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선대회장은 물건을 파는 일은 진심을 팔고 마음을 사는 거라 굳게 믿었던 사람이다” - 서경배 회장
장원의 경영철학은 전 재산을 투자해 차린 상점에서 동백기름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꾸렸던 어머니 윤독정 씨의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개성의 작은 상점에서 스킨, 크림 등 화장품을 직접 제조해 판매했던 윤 씨. 서 회장은 16세부터 그런 어머니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심부름꾼이 아닌 동업자로서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화장품 원료를 구해오는 것.
이는 서울 남대문시장까지 180리(약 70km)를 자전거로 오가야 하는 고된 일이었는데요. 그는 만만치 않은 여정을 꿋꿋이 인내, 좋은 원료를 보는 안목은 물론 어머니로부터 화장품 제조에 임하는 자세를 배웠습니다.
“급하다고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쓰지는 못한다”, “기술은 훔쳐도 자세는 훔칠 수 없다”
광복 후 서울에서 ‘태평양’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다시 시작했을 때는 가짜 화장품이 기승이던 시기. 그럼에도 그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좋은 제품을 향한 고집을 이어갔고, 그렇게 선보인 ‘메로디크림’은 단숨에 인기 제품으로 떠올랐지요.
하지만 성공가도도 잠시,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합니다. 서 회장은 터전을 일군 서울을 떠나야 했지만 결코 좌절하지는 않았습니다. 피난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남성용 포마드를 만들어 팔며 사업을 계속합니다.
제품 개발 노력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연구 끝에 번들거림 없이 자연스러운 윤기를 내는 식물성 ‘ABC포마드’를 개발해냅니다. 이 제품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불티나게 팔리며 큰 성공으로 연결됐지요.
“현재의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소비자들의 신뢰와 좋은 평가이며 그 첫걸음이 바로 품질이다”
보다 나은 품질을 향한 행보는 휴전 후 더욱 본격화됩니다. 서울로 돌아와 1954년 용산구에 연구실을 설립하고 최신 시설을 도입한 서 회장은 국산 화장품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기술개발에 투자를 이어갑니다. △1954년 국내 최초 화장품 연구실 설립 △1959년 프랑스 코티社와 기술 제휴 △1962년 영등포 공장 준공, 자동화 시설 완비 △1966년 세계 최초 한방화장품 출시.
연구실 설립 후 출시한 ‘ABC100번크림’, ‘ABC분백분’의 반응도 성공적. 하지만 일부 지정판매소에서만 제품을 파는 유통구조는 금방 한계를 드러냈는데요. 이에 서 회장은 ‘방문판매’란 새 유통방식을 떠올립니다.
바로 전후 수십만으로 불어난 여성 가장을 화장품 판매원으로 고용하자는 발상. 화장품 사업에서 여성 고용은 곧 시장 확대로 이어졌고 방문판매가 주축이 된 새 브랜드 ‘아모레(Amore)’로 사세는 크게 확장합니다.
“소비자가 살아야 기업도 산다”
이외에도 서 회장은 미용 강좌, 마사지 서비스, 월간 미용지 화장계 창간 등 소비자와의 접점 넓힐 수 있는 다양한 마케팅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기술개발을 넘어 경영의 중심에도 소비자를 둔 것이지요.
“소비자를 속이지 말고 더 큰 이익을 주라”
아울러 그는 기업가인 동시에 꺼져가던 우리의 차 문화를 계승·발전시킨 다인(茶人)으로도 평가되는데요. 이 역시 문화사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기업이 되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녹차는 당분간 돈하고 상관없을 것. 그렇지만 사업이 성공하면 태평양은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된다”
오직 소비자의 마음을 얻고자 오랜 시간 기술개발을 독려하며 기업을 꾸려온 서성환 선대회장. 자칫 수익 창출에 밀려 등한시되기 쉬운 신뢰의 경영철학은 기업인들이 여전히 본받아 마땅한 가치입니다.
“성공 비결? 판매보다 기술 개발에 힘써 소비자가 제품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 덕 있는 사람으로 정직하게 일하면 성공 안 할 수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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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박정아 기자
pja@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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