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작업을 하는 사람은 인공지능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고, 인공지능이 지배할 세상에 대해서 SF소설의 디스토피아를 구태여 상상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책의 후반부를 읽으면서는 고민이 많아졌다. 바로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의 교육문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이공계 전성시대'를 살고 있다. 물론 고등학교 최상위권 자연계열 학생들이 의과대학을 진학하려 치열한 경쟁을 치러내고 있지만, 다수의 자연계열 학생들은 공과대학에 진학한다. 문·이과 통틀어 탑티어(top-tier)의 임금 테이블을 국가 면허를 보유한 전문직인 의사들이 점하고 있지만, 중상위권의 임금은 모두 이공계열이 독점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가능만 하다면, 자녀를 인문계열 대신 자연계열에 진학시키려 한다. 의대 못 가면 공대 가면 되고, 공과대학은 '괜찮은 일자리'를 보장한다고 인식된다.
같은 시점 특별히 대학에서 인문사회계열 또는 상경계열 공부하고 싶거나, '수학 포기자'라서 경쟁에 자신이 없는 학생들이 인문계열로 진학해왔다. 공식적으로 고등학교의 문·이과는 없어졌지만, 대학 이공계나 의대에서 반영하는 수학 과목을 수능에서 선택하는 학생은 이과로 분류되고 나머지는 문과로 분류가 가능하기도 하다. 이따금 이공계를 입시를 준비하다가 '문과생'으로 전향하여 수능을 보고 다른 과목에서도 고득점을 얻는 경우도 많은데, 이를 뉴스에서 '문과 침공'이라 칭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이공계형 지능'을 갖고 있었다기보다는 애초 시험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이공계로 진학한다는 세태를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결국 '이공계 전성시대'와 '문과침공'은 같은 상황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남는 것은 대학에서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일 테다. '문송'하여 취업이 안 되어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코딩을 공부하고, 이공계 복수전공을 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을 문제라고 보도하기도 한다. 지방대에서 인문사회계열 전공들이 폐과되고, 수도권에서도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에는 학생들이 진학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으로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과와 이과를 나누고, 분야별로 각 전공 분과를 나눴던 것은 순전히 19~20세기에 생긴 제도의 경로 누적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한국의 경우도 건국 초기 대학은 모두 '문리대' 체제였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합쳐 하나의 교양으로 설정했고, 분과 전공체제 진입은 3학년 정도로 늦었다. 저자는 종합적인 교양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분리하고 문과생들에게 수학을 포함한 자연과학을 배제하게 된 것이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이 중시되는 현시대에 교양으로서의 인문학이 무너지게 된 이유라고 강변한다. 대학생의 인문계열 전공 교육과정에 있어 인문학이 좋아서 더 보강해야지, 자연과학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빼는 방향으로 설정되었기에 자체의 한계가 도출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자는 철학과 출신이다.
저자는 디지털 전환을 급격하게 겪고 있는 지금, 모든 시민에게는 디지털 기술의 기반인 수학이라는 언어까지 이해할 수 있는 문해력(literacy), 지식을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고 전한다. 이를 '확장된 인문학'이라고 정의한다. 실천적인 관점에서 취업 지도를 하는 내 질문도 같다. 여전히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의 '쓸모'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시대에 더욱 '긴요해진' 디지털 문해력 형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스스로 비하에 빠졌을 뿐이다. UN, OECD 모두 비판적 사고력과 소통 능력의 중요성을 미래 직업 전망에서 중요하다고 전한다. 비판적 사고를 위해 글만 읽는 것이 아니라 숫자와 과학기술을 함께 읽게 되었을 따름이다.
인문학 살리기는 여전히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문학을 그저 '문사철(문학·역사·철학)'로 규정하는 것을 넘어서, 확장된 인문학 관점에서 살피는 게 절실하다. 한 편에서는 인문사회계열의 살아남기라는 소극적 목표이자, 다른 한 편에서는 과학기술 강국이자 제조업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균형 잡힌 사고와 일머리를 가지고 살아갈 시민을 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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