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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감사' 실종 국감, 정치쇼에 해법도 변혁도 없다

오피니언 데스크 칼럼 권한일의 건썰

'감사' 실종 국감, 정치쇼에 해법도 변혁도 없다

등록 2025.10.22 15:13

수정 2025.10.22 15:16

권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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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 실종 국감, 정치쇼에 해법도 변혁도 없다 기사의 사진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첫날부터 국민 앞에 펼쳐진 장면은 묘하게 익숙하다. 국내 주요 건설사 대표들이 줄줄이 국회에 불려 나와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인다. 카메라 셔터가 쏟아지고 TV 화면에 "송구하다"는 자막이 반복된다. 이 장면은 '정책 감시'라는 국감 본연의 기능보다 누군가에게는 정치적 쇼의 클라이맥스로 보였을 것이다.

올해 건설업계 CEO 소환 규모는 말 그대로 '역대급'이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DL,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주요 시공사 경영진들이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물산과 SK에코플랜트를 제외하면 사실상 '톱10' 건설사 중 대부분이 국회로 호출된 셈이다. 5년간 단 5명이던 건설사 CEO 증인이 올해는 7명. 말 그대로 '줄소환'이다.

명분은 그럴듯하다. 중대재해, 임금체불, 대통령 관저 공사, 가덕도 신공항까지. 건설사가 관련된 이슈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정작 증인석에서 오가는 질의응답을 들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의원들은 "간단히 대답하세요"를 반복하고, 대표들은 "죄송합니다"를 읊조린다. 묻고 사과받고 끝. 반복되는 대본처럼 정해진 수순이다.

의문이 생긴다. 정말 이게 국정감사인가. 아니면 '보여주기식 망신 주기'인가.

건설업계의 문제는 단순히 한 기업, 한 사람의 부주의로 환원될 수 없다. 구조는 훨씬 복잡하다. 인력난, 고령화, 공사비 덤핑, 원·하도급의 기형적 계약 구조, 현장에 밀착되지 않는 규제 시스템이 얽혀 있다. 그런데도 국감장은 매년 "왜 또 사고 났나" "반성하라"는 문답만 되풀이된다. 이런 구호로는 현장 한 줄도 바꿀 수 없다.

의원들의 질타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다면 질문도 정교해야 한다. 현장 안전 데이터를 분석하고 하도급 구조의 개선안을 고민한 뒤 대표를 부르는 것이 순서다. 지금처럼 '때 되면 부르고 사과 한 마디 받고 박수 속에 돌려보내는' 방식은 감시가 아닌 통제의 환상만 남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이 국감의 방향성이 정책 감시가 아니라 '대기업 길들이기'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이 장면을 통해 '권력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권력이 바꾸지 못하는 구조가 있다면 과연 그 무대의 의미는 무엇인가.

국감은 권력의 언어를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을 대신해 정책을 묻고 해법을 도출하는 자리여야 한다. 기업인 줄소환이 아니라, 시스템 점검–개선 약속–이행 검증이라는 3단계 구조가 제대로 작동할 때만 국감은 '감사'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

매년 되풀이되는 '호통–사과–퇴장'의 리허설은 이제 끝내야 한다. 그 반복 속에서 바뀐 건 없고, 잊혀지는 건 국민의 안전과 산업의 미래다. 진짜 감사를 원한다면, 보여주기식 국감부터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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