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폭탄에 아시아통화 약세···원화 낙폭 두드러져중국 위안화 절하와 연동···1500원 돌파 가능성 현실화정부 "필요시 개입"···전문가들 "정책 대응 쉽지 않다"
10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0.9원 상승한 1484.1원에 마감했다. 이날 환율은 장중 1488.0원까지 오르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6일(1597원) 이후 최고점을 갈아치웠다.
미국발 관세 충격에 일본 엔화, 인도네시아 루피아 등 아시아 외환시장 전체가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 위안화는 지난 8일 역외시장에서 사상 최저치인 1달러당 7.429위안까지 급락했다. 일본 엔화는 지난 9일 달러당 148엔 안팎에 거래되며 1998년 8월 이후 약 27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인도네시아 루피아 역시 지난 9일 1달러당 1만6970루피아까지 떨어지며 최저점을 갈아치웠다. 이는 1998년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의 수준을 넘어선 수치다. 달러 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신흥국 중심의 아시아 통화들이 지속적으로 약세 압력을 받는 모양새다.
위안화 최대 30% 추가 절상 가능성···원화 상승재료 '제로'
특히 원화가치는 주요 아시아 통화 가운데 가장 가파른 하락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 4일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와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로 1434.1원(종가)까지 떨어졌지만 하루 만에 관세전쟁 우려로 1460원대로 복귀했다. 이어 9일에는 1484.0원에 출발해 장중 1488.0원까지 오르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6일(1597원) 이후 최고점을 갈아치웠다.
원화 가치가 빠르게 떨어진 원인으로는 한국경제의 수출 둔화와 성장 하방압력 확대가 첫손에 꼽힌다. 수출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둔화된 가운데 미국발 관세폭탄까지 터지면서 경제성장률이 1%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 상황이다.
교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글로벌 무역 충격에 취약하다. 투자자들은 위험 회피 심리가 커질 때 대표적인 고위험 통화인 원화를 가장 먼저 매도하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6거래일 연속 절하된 위안화도 원·달러 환율 급등을 부추기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에 대응해 위안화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고 있는 상황이다.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면 중국산 제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내려가 관세 부담을 일부 상쇄하는 효과가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9일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전 거래일 대비 0.04% 높은 7.2066위안으로 고시했다. 달러당 7.2위안은 중국 당국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다. 전날 역외 위안화 환율은 2010년 역외 위안화 시장 창설 이후 최고치인 달러당 7.4290위안을 기록한 바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중국이 환율 무기를 본격적으로 사용한다면 최대 30%까지 위안화가 절하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과 중국이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당분간 위안화 가치 하락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상호관세 유예에도 환율 추가상승 전망···"외환보유고 소진은 안 돼"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국가별 상호관세가 시작된 지 13시간여 만에 상호관세 부과 계획을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에 대한 관세는 125%로 올리지만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10%의 기본관세만 유지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도 90일간은 기존 25%에서 10%로 낮아지게 됐지만 불확실성이 걷혔다고 보긴 어렵다. 미국과 중국간 무역갈등 수위는 오히려 더 높아졌고, 우리정부의 관세협상도 결과를 낙관할 수도 없어서다.
이에 대해 김현태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미국 행정부가 시장 불안을 고려해 상호관세 조치를 유예했지만 중국이 어떻게 대응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미중 갈등 격화를 고려할 때 기존 예상보다 높은 환율이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긴장의 끈을 조이고 개입 수위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환율 안정과 더불어 통상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관세 갈등을 완화시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앞서 지난 8일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회의)를 열고 "필요시 시장안정조치를 신속히 시행할 수 있도록 각 기관이 상황별 대응계획을 준비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는 당국이 필요시 외환시장에 개입해 급격한 환율 왜곡을 차단하겠다는 시그널로 읽힌다.
전문가들은 시장과의 소통 강화를 통한 불확실성 완화, 외환보유고의 전략적 운용, 정책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일각에선 정부 차원에서 원·달러 환율 상승을 방어할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관세 때문에 수출이 줄면 경상수지가 악화되기 때문에 환율 상승은 당연하다"며 "하지만 정부가 환율을 지키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쓰는 건 적절치 않기 때문에 현재로선 놔두는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돌파한다고 해도 스무딩 오퍼레이션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전 교수의 생각이다.
이어 "외환보유액을 환율 방어에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가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며 "가뜩이나 경상수지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외환보유액 마저 줄면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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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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