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 "과거를 정확히 알고 미래 준비"'과감한 결단' 미래 모빌리티와 맞닿은 '포니'기아, 브랜드 정체성·헤리티지 강화는 숙제
현대차는 지난달 18일 이탈리아에서 '현대 리유니온' 행사를 열고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날 정의선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은 포니 쿠페 개발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되짚어 보고 과거로부터 이어진 혁신을 앞으로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현대차는 이와 비슷한 행사를 최근 국내에서도 열었다. 현대차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포니를 비롯해 현대차의 헤리티지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포니의 시간' 전시를 진행 중이다. 포니의 개발부터 판매 과정, 시대상 등을 총망라한 특별 전시전이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7일 열린 포니의 시간 오프닝 행사에서 "과거 포니 시절부터 많은 분이 노력해주신 덕분에 오늘날이 있는 것"이라며 "우리가 과거를 정확하게 알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이 같은 행사를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1975년 첫 출시된 포니는 현대차그룹의 '근본'으로 여겨지는 상징적인 모델이다. 당시 국내 자동차산업은 걸음마 수준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동차업체들은 선진업체의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국내 기계공업의 발전을 위해 100% 국산화된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故 정주영 선대 회장의 의지 덕분에 포니가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의 뿌리는 정주영 선대 회장이 1946년 설립한 '현대자동차공업사'이며, 공식적인 현대차의 역사는 미국 포드와 기술제휴를 맺은 1967년부터다. 현대차는 1968년 울산에 조립공장을 짓고 영국포드의 코티나 2세대 모델을 들여와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완성차 제조업체로 본격 성장하기 시작한다.
포드와의 합작사 설립계획이 백지화된 후 탄생한 포니는 현대차와 국내 자동차산업에 의미가 깊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독자 모델 개발이라는 과감한 결단이 없었다면 글로벌 완성차업계 3위라는 현재의 성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란 평가다.
현대차가 설립될 당시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6만대 남짓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포니의 개발과 생산과정에서 반대와 우려가 매우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가 2500만대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동차가 기계산업의 주인공이 될 것이란 정주영 선대 회장의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현대차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회장은 과거의 포니와 미래 모빌리티가 맞닿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독자 개발한 포니처럼 로보틱스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선제적인 투자와 과감한 도전정신을 통해 이끌어가겠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202년 10월 정 회장의 취임 이후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투자를 적극 확대하고 있다. 2020년 미국의 자율주행 관련업체 앱티브와 각각 20억달러씩 출자해 '모셔널'을 설립했고, 이듬해엔 미국 내 UAM 독립법인의 이름을 '슈퍼널'로 확정짓고 UAM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 같은 해 6월에는 미국의 로봇전문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자율주행차와 물류, UAM 등 다양한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구상을 통합하고 확장하겠다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다.
특히 현대차는 신차 디자인에 과거 모델을 오마주하며 '헤리티지'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21년 출시된 아이오닉5는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로, 포니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개발됐다. 아이오닉5에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시작을 알렸던 포니처럼 새로운 전기차 시대를 선도해 나간다는 의미가 담겼다.
국내 베스트셀링카인 그랜저에도 지난 1986년 첫 출시된 1세대 모델의 디자인이 곳곳에 녹아들었다. 이른바 '각그랜저'로 불리는 1세대 그랜저는 수입차 시장이 발달하지 않았던 1980~ 90년대 당시 부의 상징이었던 프리미엄 고급세단이다.
요즘은 흔한 풀오토 에어컨, 1열 풀플랫 시트, 4륜 디스크브레이크 등의 사양은 1세대 그랜저가 시초다.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외관과 첨단사양으로 중무장한 1세대 그랜저는 당시 경쟁모델이었던 대우(현 한국GM) 로얄살롱 슈퍼‧임페리얼 등을 밀어내고 국산 고급차 시장을 점령했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7세대 그랜저는 1세대 모델의 디자인을 대거 가져오면서 쏘나타 대신 국민 세단 자리에 올랐다. 일자로 이어지는 수평형 테일램프와 C필러 유리, 원스포크 스타일의 스티어링 휠 등이 1세대 그랜저로부터 얻은 디자인 모티브다. 7세대 신형 그랜저는 고급 차로서의 위상을 내려놨지만 높은 디자인 완성도를 기반으로 월 1만여대씩 팔려나가는 중이다.
올해 하반기 선보이는 5세대 신형 싼타페의 디자인도 과거 갤로퍼를 연상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1991년 출시된 갤로퍼는 현대차가 처음 내놓은 SUV 모델이라 상징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신형 싼타페는 전면 디자인과 각진 모서리 등 갤로퍼의 주요 디자인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관건은 지난 1998년 인수한 기아의 헤리티지를 어떻게 살리느냐다. 기아의 상품성과 브랜드 가치는 과거 대비 크게 향상됐지만, 현대차 대비 헤리티지가 약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7일 포니의 시간 오프닝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아는 과거 삼륜차도 있었고 브리사도 있었다"며 "(구체적인 일정은)준비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찾는 헤리티지 프로젝트는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며 "내부 임직원들의 자부심을 높일 수 있고, 브랜드의 부가가치를 제고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현재의 훌륭한 기술과 제품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는 외계인이 되면 안 된다"며 "포니와 마찬가지로 브리사 등의 과거 유전자를 미래지향적으로 재해석한 전기차 모델이 나온다면 기아만의 색깔과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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