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만난 전 국토부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그가 국토부 퇴임 이후 관련 유관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혹여 나타날수 있는 건설사 연쇄 부도 등 건설업계에 대한 걱정에 더 무게를 싣는 발언으로 들렸다.
실제 미분양 주택 증가 문제가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지난달말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한 달 새 10.6% 가량 늘어난 7만5000가구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2년 11월(7만6319가구) 이후 10년 2개월 만에 최대치다.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도 7546가구나 된다. 전월보다 0.4%(28가구) 증가한 수치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증가 속도다. 지난해 11월부터 한 달에 1만 가구씩 쌓이고 있다. 2021년의 1만7700가구와 비교하면 1년 새 6만 가구가 늘었다. 한 해에 5~6만 가구 이상 늘어난 것은 2008년의 5만3345가구 이후 14년 만이다.
지방 미분양 걱정을 많이 하지만, 수도권도 만만치 않다. 미분양 주택 증가속도가 지방에 비해 최근 가팔라지고 있어서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반년 동안 수도권 미분양 주택 증가율이 지방 증가율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월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5359가구로 지난해 8월 3만2722가구 대비 130%(4만2637가구) 늘었는데 수도권에선 이 기간 5012가구에서 1만2257가구로 늘어 145%(7245가구) 증가했다. 지방은 2만7710가구에서 6만3102가구로 128%(3만5392가구) 증가해 수도권과 전국 평균보다 낮은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미분양 적체 문제가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리스크로 번지고 있다는 의미.
일각에서는 미분양 주택이 상반기 10만을 넘어 연내 12만 가구를 돌파할 것이란 관측 나온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초기분양률이 현재와 같이 58.7%로 낮게 유지되면, 연내 미분양 주택이 12만 가구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정부 자세는 느긋하다. 부동산 정책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미분양 물량 급증에도 "개입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뜻을 아직 고수 중이다. 오히려 최근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직접나서 건설사들을 압박했다. 원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토부 출입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건설업계의 지원대책 요구는) 반시장적이고, 반양심적인 얘기다. 분양가를 낮춰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정책 당국이 고민할 수 있지만 지금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며 정부 지원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마디로 미분양주택 해소를 위해 건설사들이 분양가를 먼저 인하하라는 의미다. 부동산 정책을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미분양을 대하는 자신감은 일면 믿음직해보이기도 한다. 정치색을 배제하고, 시장 관점에서 지지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도적적 해이 이야기도 있다. 현재 시점에서 국민 혈세로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것은 건설사들만 배를 불리는 꼴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시장 호황기에 건설사들이 수요 예측 없이 아파트를 무리하게 지었던 만큼 건설사가 자체적으로 분양가를 낮춰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 리스크 관리를 위해선 '초동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전체 미분양이 쌓이는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가파르다. 그 결과, 중견사들의 사업지가 집중되어 있는 지방 주택시장이 무너진다면 그때는 이미 늦는다고 봐야한다. 중소건설사 연쇄 부도 등 업계 약한고리가 끊기면 그 파장이 금융권은 물론 한국경제에도 퍼지는 등 직격탄이 될 수도 있다.
더욱이 올해는 국내외적 거시 경제 변수들도 너무 많다. 경제 리스크가 많다보니 그만큼 부동산PF(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부실화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원 장관이 자신감을 보이고, 여러 안전판이 있다고 하더라도 쌓여만 가는 주택 미분양 물량 앞엔 장사 없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뉴스웨이 김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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