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특화 전문은행' 갑작스런 폐업에 정부 '챌린저 뱅크' 도입 계획 도마 위 "2011년 저축은행 사태 교훈 삼아야"
13일 금융권과 워싱턴포스트·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에 폐쇄 조처를 내린 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예금 지급 업무를 맡도록 했다. 이어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차원에서 소비자가 실리콘밸리은행에 맡긴 돈을 전액 보증하겠다고 발표했다.
미 정부의 신속한 대응은 실리콘밸리은행 폐쇄 이틀 만에 다른 은행으로 그 여파가 번지면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SVB는 실리콘밸리 내 벤처기업과 그 임직원이 맡긴 예금을 기반으로 혁신기업에 자금을 공급(대출 등)하는 미국 내 자산 규모 16위 은행이다. 에어비앤비와 우버, 트위터 등 굴지의 기업도 초기엔 이 은행으로부터 지원 받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통상 SVB는 벤처캐피탈(VC), 사모펀드(PE)와 연계해 이들이 1차적으로 투자한 기업에 자금을 공급했고, 대출액 4~5% 정도를 보통주 또는 우선주 워런트로 받는 식의 영업을 이어왔다. 우량 VC·PE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은 기업이라면 성장성이 어느 정도 검증됐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전략이다. 이를 통해 매년 두 자릿수의 양호한 수익성을 유지했다.
그런 SVB가 돌연 파산한 것은 고금리 충격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가 소비자의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로 이어진 탓이다. 코로나19 대확산 중 풀린 유동성이 기술기업에 몰리면서 SVB의 총예금이 급증(2021년 86% 증가)한 가운데, 미 연준이 물가 상승을 잡으려 기준금리를 크게 올리자 자금난에 빠진 기업이 잇따라 예금을 빼내면서다.
SVB는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고자 보유 자산을 매각하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늘어난 예금을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에 투자했는데 금리 인상과 맞물려 채권 가격이 곤두박질친 영향이다. 결국 미 금융당국은 은행의 폐쇄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챌린저 뱅크 도입 계획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대형 은행도 문을 닫은 마당에 우리나라의 소규모 특화 전문은행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 정책 목표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의구심에서다.
현재 금융당국은 경쟁 촉진을 명분 삼아 은행 업무범위를 세분화한 특화은행과 챌린저뱅크 등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소상공인·중소기업 전문은행과 중·저신용자 전문은행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처럼 전문성을 내세운 은행은 좀처럼 시장에 안착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비스로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라이선스 취득과 인프라 구축 등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야 해서다. 사업이 특정 영여에 국한됐으니 수익성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에 집중하는 특화 전문은행은 경기 불황 시 부실화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가 챌린저 뱅크 도입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소규모 전문은행에 대거 인가를 내줬다가 문제가 생기면 금융업권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업계는 한 차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부산저축은행 등 16개 상호저축은행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은 2021년의 저축은행 부실사태를 통해서다. 당시 이들 저축은행은 부동산 등 리스크가 큰 사업에 제대로 된 심사 없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형태로 대출을 내줬다가 부실을 초래했고 금융업에 대한 사회적 불신도 키웠다.
이에 예금보험공사는 특별계정을 통해 서둘러 27조2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회수에 주력해왔으나, 10여년이 지난 현재 그 중 13조5528억원(2022년 3월 기준)을 돌려받는 데 그쳤다. 계정 종료를 불과 3년(2026년) 앞두고 있어 기한 내 이 금액을 모두 거둬들일지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특별계정엔 부보금융회사(예금보험공사에 보험료를 납부하는 금융사)의 보험료 중 일부가 포함된다. 즉, 모든 금융회사가 저축은행 부실사태에 대한 책임을 공동으로 짊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챌린저 뱅크의 경우 기본적으로 늘 자본 확충 이슈를 떠안고 있는 데다 사업모델도 제각각이라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면서 "금리 인상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고 벤처투자가 위축된 요즘 시기에 은행을 늘렸다간 저축은행 파산사태를 되풀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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