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수주목표치 초과달성에도 적자저가수주 누적·헤비테일, 유동성 부담 ↑산은 이동걸 "수익성 낮은 RG 발급 중단"'덤탱이' 우려에 대형조선사 외 기피현상중소형사, 은행권 문턱 더 높아져 부담↑
현대중공업그룹 조선부문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5조4934억원, 영업손실 1조384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0%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적자전환했다. 같은 기간 당기순손실은 36.6% 확대된 1조1412억원으로 나타났다.
삼성중공업은 매출 6조6220억원, 영업손실 1조3120억원, 당기순손실 1조2541억원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영업적자는 오히려 확대됐다. 다만 순손실은 소폭 개선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아직 작년 실적을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증권가 컨센서스(전망치 평균)에 따르면 매출 4조3650억원, 영업손실 1조3011억원, 당기순손실 1조3725억원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조선3사가 지난해 수주 목표치를 모두 초과달성한 점으로 미뤄볼 때, 적자 누적은 의아한 결과로 보여질 수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작년 총 204척, 199억달러를 수주해 목표치 149억달러의 133%를 기록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각각 34%, 111%의 목표 돌파를 이뤘다. 3사가 연간 목표를 넘긴 것은 2013년 이후 8년 만이다.
조선사의 실적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로 되돌아가야 한다. 조선업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년 뒤부터 불황기와 맞닥뜨렸다. 대형 선주들이 몰려있는 유럽이 휘청이면서 선박 발주는 급감했다. 이 때 중국 조선사들이 저가 수주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조선사는 자국의 금융 지원과 저렴한 인건비로 일감을 싹쓸이 했다. 불황기 초반만 하더라도, 국내 조선사들은 저가 수주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과의 가격 경쟁력은 벌여졌다.
결국 한국 조선사들은 저가수주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일감을 우선 확보해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특히 저가수주 경쟁은 대형 조선사보다는, 중견 조선사들이 더욱 활발했다.
저가 수주에 더해 '헤비테일' 방식이 대세가 되면서 유동성 부담은 더욱 악화됐다. 과거 글로벌 조선업계는 수주 초기에 선금을 많이 받는 '톱헤비'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선주들이 선금의 20~30%만 결제하고, 2~3년 뒤 선박 건조가 완료되면 나머지 잔금을 치루는 '헤비테일' 방식을 요구했다. 조선사들은 일감은 확보했지만, 당장 수중에 현금이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2010년대 중반대 들어서는 해양플랜트 수주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조선업계는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저가수주에 따른 손실을 메꾸기 위해 해양플랜트를 대거 수주했다. 하지만 납기가 지연됐고, 적자 누적의 원인이 됐다.
조선사들이 저가수주와 무분별한 수주를 진행할 수 있던 배경에는 선수금환급보증(RG)이 있다. RG는 선박이 계약대로 인도되지 못할 경우, 선주에 조선사가 받은 선수금을 대신 지급하겠다는 보증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가 무산된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익성이 안되는 RG 발급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회장은 "과거 원가율이 100%를 초과하는 건에 대해서도 RG를 발급해줬지만, 원가율이 90% 이상 넘어가면 적자가 나기 십상"이라며 "원가도 되지 않는 배를 파는 것은 외국 선주와 소비자를 도와주는 국부 유출"이라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을 재매각하기 전까지 국내 조선사들이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도다.
통상 선주는 은행으로부터 RG 발급을 확인한 후 대금을 지급한다. 조선사는 이 돈으로 건조를 시작한다. 만약 RG 발급이 제한되면, 신규 수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박 건조를 할 수 없다.
대형 조선사의 경우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경쟁력을 확보한 만큼, RG 발급을 중단하더라도 당장 받는 타격이 없다. 국내 조선3사는 지난해 발주된 LNG운반선의 87%를 수주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노후선반 환경규제가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친환경 선박 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 확대로 선가 역시 상승하고 있다. 특히 조선3사가 '제값받기'를 실현하고 있기 때문에 RG 발급이 거부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조선업황이 싸이클을 탄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국내 조선사의 경우 주요 선사가 유럽연합(EU) 등 해외에 몰려있는 만큼, 수출이 절대적이다. 만약 글로벌 조선업계가 또다시 불황기에 접어든다면, 발주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 원가율이 높다는 이유로 RG 발급을 제한한다면, 경쟁 국가에 일감을 내주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자금력이 부족한 중견, 중소 조선사다. RG 발급은 한국무역보험공사와 산은,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 등이 참여한다. 과거에는 대출보다 부담이 적다는 이유로 RG 발급이 성황이었다. RG는 선박 인도시 보증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수수료를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업 빙하기'가 도래하자 금융사들은 중견 조선사들의 RG 발급을 꺼리기 시작했다. 부실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RG를 발급해 줬다,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는 '덤탱이'를 의식한 것이다. 이 같은 RG 발급 기피 현상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중견급 이하 조선사들의 RG 발급 비율은 전체의 7%를 간신히 넘긴다. 소형 조선사는 물론, 조선사 대부분이 몰려있는 부산과 울산, 경남(부·울·경) 지방의 RG 발급 역시 사실상 전무하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 발언으로 중견급 이하 조선사들의 은행권 문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대형 조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중소형 조선사는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수주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 RG 발급 제한은 중소형 조선사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정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K-조선 재도약 전략'과도 어긋난다. 중소 조선업계의 수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K-조선 재도약 전략에는 현재 150억원인 RG 발급 한도를 기존 150억원에서 상향 조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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