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시내에 매물로 꼽히는 특급 호텔은 5~6곳 정도 된다. 남산 자락의 반얀트리호텔을 비롯해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을 운영 중인 파르나스호텔, 여의도 콘래드호텔 등이 공개 매각 선상에 올랐거나 매각이 유력한 호텔들이다.
이들 호텔은 최정상급에 속하는 무궁화 5~6개 등급을 받은 곳이다. 대부분은 원소유주 기업이 유동성 위기 해소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호텔을 파는 상황이다. 반얀트리를 내놓은 현대그룹과 르네상스호텔의 매각을 협의 중인 삼부토건이 그렇다.
서울권 특급 호텔이 매물로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원매자 후보로 거론된 기업은 현대자동차그룹이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10대 기업 중에서 드물게 서울시내에 호텔을 갖고 있지 않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에는 호텔업을 영위하고 있는 계열사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가 있다. 기아자동차가 최대주주이며 정몽구 회장과 세 딸(정성이 이노션 고문·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이 총 24.67%의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그러나 이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호텔은 제주 해비치호텔과 화성 롤링힐스 호텔 등 2개에 불과하다. 서울에는 호텔이 없다.
반면 다른 10대 재벌은 1개 이상의 특급호텔을 서울이나 서울 위성도시에 갖고 있다. 삼성이 장충동 신라호텔을 운영하고 있고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은 SK의 소유다. 소공동과 잠실의 특급 호텔은 물론 서울 곳곳에 비즈니스호텔을 둔 롯데는 ‘호텔 킹’ 수준이다.
때문에 다른 기업과의 이미지 형평성 맞추기 차원에서도 대형 호텔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도 ‘호텔 필요론’은 제기되고 있다. 시내에 호텔을 보유할 경우 각종 신차발표회나 여러 행사에 요긴하게 쓸 수 있고 국내외 고객 응대를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도 쏠쏠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그룹의 매각 대상 자산 목록에 반얀트리가 등장했을 때도 현대차그룹이 가장 유력한 인수기업 후보로 꼽혔다. 도심권에서 흔치 않은 6성급 호텔 매물인데다 현대가(家) 내 형제기업을 돕는다는 뜻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호텔 인수에 미적거리는 모습에 대해 의문을 보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40조에 가까운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다. 실탄이 무궁무진한데도 총을 잡지 않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호텔 경영으로 얻는 수익이 예전만 못하다는 약점 때문이다. 거액의 돈을 쏟아 부어서 호텔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초대형 글로벌 이벤트가 없는 한 투숙객이 적게 들어오기 때문에 호텔 경영을 통해 거둬들이는 돈은 적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집계한 지난 10년 사이의 서울시내 호텔 객실 이용률을 보면 2005년 80%대에 이르던 것이 지난해에는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호텔=돈 버는 사업’의 공식이 깨진 셈이다.
결국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명분보다 실리를 강조하기 위해 서울시내 특급 호텔 인수에 적극 나서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현대차그룹이 매물로 풀린 특급 호텔 중 1개 정도는 갖게 될 것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호텔 경영을 통해 얻는 실익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서울시내 호텔’이라는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다”며 “상징적인 명분을 감안해서라도 현대차그룹이 호텔을 인수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내다봤다.
정백현 기자 andrew.j@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andrew.j@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