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직원이 차명계좌를 이용해 주식투자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된 사항이지만 업계에서는 ‘실적 올리기’를 위한 차명계좌 이용이 관행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며 영업직원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한 처벌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증권사 직원 차명계좌, “실적 때문에...”
23일 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차명계좌를 이용해 일정의 투자기준금액을 초과해 주식투자에 투자한 KDB대우증권과 IBK투자증권 직원 50여 명에게 각 5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은 두 회사를 대상으로만 검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차명계좌에 대한 점검과 처벌이 증권사 전체로 행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증권사 임직원은 본인 명의의 소속 증권회사 한 개 계좌를 통해서만 주식투자를 할 수 있다.
이는 증권사 직원은 일반 투자자보다 기업 내부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높아 일반 투자자와 불공정하다는 근거에 따른 규제다.
증권사 직원의 차명계좌 문제는 과거 증권거래법 시절부터 불거진 문제였다. 당시 증권거래법에서는 증권사 직원의 주식투자가 전면적으로 금지됐기 때문이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증권사 직원의 차명계좌 운용이 증권거래법 때보다는 적어졌다고 말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예전보다 차명계좌를 이용하는 증권사 직원들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법 개정으로 주식투자가 가능하면서 굳이 차명계좌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번 증권사 직원의 차명계좌가 영업활동을 위한 것이 아니겠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증권사 직원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실적을 채우기 위해 차명계좌를 이용한 영업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전직 증권사 영업직 직원은 “시행령 개정 이후 증권사 직원들의 차명계좌가 많이 줄어든 상태다”며 “사실 예전에는 개인의 재테크 수단으로도 차명계좌가 많이 사용됐지만 요즘에는 영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털어놨다.
일각에서는 증권사 차명계좌를 사용한 영업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개인의 변명일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어쨌든 모든 영업 직원이 같은 규제를 받으며 활동을 하고 있다”며 “차명계좌를 이용해 실적 올리기를 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고 고객 유치는 영업직 직원, 개인 역량의 문제다”고 말했다.
◇ 증권사 고객 유치 압박···과징금은 ‘영업맨’이 고스란히
차명계좌에 처벌에 대한 정확한 기준은 다음 달 말께 공포될 예정이다.
과징금 부과의 기준이 될 투자기준금액이 2500만원~5000만원 선이라는 것 외에 구체적인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과징금은 증권사 직원 개인에게 부과될 가능성이 크다.
IBK투자증권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어쨌든 과징금은 개인에게 부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는 과도한 실적 경쟁으로 인해 불거진 차명계좌 문제가 증권사 영업직원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지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모 증권사 영업직원은 “증권업계가 전체적으로 어려워지자 회사 이익을 높이기 위해 과도한 캠페인을 추진하는 증권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캠페인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승진이나 성과금에서 차별을 받기 때문에 직원들은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계좌 유치에 나서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다수의 증권사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친척, 친구 등 지인들에게 주식계좌 개설을 권유하는 ‘고객 유치 캠페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의 실적에 따라 성과금를 지급하지만 증권사에 따라서는 캠페인이 강압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올 초에는 모 증권사 지점영업 직원이 회사의 과도한 영업 할당에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때문에 차명계좌를 이용한 실적 올리기가 결국 증권사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모 증권사 관계자는 “고객 유치 실적이 성과금뿐만 아니라 승진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증권사 영업직원들은 자기 돈을 넣어서라도 실적을 채우려고 한다”며 “결국 증권사가 영업직원에게 부과하는 실적 책임이 문제인데 직원 개인에게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전했다.
박지은 기자 pje88@
뉴스웨이 박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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