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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규제' 보다 '내실'···전기차 보급 속도 조절해야

오피니언 기자수첩

'규제' 보다 '내실'···전기차 보급 속도 조절해야

등록 2023.02.0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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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er
최근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낙인 찍힌 디젤차들이 자취를 감추는 사이 전기차의 점유율은 가파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현대차와 기아를 비롯해 주요 수입차업체들도 전기차 라인업 늘리기에 한창입니다.

자동차회사들이 전기차 판매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글로벌 환경규제 때문입니다. 국가별로 규제 수준에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선진국들은 유럽의 유로6 기준에 맞춘 강력한 배출가스 규제를 적용하고 있죠. 특히 수년 뒤 유로7 규제가 시행되면 유럽에선 기존 내연기관차, 특히 디젤차의 판매가 쉽지 않아질 겁니다.

우리나라도 유럽 선진국들처럼 내연기관차에 대한 규제를 크게 강화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2025년부터 사대문 안 운행제한 디젤차를 현행 5등급에서 4등급으로 확대하기로 했는데요. 2030년부터는 서울 전역에서 4등급 디젤차의 운행이 제한됩니다.

특히 환경부는 올해부터 무공해차(전기차·수소전기차) 보급 목표를 채우지 못한 자동차업체에 벌금을 매기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차·기아는 12%, 쌍용차·한국GM·르노코리아·메르세데스-벤츠·BMW·토요타 등은 8% 이상을 무공해차로 채워야 합니다.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전체 매출액의 최대 1%를 벌금 성격의 기여금으로 내야 합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무공해차 누적 보급대수는 지난해 40만2000대에서 올해 67만대까지 증가하게 됩니다. 문제는 현대차와 기아를 제외하면 국내 완성차업계의 전기차 라인업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르노코리아의 전기차 모델은 사실상 없고, 쌍용차가 새로 선보일 토레스 전기차(U100)도 얼마나 팔릴지 아직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 정부들은 너무 무리하게 전동화 전환을 서두르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무작정 내연기관차의 퇴출과 전기차 보급을 밀어붙이는 분위기입니다.

성공적인 전동화 전환을 위해선 일단 일자리 감소 문제의 해결방안부터 제시돼야 합니다. 내연기관차의 부품은 약 3만여개에 달하지만, 전기차의 부품은 2만개도 되지 않습니다. 전기차의 점유율이 늘어날수록 기존 완성차 공장의 노동자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완성차 부품산업도 절벽 끝에 내몰린 상황입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이 100% 전동화로 전환할 경우 전체 자동차 부품업체의 32.3%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엇보다 부품업체 가운데 전기차 부품을 당장 만들 수 있는 업체는 전체의 2.3%에 불과합니다. 현대모비스 등 대기업과 일부 중견기업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투자 여력이 없는 상황이니까요.

소비자 입장에서도 전기차는 아직까지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1회 충전 시 최대주행거리는 통상 400km 안팎이고, 80% 이상 충전하려면 30분 이상 소요됩니다. 충전 인프라 역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 집과 직장은 물론이고 고속도로 휴게소와 대형마트 등에서도 연일 충전전쟁이 벌어지고 있죠. 무엇보다 동급의 내연기관차 대비 가격이 매우 높은 편이라 저렴한 유지비를 감안하더라도 가성비가 떨어집니다.

전기차가 궁극적인 친환경차가 맞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전기차의 폐배터리 처리 문제가 대표적인데요. 2030년이 되면 국내에서만 연간 10만개 이상의 폐배터리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앞서 언급한 문제들은 분명 언젠간 해결될 겁니다. 점차 저렴해질 전기차는 최대주행거리도 더 늘어나고 충전시간도 빨라지고 충전 인프라도 훨씬 많아지겠죠. 부품업계도 전기차를 중심으로 새 판을 짜게 될 겁니다. 폐배터리 재활용 문제도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뛰어들고 있는 만큼 조만간 해법이 나올 듯합니다.

문제는 전동화 시대로 가는 '속도'입니다. 아무리 비싸고 근사한 음식이라고 해도 빨리 먹으면 체하기 마련입니다. 아이오닉5, EV6 등 국산 전기차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산업 전체로 보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규제를 쏟아내기에 앞서 전기차 관련 산업 전반에 대한 내실 있는 지원과 투자가 절실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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