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1999년과 2000년, 2002년 각각 현대산업개발과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큰 덩치의 계열사들이 잇달아 계열 분리되고 2001년 창업주인 고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현대그룹의 위세는 약화됐다.
설상가상으로 2003년 고 정몽헌 당시 회장마저 대북 불법 송금 사건으로 인해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현대그룹은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현대그룹은 정 전 회장의 미망인인 현정은 현 회장이 2003년 9월 경영권을 이어받은 뒤 여러 차례 안팎에서 부침을 겪었으나 그룹의 주력 사업인 해운업과 물류업을 중심으로 굳건히 ‘현대’ 브랜드를 이어오고 있다.
◇서서히 후계 기반 닦아가는 3남매 = 현정은 회장은 지난해 그룹 회장 취임 10주년을 맞았다. 현 회장은 전업주부에서 하루아침에 경영인으로 변신한 흔치 않은 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짧은 시간 내에 재계의 대표적 여성 경영인으로 급부상했다.
현 회장은 1976년 고 정몽헌 회장과 결혼해 장녀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와 차녀 정영이 현대상선 대리, 장남 정영선 씨 등 3명의 자녀를 낳았다.
이중 현재 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두 딸이다. 장녀 정지이 전무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학위를 딴 뒤 외국계 광고회사에 근무하던 중 2004년 현대상선에 경력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2005년 대리로 승진했고 얼마 후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입사 2년 만인 2006년 현대유엔아이 전무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 전무에 대해 대대로 내려온 현대 가문의 전통적 기질에 어머니 현 회장의 꼼꼼한 성미를 닮았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정 전무는 대내외 행사에서 어머니 현 회장을 그림자같이 따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할아버지인 고 아산 정주영 창업주의 기일 등 현대가의 집안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차녀 정영이 대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와튼스쿨을 졸업한 재원으로 지난 2012년 6월 언니 정지이 전무가 일하는 현대유엔아이로 입사했다. 현재는 현대상선에서 재무·회계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동아들인 정영선 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현재 미국 유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선 씨는 현대가 직계 3세 중 나이 서열로 정기선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 바로 아래의 인물이다. 영선 씨 역시 학업을 마치는 대로 경영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세 자녀들은 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각자 늘리며 후계 구도를 키우고 있다. 지분 구조로 볼 때는 첫째인 정지이 전무가 조금 앞선다. 정 전무는 현대유엔아이 지분 7.89%를 보유하고 있고 현대유엔아이에서 인적분할한 투자사업 계열사 현대글로벌의 지분도 8% 갖고 있다.
정영이 대리와 정영선 씨도 현대상선과 현대증권, 현대아산 등의 계열사 주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분율은 1%대 미만으로 매우 미미하다.
다만 두 남매의 2013년 초와 2013년 말의 현대상선과 현대아산, 현대로지스틱스 등 계열사 주식 보유량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3세 승계 언급, 아직은 시기상조 = 현재 상황에서는 정지이 전무가 현 회장 이후의 후계자로 가장 유력하다. 만약 정 전무가 현대그룹 경영권을 넘겨받을 경우 1947년 그룹 창립 이후 처음으로 ‘후대 여성 상속’이 이뤄지게 된다.
그동안 현대그룹은 물론 현대가 계열 기업 중에서 딸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사례는 아직 없다. 모두 아들들이 회사를 물려받았고 대부분 장남이 후계자 자리를 낙점받았다. 정 전무가 후계자로 지목된다면 현대가의 전통을 깨는 파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계 안팎에서는 현재 상황에서 현대그룹의 3세 경영 승계를 논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현정은 회장이 젊다. 현 회장은 올해 한국식 나이로 60세가 됐다. 재계에서 60세는 한창인 연령대로 통한다. 여기에 실질적 경영 경력이 10년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일을 더 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자녀들의 나이가 어리다는 점도 ‘3세 승계 시기상조론’에 힘을 더 하고 있다. 1977년생인 장녀 정지이 전무는 올해 38세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현대상선과 현대유엔아이의 경영에 참여하며 경영 수업을 밟았다고 하지만 아직 더 배워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1984년생인 둘째 정영이 대리 역시 나이가 어리고 회사 경영 참여 경력이 지나치게 짧기 때문에 당장 승계 구도에 끼기는 어렵다는 해석이다.
장남 상속을 우선시하는 현대가 가풍을 감안할 때 정지이 전무 대신 정영선 씨가 향후 그룹 후계자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올해 30세인 영선 씨의 사회 경력이 전무한데다 현대그룹 경영에 직접 참여할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미지수라는 점이 변수다.
더불어 영선 씨가 회사 경영을 책임지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이 역시도 현실성과는 거리가 먼 예측으로 점쳐지고 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andrew.j@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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