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후계자 구지은 2015년 구설수로 물러나며 분쟁 시작경영권 잡았던 구본성 최근 보복운전 논란 후 대표서 해임4남매 고른 지분 탓에 경영권 담보 어려워 갈등 불씨 남아
아워홈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2015년이다. 구 회장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던 막내딸 구지은 아워홈 대표가 갑작스럽게 물러난 데 이어 그간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던 장남 구본성 부회장이 아워홈의 지휘봉을 잡으면서다. 두 남매는 이후 최근까지 소송도 불사하며 다툼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구본성 부회장이 ‘보복운전’ 구설수에 휘말리며 구지은 대표가 다시 경영권 분쟁의 승기를 잡은 모양새다.
◇은둔의 재벌가···2016년 경영권 분쟁 발발로 주목 = 구자학 회장 일가는 식품업계에서는 대표적인 ‘은둔형 가족’으로 꼽힌다. 이들 가족에 대해 외부에 알려진 사실들은 혼맥, 경영활동 이력 등이 대부분이고 흔한 가족사진 하나 공개된 적이 없다.
구자학 회장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1930년 태어났다.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이며 고 구본무 LG 회장, 구본준 LX홀딩스 회장, 구본걸 LF 회장의 숙부다.
구 회장은 1957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둘째딸 이숙희씨와 결혼했다. 1964년 제일제당(현 CJ)의 기획부장으로 처가인 삼성그룹에 입사한 후 호텔신라 대표이사,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을 거쳤다. 이후 1986년 금성사 사장을 시작으로 LG그룹에서 LG반도체, LG건설 회장 등을 맡다가 2000년 LG유통의 식품서비스 부문(현 아워홈)을 들고 그룹에서 독립했다.
구 회장은 슬하에 구본성 아워홈 부회장, 구미현씨, 구명진 캘리스코 대표, 구지은 아워홈 대표 등 1남3녀를 뒀다.
가장 먼저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막내딸인 구지은 대표다. 구 대표는 1967년생으로 1992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96년 미국 보스턴대 인사관리 석사 과정을 마쳤다. 삼성인력개발원, 컨설팅 회사 왓슨와이어트코리아를 거쳐 2004년 아워홈에 입사했다. 이후 외식사업부, 글로벌유통사업부, 구매식재사업본부 등을 거쳐 입사 11년만인 2015년 부사장에 올랐다. 구 대표는 아워홈 경영에는 형제들 중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과 달리 대외활동도 거의 하지 않고 사생활도 알려진 게 없다. 2000년대 초반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자학 회장의 장남인 구본성 부회장은 50대 후반이 되어서야 아워홈 경영에 참여했다. 1957년생으로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후 체이스맨해튼은행, LG전자 뉴욕 미주법인, 삼성물산 국제금융팀장을 거쳐 삼성경제연구소 임원을 역임했다. 아워홈 입사 전에는 의류와 관련한 개인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워홈에는 2016년 합류했다. 심재석 장은할부 회장의 딸인 심윤보씨와 결혼해 슬하에 구조앤·진아·재모씨 등 1남2녀를 뒀다. 이 중 1994년생인 아들 구재모씨는 지난해 2월 아워홈 사내이사에 선임됐으나 별다른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다.
구자학 회장의 다른 두 딸인 구미현씨와 구명진 캘리스코 대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구미현씨는 1960년생으로 의대 교수와 결혼해 가정주부로 지내고 있다. 구명진 대표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아들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과 결혼했다. 지난 3월 동생 구지은 대표가 아워홈 경영 복귀를 앞두고 내려놓은 캘리스코 대표이사직을 대신 맡았다. 구미현씨는 아워홈 사내이사에, 구명진 대표는 기타비상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경영 일찍 참여하고도 오빠에 밀려났던 구지은 다시 복귀= 이들 사남매는 2015년 이후 최근까지 경영권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경영권 다툼은 구본성 부회장과 구지은 대표가 치르고 있으나 구미현씨, 구명진 대표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어 언제든 경영권 향방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다.
아워홈의 경영권 분쟁은 2015년 구지은 대표가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시작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구 대표는 오빠, 언니들과 달리 일찌감치부터 아워홈 경영에 참여한만큼 회사 안팎에서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범LG가의 가풍을 깨고 첫 여성 후계자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2015년 구 대표가 자신에게 적대적인 임원들을 좌천, 업무배제, 해고했다는 논란에 휘말리면서 후계구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구 대표는 부사장에 오른지 5개월만인 2015년 7월 부사장직을 내려놨고 이듬해에는 관계사인 캘리스코 대표이사로 밀려났다. 이 사이 장남 구본성 부회장이 처음으로 아워홈 경영에 참여했다. 그는 2017년 3월 기타비상무이사로 아워홈 이사회에 이름을 올렸고 5월 사내이사에, 6월에는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구지은 대표는 아워홈 경영권을 오빠에게 내준 후 지속적으로 복귀를 시도해왔다. 둘째 언니 구명진 대표는 구지은 대표의 손을 들어줬으나 큰 언니 구미현씨가 오빠의 편을 들며 구 대표의 복귀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구본성 부회장도 장남 구재모씨를 사내이사에 선임하는 안건을 2019년 상정하며 이사회 장악에 나섰는데 이때는 구명진, 구지은 대표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 사건으로 아워홈은 구지은 대표의 캘리스코에 식자재 공급 중단을 선언했고 이 때문에 법정 다툼까지 벌였다. 다만 지난해 구재모씨가 아워홈 이사회에 입성하면서 양측의 경영권 분쟁은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다.
양측의 분쟁이 다시 촉발된 것은 지난해 9월 구본성 부회장의 보복운전이 계기가 됐다. 구 부회장이 보복운전 혐의로 입건되면서 구지은 대표 측은 아워홈 복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구지은 대표는 구본성 대표가 재판에 넘겨진 지난 3월 캘리스코 대표직을 언니 구명진 대표에게 넘겨줬다. 이 사이 그간 구본성 부회장 측에 섰던 구미현씨가 여동생들 편으로 돌아섰다.
이들 세 자매는 지난 4일 주주총회를 통해 구지은 대표 측 인사들을 21명이나 사내이사로 선임하며 이사회를 장악한 후 이어진 이사회에서 오빠 구본성 부회장을 대표이사에 해임하고 구지은 대표를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구지은 대표는 그간 아워홈 기타비상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기는 했으나 사내이사로 복귀한 것은 5년만이며 대표이사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본성 부회장은 대표이사에서는 해임됐으나 사내이사직은 유지하고 있다. 세 자매의 지분율 합계가 60%가 채 되지 않아 3분의 2 이상이 동의가 필요한 사내이사 해임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구본성 당장 반격하진 못할듯···구자학 의중 해석도 = 이들의 경영권 분쟁의 불씨는 아직도 꺼지지 않았다. 사남매의 지분율이 누구 하나 특별히 높지 않고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아워홈의 주주구성을 살펴보면 지난 2019년 말 기준 구본성 부회장(38.56%), 구미현씨(19.28%), 구명진 캘리스코 대표(19.60%), 구지은 대표(20.67%) 등 이들 오너 형제들이 98.1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구본성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 동생들의 지분을 합치면 59.55%로 절반이 넘는다.
결국 구자학 회장이 자녀들에게 고루 지분을 나눠준 것이 경영권 분쟁의 단초를 제기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아워홈은 2000년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한 이래 2007년 감사보고서를 통해 처음 지분율을 공개했는데 당시부터 이미 구본성 부회장이 40.00%를, 구미현씨가 20.00%, 구명진 대표가 19.99%, 구지은 대표가 20.01%를 보유 중이었다. 이후 이 지분율에 변동이 있던 것은 2013년 한 차례뿐이다. 당시 구지은 대표가 지분 상당수를 보유 중이던 레드앤그린푸드를 아워홈이 흡수합병하면서 구 대표의 지분율이 소폭 상승하고 오빠, 언니의 지분율이 하락했다. 현재의 지분구조는 이때 완성된 것이다.
여전히 이들 사이의 지분율 격차가 크지 않다보니 이론적으로 아워홈은 언제든 경영권 분쟁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구 부회장이 자신의 우호세력을 결집하고 다른 여동생들의 도움을 다시 받는다면 충분히 경영권을 되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은 경영권 분쟁이 재발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 구 부회장 본인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이번 경영권 분쟁의 빌미를 제공한 만큼 여론전을 펼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 구지은 대표 측의 경영권 장악이 성공한 것은 부친 구자학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자학 회장이 구지은 대표를 각별히 아낀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실제로 지난 2015년 구 대표가 구설수로 아워홈 부사장에서 물러난 후 이듬해 캘리스코 대표로 바로 복귀한 것 역시 경영일선에서 너무 오래 떨어져있어선 안 된다는 구자학 회장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당장 구본성 부회장 측의 반격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뉴스웨이 정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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