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화재 여파에 '질적 성장' 공언 무색해져배터리 제조사 기만 논란, 후폭풍 상당할 듯벤츠, 전기차 月 판매 톱10서 5대→1대 급감
무엇보다 마티아스 바이틀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사장이 '양보다 질'을 경영 핵심 기조로 언급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에 이번 사고의 충격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의 화재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전기차 화재 중에서 가장 피해가 극심했다. 지난 1일 오전 발생한 화재의 불씨가 된 메르세데스-벤츠 EQE 350 1대를 비롯해 주차장에 서 있던 차 140여대가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 사고 당일인 1일부터 6일까지 엿새간 1581세대 규모 아파트 전체에 물 공급이 끊겼고 477세대에는 아직까지 전기가 공급되지 않고 있어 주민들이 폭염 속에서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1대만 전소됐던 다른 화재 사고와 달리 이번 사고는 주변의 차까지 피해가 번졌다는 점이 다르다. 특히 주차장 내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알려지며 자동차와 배터리 제조사는 물론 아파트 시공사까지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다만 차에서 불이 났던 만큼 차를 만든 제조사에게 가장 먼저 비난의 화살이 향하고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인 메르세데스-벤츠가 생산 원가를 줄이기 위해 기술 안정성이 불분명한 중국 배터리 업체 패러시스의 제품을 탑재한 이유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불이 난 EQE 350에는 중국에서도 점유율이 10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패러시스 배터리가 탑재됐다. 패러시스는 메르세데스-벤츠 본사가 지난 2020년 4억유로(한화 약 6000억원)를 투자해 지분 일부를 인수한 협력 관계에 있다.
문제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 EQ시리즈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측이 소비자들을 상대로 거짓 기만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당초 메르세데스-벤츠는 전기차 배터리 세계 1위 업체인 CATL의 배터리를 자사 전기차에 탑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패러시스 배터리에 대한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패러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차에서 불이 나면서 시장 안팎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기차 조립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CATL과 패러시스의 배터리를 혼용할 수는 있었겠지만 소비자들에게 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것은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의 신뢰도를 스스로 깎아먹는 일이 되고 말았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측은 "국내 시장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 모델 중에는 SK온이나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배터리 업체가 만든 배터리가 탑재된 차도 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고위 임원들은 지난 7일 오후 인천 청라동을 방문해 지역구 국회의원 등에게 사과하고 철저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회의장에서 사고 현장이 1㎞도 채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사고 현장을 둘러보지 않고 떠났다.
현재 해외 출장 중인 마티아스 바이틀 사장이 귀국 일정을 앞당기고 경영진이 사고 현장을 속히 방문해 사태 수습 방안과 주민 보상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지만 시장의 시선은 급속하게 차가워지고 있다.
이번 사고로 인해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국내 전기차 판매 감소는 뻔한 일이 될 전망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 벤츠 전기차의 월간 판매량이 줄었다는 점이 기록으로 나타나면서 이번 사고가 자칫 전기차 판매 감소의 트리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발표한 월간 판매 현황을 분석하면 지난 6월까지 국내 수입 전기차 차종별 판매량 톱10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는 무려 5개의 모델이 순위권에 올라왔으나 7월 판매량 톱10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제품은 EQA 250 딱 1대 뿐이었다.
7월 판매량을 놓고 보면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의 자체적인 흠 때문에 판매량이 줄었다기보다는 테슬라, 폭스바겐, BMW 등 다른 브랜드의 제품 판매가 두드러졌기 때문에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 판매량이 줄어든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8월 판매량은 이번 화재 사고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시장 일각에서는 수입 전기차 판매량 톱10에서 당분간 메르세데스-벤츠의 이름을 보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바이틀 사장이 질적 성장을 언급했지만 이번 사고로 그의 말이 빛을 잃게 됐다"며 "벤츠 경영진이 배터리 제조사 기만 논란 등에 대해 과실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andrew.j@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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