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이름 떼고 생소한 영어 사명 연쇄 등장간판 바꾼 대기업 계열사, 주가 반등 효험은 '無'"어떤 사업 초점 맞추는지 투자자가 잘 살펴야"
기업의 개명은 기존 본업에 국한하지 않고 미래 먹거리를 적극 창출해 기업 영속성을 높이겠다는 뜻이 반영돼 있다. 하지만 이름을 바꿨다고 해서 회사의 가치까지는 높아지지는 않는 듯하다. 회사 간판을 바꾼 후에도 묘연한 주가 흐름을 보이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10일 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대기업 계열사들의 사명 변경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지난해 7월 롯데푸드와 합병한 롯데제과는 올해 4월 1일부터 롯데웰푸드라는 새 간판을 달았다. '과자 회사'를 넘어 종합 식품 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한 포부를 담은 명칭이다.
이에 앞서 포스코그룹의 소재 계열사인 포스코케미칼도 3월 20일부터 포스코퓨처엠이라는 새 이름을 내걸었다. 또한 지난 2021년 HD현대(옛 현대중공업)로 주인이 바뀐 HD현대두산인프라코어도 지난 3월 주총을 통해 HD현대인프라코어라는 새 이름을 얻고 18년 만에 '두산'이라는 브랜드와 작별했다.
대기업 계열사의 사명 변경은 최근 들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두산중공업이 두산에너빌리티라는 새 이름을 탄생시켰고 2021년에는 SK건설이 SK에코플랜트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또 삼성엔지니어링도 32년 만에 사명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회사들이 이름을 바꾸는 것은 중공업, 건설, 엔지니어링이라는 이름에서 주는 사업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공통적인 것은 각 회사마다 오랫동안 지켜왔던 한자어 사명을 버리고 영어 이름을 택했다는 점이다. 또한 종합 식품 사업, 친환경 미래 에너지 등 유망 사업 영역에 대한 청사진을 회사 이름에 담았다는 것 역시 공통점이다.
기업의 개명 사례는 회사의 덩치와 무관하게 꽤 많았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지난해 한 해 동안 국내증시 상장사 중 이름을 바꾼 회사의 수를 집계한 결과 총 104개 기업이 이름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에만 개명한 회사는 20여곳에 이른다.
사명 변경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뉜다. "낯선 이름이지만 새로운 사업 영역에 대한 도전적 열의를 엿볼 수 있다"는 낙관적 반응과 "오랫동안 낯익은 이름을 굳이 폐기하고 얻는 실질적 이익이 어느 정도 되겠느냐"는 비관적 반응이 공존한다.
무엇보다 회사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대표적 기업 가치 평가 지표로 꼽히는 주가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결론만 놓고 보면 회사의 이름을 바꾼다고 해도 주가는 크게 오르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 회사명을 바꾼 대기업 계열사 4곳(롯데웰푸드·포스코퓨처엠·두산에너빌리티·HD현대)의 6개월간 주가 흐름을 분석한 결과 포스코퓨처엠을 제외한 3개 회사의 주가가 6개월 이전보다 떨어졌다.
롯데웰푸드는 지난 반년 사이 18% 이상 주가가 내려갔고 6개월 사이 70% 가까이 주가가 오른 포스코퓨처엠만이 '개명 기업' 중 유일하게 6개월 사이 주가가 오른 기업으로 분류됐다.
다만 분석 대상 중 유일하게 주가가 오른 포스코퓨처엠의 주가도 '개명 효과'의 증거보다는 최근 불고 있는 2차전지 관련 종목들의 연쇄 상승과 연계가 깊다고 볼 수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2차전지 소재 관련주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주가 상승 곡선을 그린 바 있다.
결국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개별 기업의 이슈보다는 해당 업종의 경영 흐름과 대내외 정세, 거시 경제의 상황 변동 등이 회사의 주가를 움직이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회사명의 개명이 주가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일임에도 상장사들이 연달아 이름을 바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가시적 이미지 쇄신에 따른 단기적 효과 때문에 이름을 바꾸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개명 사례가 빈번히 일어났던 곳은 대부분 코스피 상장사가 아닌 코스닥 상장사였다. 개명한 기업들은 회사의 매출로 대출 이자조차 내기 버거울 정도로 경영 기반이 취약한 곳들이었거나 회사 안팎으로 논란이 많았던 곳이 많았다.
회사의 입장에서 개운찮은 이름을 계속 내걸고 주권거래에 나설 경우 투자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회사 이름을 바꿔서라도 반등의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뜻이 각 기업의 개명 사연에 담겨 있다. 물론 잇단 개명에도 상장폐지를 피하지 못한 기업도 많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단순히 회사가 간판을 바꿨다는 사실에 주목하기보다 회사의 근본적인 체질과 사업 역량을 눈여겨보고 투자에 나서는 것이 손해를 덜 볼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의 이름에 주목하기보다 사업 목적의 변경이나 재무 상태의 변동 상황 등을 더 눈여겨봐야 한다"면서 "전자공시 등을 통해 사업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만큼 투자자들이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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