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 금요일

  • 서울 5℃

  • 인천 6℃

  • 백령 8℃

  • 춘천 3℃

  • 강릉 6℃

  • 청주 6℃

  • 수원 5℃

  • 안동 5℃

  • 울릉도 9℃

  • 독도 9℃

  • 대전 6℃

  • 전주 7℃

  • 광주 8℃

  • 목포 9℃

  • 여수 10℃

  • 대구 8℃

  • 울산 9℃

  • 창원 9℃

  • 부산 9℃

  • 제주 9℃

유아인, 대체 이런 배우가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NW기획] 유아인, 대체 이런 배우가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등록 2015.09.21 16:44

김재범

  기자

공유

뉴스웨이 DB뉴스웨이 DB

배우의 변신은 무죄다. 죄를 물을 수 없기에 변신의 연속은 도전이고 발돋움이다. 하지만 간혹 변신 자체가 유죄가 되기도 한다. 주연배우의 빠른 이미지 전환은 작품 자체의 흥행성에 분명한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될 위험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배우의 변신에 환호하고 박수를 보낸다. 올해 한 해 이 범주에서 보자면 유아인의 성장세는 단순한 수치로 가늠하기 힘들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변신의 판타지’를 넘어섰다.

올해 유아인의 정점이자 도전은 ‘베테랑’ 한 편으로 완성됐다. 1300만에 육박하는 관객들이 ‘베테랑’을 봤고, 유아인의 이름을 거론했다. 유아인은 ‘베테랑’에서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 ‘조태오’를 연기했다. 국내 재벌 기업의 서자인 ‘조태오’는 태생적인 한계성으로 인해 시작 자체가 극단의 악마성을 띤 캐릭터였다. 어떤 계기가 그를 괴물로 만든 게 아니다. ‘조태오’는 처음부터 그냥 괴물이었다.

연출을 맡은 류승완 감독은 사실 ‘조태오’ 캐스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단다. 20대 중후반의 스타급 배우를 원했다. 하지만 워낙 악의적인 인물이라 배우들이 꺼려했다. 하지만 유아인은 그 점을 노렸다. 지금까지의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반항아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악역이라기보단 이유가 분명한 대중들의 응원을 받는 캐릭터였다. 어떤 결핍이 분명했던 인물들이다. 그런점에서 유아인의 ‘조태오’ 캐스팅은 완벽한 오판이 될수도 있었다. 류 감독도 이 점을 우려했었다고.

유아인은 ‘조태오’를 일종의 소시오패스로 규정했다. 지금까지의 영화 속 악역들은 마초성을 베이스로 후천성 혹은 선천성을 담보로 한 ‘악’을 뿜어냈다. 하지만 조태오는 돈의 힘(金力)을 이용해 법의 레이더망을 조롱했다. 비밀스런 재벌가, 그리고 태생적인 한계가 만들어 낸 삐뚤어진 ‘조태오’는 유아인이란 배우가 가진 특유의 시니컬한 분위기와 만나면서 전에 없던 아우라를 뿜어냈다. 그는 광기 혹은 야심을 드러내는 패턴의 캐릭터를 연기해 온 배우가 아니다. 소년의 이미지와 그 안에 담긴 성장성을 무기로 내세우는 ‘청춘’의 표상이었다. 다소 삐뚤어지고 엇나가는 인물이었지만 그 안에서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베테랑’의 ‘조태오’는 어떤 기준점을 들이대도 완벽하게 다른 지점에서 선 인물이었다. 유아인은 카멜레온이 자신의 보호색을 뒤바꾸듯 스스로의 색깔을 변화시키는 지점을 찾아낸 것이다.

 유아인, 대체 이런 배우가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기사의 사진

유아인이 동급 최강의 배우란 뒤 늦은 찬사를 이끌어 낸 것은 사실 ‘베테랑’의 악역 변신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출연하고 촬영을 끝마친 ‘사도’ 때문이다. ‘사도’는 조선시대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가 그려낸 부자간의 참극 ‘임오화변’을 그린다. ‘뒤주’ 속에 가둬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아버지 영조의 심리, 그리고 참극이 일어나기까지의 부자간에 일어난 감정의 굴곡이 이 영화의 포인트다.

스토리 자체의 극적 요소와 긴장감, 그리고 사도세자가 갖고 있는 폭발력이기에 연기력이 충분히 담보된 배우들이라면 누구라도 욕심을 낼만하다. 사실 기준점을 넘어선 연기력의 소유자라면 ‘중간 이상이라도 돋보일 배역’이 사도다. 하지만 유아인의 사도는 달랐다. 그가 연기한 ‘사도’는 섬세했다. 상처 받기 쉬운 영혼이었다. 상처에 아파하고 부정(夫情)을 갈망했다. 부정의 결핍은 결국 자신의 아들인 동궁 ‘이산’(정조)에게로 쏠렸다. 뒤주 안에서 부채에 자신의 소변을 받아먹으면서 죽음 받아들이고 오열하는 장면에선 연기의 순간을 넘어선 무엇을 스크린에 아로새긴다. 언론시사회 후 평단의 강렬한 호평이 이어졌고, 개봉 4일 만에 200만 관객에 육박하는 스코어를 기록한 것은 어찌보면 유아인 효과의 스펙트럼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베테랑’에서 즉흥적이면서도 태생적인 악의 모습을 그린 유아인은 바로 다음 ‘사도’를 통해선 감정의 밑바닥에 자리한 상처 받은 영혼의 나약함을 특유의 광기로 표현했다. 그의 광기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웠지만 아버지 영조를 겨누고 있지는 않았다. 스스로가 부정(不正)하고 싶었던 부정(夫情)을 인정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의 슬픔은 ‘사도’의 백미이자 유아인이 만들어 낸 명장면이다.

영화 '베테랑' 중 유아인영화 '베테랑' 중 유아인

영화 '사도' 중 유아인영화 '사도' 중 유아인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포스터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포스터

이제 그는 또 다른 사극 ‘육룡이 나르샤’로 승천을 준비한다. 조선시대 왕권 통치의 기반을 마련한 철혈군주 태종 이방원의 젊은 시절을 유아인은 연기할 예정이다. 아버지이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천호진)의 아들 가운데 가장 야망이 크고 목표가 뚜렷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한편에는 아버지 이성계에 대한 부정(夫情)의 갈망이 큰 인물이기도 하다. 유아인의 무르익은 연기력은 두 편의 영화를 통해 만개한 뒤 이번 드라마를 통해 완벽한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다.

‘베테랑’의 조태오, ‘사도’의 사도세자, 그리고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까지. 유아인의 변신은 무죄다. 그리고 유죄다. 각각의 작품에서 배우 스스로가 보이지 않게 완벽한 변화를 이뤄냈으니 그는 무죄다. 그리고 너무도 철저하게 그 인물을 만들어 내면서 관객들을 속이고 있다. 그러니 그는 유죄다. 이런 배우의 탄생이 놀랍고 또 반갑다. 당분간 ‘유아인’은 대세의 중심이다.

김재범 기자 cine517@

관련태그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