모리반도체 성장률은 30.9%를 기록했다.
김 연구원은 "업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반도체 업계들은 투자 확대를 지연할 것"이라며 "메모리 반도체는 라인 가동을 멈춘 후 재가동을 통해 제품 양산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단가가 떨어지고 수익성이 낮아져도 메모리는 생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메모리 반도체 감산은 위험한 결정"이라며 "하이닉스도 메모리 반도체 감산이 아닌 내년 투자를 조정하는 것이 그 이유"라고 덧붙였다.
그는 "삼성이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한 이유는 지금까지의 전략이 계속 그래왔기 때문"이라며 "업황이 안 좋아도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시장이 회복되면 손실된 부분을 빠르게 복구하겠다는 전략"이라고 제언했다.
뉴스웨이 윤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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